제15회 영광독서 감상문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당신에게 - <유쾌한 대화법78>을 읽고
부산시 사하구 신평2동 이태연
환한 햇살에 가늘게 하늘거리는 갈대의 금빛 출렁임이 참 기분좋은 오후를 보내고 저녁 내내 즐거운 기분에 젖어 있었다.
밤 늦게 울리는 한 통의 전화소리.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직장동료의 목소리는 벌써 우울하다. 직장에서는 뭐가 그리 다들 바쁘고 여유가 없는지 서로의 얼굴을 대하고 잔잔한 일상의 얘기들을 나누기도 힘들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마음속에 다들 찌들어가는 보따리 하나씩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다들 멀쩡해도 속으로는 전부다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동료의 이야기인즉슨, 옆에 앉는 다른 동료의 한 마디 때문에 너무 속이 상했다는 얘기였다.
정치나 세계의 정세로 우리들의 기분이 좌지우지 되지는 않는다. 아주 사소하면서도 아주 미묘한 말로 우리는 상처를 주고 또한 상처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동료는 벌써 울먹이는 목소리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고 그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이 나와는 전혀 상반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늦은 밤 생각이 난 사람이 나이기에 전화를 했다는 그 한 마디에 나는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며 오랜 시간 수화기 통을 붙잡고 앉아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고 감정적으로 치닫는 동료의 말이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한 일은 동료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동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때로는 동료의 입장에 서서 맞장구 쳐 주고 동료의 기분과 감정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말을 한 마디 한 것 뿐인데 동료는 이런 나를 너무 고맙다고 하니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동료의 전화 끊는 소리를 끝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수화기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마치 곤히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는 어머니처럼 조심조심 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직장에서 만난 동료의 얼굴에 꽃이 폈음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어젯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그 우울하고 슬픈 마음의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다. 살랑살랑 따뜻한 봄바람에 사뿐사뿐 날아 다니는 나비처럼 동료의 걸음과 표정은 가볍기만 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단 몇시간의 차이일 뿐인데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저 흘려보내지 못하고 마음에 박힌 한 마디 말 때문에 우울해하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하며 분노했는데, 또 믿는 구석이 있어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열어 아픈 마음을 그대로 말한 것일 뿐인데 몇 시간 전의 분노와 배신감과 우울감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문제는 말이다.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말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 말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나이도 아랑곳 없이 엉엉 아기처럼 울고 또 말 때문에 유치원 꼬맹이보다도 더 활짝 순진무구하게 웃는다.
인간은 혼자서도 살 수 없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인데 그러면서 존재와 존재 사이의 의사소통의 도구로 말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본질적인 본연의 언어로서의 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쓸 말보다는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말이 많아지고, 들어서 기분 좋은 따뜻한 말보다는 안듣는 것만 못한 말들도 너무 많아졌다. 대화는 내 마음 속에 상대방이라는 커다란 또 하나의 나무를 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커다란 나무에게 어떤 물을 주고 양분을 주는가에 따라 상대방의 나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리라. 또한 대화는 내 마음속에 상대방을 자리매김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내 마음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하는지는 대화할 때의 태도라든가 대화하는 방식, 대화할 때의 자세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나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귀담아 들으며 적절한 때에 나의 이야기도 하는 것이다.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들으면서 많은 듯 적게 말하는 것이 대화의 정석이리라. '유쾌한 대화법'이란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큰 제목보다 조금 더 작은 글자 크기로 수줍게 적혀 있었던 '돌아서서 후회하지 않는'이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돌아서서 '아! 그 때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이렇게 말했더라면 속이 시원했을 텐데...'. 하면서 얼마나 후회하고 돌이킬 수 없고 돌이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땅을 치고 원망하며 억울해 하는 때가 많았던가 말이다.
나는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좋은 것은 너무 좋고 싫은 것은 너무 싫어한다. 그리고 맞는 것은 맞는 것이고 아닌 것은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아닌 것이다. 좋고 싫음이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도 내가 좋아하는 상대는 그의 결점이 다소 보이더라도 좋게 보려고 하고 내가 싫어하는 상대와 이야기를 할 때는 좋은 부분도 나쁘게 인식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인간관계에서 꺽꺽거리는 막힘을 느낄 때다. 뭔가 제대로 뚫리지 않은 관계, 뭔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느낌을 나는 너무나 싫어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 것만 갖게 되고, 원하는 사람과만 만나게 되고, 원하는 일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니더라.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과 사람을 만날 때도 있는데 부족한 인격을 다듬기 위한 멋진 시험의 과정이리라.
그런 때에라도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말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라 할지라도 그가 지닌 하나의 지극히 작은 장점이라도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정성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날 보니 참 많이도 컸다. 퍽 대견한 생각을 하고 말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후 돌아섰을 때의 씁슬함이 남지 않도록, 후회가 남지 않도록 때로는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너무나 억지스러운 말들도 믿어보자. 나를 진실의 옷으로 감싸고 여유있고도 부드럽게 말하며 생각을 조리정연하게 말하자. 끌어당기기와 밀어주기의 법칙을 실천해 보자. 때로는 상대방을 내 쪽으로 끌어왔다가도 또 때로는 상대방에게 끌려가 보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모르고 끌려가는 것은 완전히 당하는 것이지만 이미 내가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끌려가는 것은 많이 가진 자의 여유와 당당함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기름칠을 잘 해야 기계가 녹슬지 않고 더욱 잘 돌아가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풀어주는 것도 부드러운 말이고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드는 힘도 따뜻한 말인 것이다.
대화를 잘 하는 것은 단순히 말만 잘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 속에 상대방을 심고 그 상대방에게 내 마음과 정성을 쏟아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느림의 법칙이 이 대화에도 적용이 된다. 끼어들지 않고 상대로 하여금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미국인들은 더듬더듬거리며 영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관대하고 친절하고 끝까지 인내심을 잘 발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참 친절하고 또 다른 나라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특심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겠지만 세계 최고의 열강이고 선진국이라는 자긍심이 있기 때문에 영어를 더듬거리는 타국의 사람들에게 좀 귀찮더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듣고 잘 응수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많이 가지고 많이 아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하여 인내하며 경청하며 당당하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때로는 눈꼴 사나운 교만이나 만용이나 독선의 모습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래도 여유있게 당당하게 진실하게 말을 하자. 상대보다 한 템포 빨라야 할 때와 한 템포 느려야 할 때를 구별하며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으로 입을 지켜야 할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자.
내가 대화라는 수단을 통해 상대에게 준 에너지가 그대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축복과 선함과 따뜻함의 에너지를 보내었다면 나도 그런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선물을 돌려받을 것이고, 비난과 무시와 비아냥거림과 비방이라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대에게 흘려 보냈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돌려받을 것이다.
대화. 이제 좀더 진실해지자. 이제 좀더 솔직해지자.
많은 말을 일사천리로 말하기 보다 나는 뒤에서 서고 상대가 먼저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고 귀담아 듣는 정성을 보이자. 진실과 정성이 담긴 대화만이 상대의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 가을,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풍요롭고 더 향기로워지자.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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