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360

[어느 버스성애자의 고백]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읽고

최문경


 고백하건데 내게는 조금은 오래된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버스 드라이브! 버스를 운전 하는 것이냐고? 아니다. 그냥 버스승객이 되어 목적지 없이 무작정 여행하는 것이다.

우선 버스의 맨 뒤 좌석으로 가자. 그리고 버스의 시점부터 종점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에어컨과 히터가 빵빵한 쾌적한 공간에서 온 신경을 버스에 맡겨보자. 승객들이 함께 있다. 그들은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같은 길을, 같이 달리고 있다는 이유로 어느덧 익숙해지고 든든해지는 동지가 된다.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평소에 집에서 들을 땐 시답잖고 조잡한 이야기들과 음악들이 버스에서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음악이 되어버린다.

창밖을 본다. 창가를 바라보니 풍경이 눈에 가득히 들어온다.
달리는 버스의 창가에 지친 머리를 기대면 덜컹대며 분주히 요란을 떠는 진동에도 내 머리는 어느새 안식을 찾는다.
 
창문을 열어본다. 바람이 불어온다.
불어오는 바람이 애써 정리한 머리를 망쳐도 난 바람을 느끼는 것이 좋다.  어느 날은 햇살이 따스하게 위로하고 어느 날은 빗방울이 아름답게 맺혀있는 창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사람구경이 좋다. 어떤 이는 어딜 그리 급히 가는지 총총걸음으로 걷는다. 어느 연인은 사랑애기를 나누는지 박수를 치고 웃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걷는다. 고함을 지르는 사람, 짜증을 내는 사람, 웃는 사람, 화내는 사람, 행복한 사람 별의별 사람이 다 많다.
 
간판구경도 좋고 건물구경도 좋다. 그 간판과 건물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 부자의 꿈을 안고 단 한명의 손님이라도 더 끄는 간판이름을 짓기 위해 무던 애를 썼을 것이다. 행운슈퍼,대박고기집,맛나분식,파라다이스 모텔 같은 것들을 바라보면 성공을 꿈꾸는 그들의 소박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져 빙그레 미소 짓게 한다.
 
이 처럼 나는 버스를 좋아한다. 열렬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래. 이쯤 되면 가히 버스성애자라 할 만 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토록 버스를 자주 타면서도 단 한 번도 버스기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버스성애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버스기사한테는 그토록 무관심했다니 . 무언가 이상한 일이다.

여기에 어느 버스기사가 고백을 한다. 자신을 ‘그냥’ 버스기사 라고 말하는, 때로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스스로를 ‘ 기사놈’ 이라고 하는 그는 전주에서 버스를 운전한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이 겪은 승객들과의 일화와 자신의 사연, 철학들을 유머와 해학을 섞어 걸쭉하게 풀어 놓는다.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 같다. 시종일관 지지고 볶고 싸우고 토라지고 삐진다. 승객들은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고 인상을 찌푸리는 버스기사가, 지정된 버스정류장을 한참 지나쳐서 정지하는 버스기사가,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버스기사가 달갑지 않다. 버스기사는 온종일 시끄럽게 좁은 버스 안에서 통화를 하는 승객이, 다짜고짜 갈 길 바쁜 버스를 잡고 한참을 행선지에 대해 묻는 승객이, 이유 없이 버스기사에게 욕을 하고 화풀이 하는 승객이 서럽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각자의 이면에서 서로의 입장이 존재한다. 그 어떤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승객은 인상을 쓰는 버스기사들을 욕하지만 그들은 하루 18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려야 하고 운전 뿐 아니라 하루 세 번 이상 사무실 청소에 수시로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등의 잡무 또한 해내야 한다. 승객은 버스정류장을 한참 지나쳐서 멈추는 버스기사를 향해 욕을 퍼붓지만 버스기사는 뒤 따라 들어오는 버스들과 정류장의 승객, 차량과 도로의 흐름을 함께 살펴야 한다. 승객은 막 정류장을 벗어나는 버스에 타기 위해 뛰어들어도 그냥 떠나버리는 버스를 매정하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뒤 따르는 버스와 이제 막 버스에 오른 승객의 안전을 위해 멈출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기사는 말한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 버스운전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 아무리 불량기사라도 마음 한편에는 승객의 욕망을 실현해주는데 큰 보람을 갖는다고. 그렇기 때문에 버스기사들은 추운 겨울 오들오들 떨고 있는 첫차 승객들을 위해 버스에 오르자마자 훈김을 빵빵 올려놓는다. 발을 동동 구르고 기다리고 있을 승객이 눈에 밟혀 세 시간 가까운 운행을 더 하더라도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대로변에서 사고차량을 목격했을 때는 폭발직전이라도 뛰어들어 구출해 내는 슈퍼맨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아옹다옹 삐거덕 거리면서도 어찌 되었든 목적지를 향해 함께 달린다. 끈끈한 부부처럼. 무슨 일이 있었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 기다리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찾아와 묵묵히 달리는 버스는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버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버스기사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버스성애자라 자청하면서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그 미안함. 이것은 분명히 부끄러운 고백이다. 그렇게 책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뜨거운 고백을 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들에 대해 뜨거운 화해를 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삶의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저 마다 인생의 목적지도, 목적지를 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노선도 각자가 다 다르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냥’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 이름 없이 살아도, 주목받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계속하여 끊임없이 고백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만이 마주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들여다보게 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 속에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버스가 흔들릴 때 마다 넘어지지 않고,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서로의 어깨에 기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종점에 이르러 버스에서 내리게 될 때 우리는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여행 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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