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북유럽 신화>를 읽고
최성진
1. 오래 전의 세상
세상이란 무엇일까? 아무것도 모르기에 누군가는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존재하기 전의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 인간과 만물의 시작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것들에 해답으로써 당시의 신성하고 권위있는 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윽고 하나의 정답이 된 이야기는 다음에서 다음으로 이어지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진다. 그것을 마땅치 않아 하는 이들과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이들의 손을 거쳐 다시금 세상에서 읽히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시간이 담긴 이야기는 더 이상 함부로 지울 수 있는 소문이 아니게 되었다. 신화는 그렇게 다시 온 것이다.
2. 북유럽의 신들
신화는 신성함이 필수인 이야기이다. 사람을 초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므로 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과학적 근거나 논리성이 없더라도 신성함과 권위로 숭배 받으며 이어져 오는 것, 그렇기에 신화는 이야기 자체의 신성함과 더불어 당시의 말하는 이의 신성함 역시 필요하다. 제사장이나 부족의 장과 같이 넘볼 수 없는 권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그저 소설 과도 같다.
세상의 모든 신화들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잘 알 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경이와 감동을 바탕으로 이루어 진 신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져가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신화엔 자신들의 신을 향한 기도와 숭배가 가득 담겨 있음이 당연하다. 그러나 어째선지 북유럽 신화 속 에선 그런 모습이 옅어 보인다. 신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정보다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과 의심이 감도는 오묘한 분위기. 신을 단순히 믿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않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긴장감은 북유럽 신화만의 새로운 신성함을 연출한다. 제대로 알 지 못하기에 믿을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멀고도 신비로운. 세계에 하나뿐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지닌 북유럽 신화는 내게 그 어떤 신화보다 입체적이며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북유럽 신화 속 세상은 무려 9개의 세계로 나뉜다. 일반적인 신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의 신화 속에서는 본 적 없는 규모이다.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그 세계들이 모두 신의 지배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이 신이 사는 곳과 신이 다스리는 여러 지역으로 구성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분명한 차이점이다. 이를 분명히 하듯, 북유럽의 신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다른 세계의 주민들과 싸워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즉, 신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영토와 더불어, 신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존재나 신이 지닌 한계를 시작부터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도 이어진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은 자신들을 위해 영토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이라 믿지는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위대하고 존엄한 숭배 대상으로서의 신이란 이름에는 걸맞지 않는, 부족한 모습 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정감이 가고 정말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다. 절대적이고 강인한 초월적 존재 라기보다는 그저 무리에서 특이하고 튀는 또한 조금 특별한 힘을 지닌 인간 정도의 모습. 일종의 종교이기도 한 신화가 이렇게나 재미있고 편한 소설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 머리를 조아리며 제사를 지내느라 여념이 없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정말 신화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3. 끝과 시작의 순환
북유럽 신화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라그나로크(Ragnarok)‘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은 어느 정도의 한계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것을 확실시 하는 것이 예언된 종말이자 신들의 몰락을 뜻하는 라그나로크인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시작과 동시에 정해진 이야기의 결말이다. 일반적 신화와는 달리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실재 책에서도 이야기 시작 전 소개부분부터 각 챕터 별 마지막에까지 꾸준히 라그나로크는 언급되고 예언된다. 단순한 이야기 상 복선이라기엔 너무도 명확하게 정해진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장에 이르러, 결국 라그나로크는 일어난다.
라그나로크를 알고 있던 신들의 왕, 오딘은 이를 피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고민과 방법을 행한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언제나 그렇듯 모든 신들과 회의를 하며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라그나로크 속에서 운명을 피해가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들은 각자의 정해진 운명을 따라 걸었다. 지혜로운 오딘이 괴로워하던 시간도 용감한 토르가 울부짖으며 싸운 일도 음험한 로키의 괴로움도 모두 정해진 결말을 향해 흘러갔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나 동시에 끝나지도 않았다. 책의 마지막 장이 되어서 이야기는 다시금 부활한다. 더 이상 책은 이어지지 않고 무엇 하나 끝나지 않은 채 다시금 책의 첫 머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 자체로도 이상스럽고 신비한 이야기는 자신만의 순환을 만들어 돌아감으로써 영원을 자아낸다.
4. 오랜 후의 세상
창조와 멸망, 재생과 순환을 일찍이 통달한 이들의 신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세상을 바라본 이들의 신화. 이 모든 것들이 그들만의 지식과 지혜를, 그들만의 마음과 세상을 담고 있을 것이다.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껴질 지 모르겠다. 특히나 편리함이란 과학에 의존하는 현대와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 쉬이 바뀌지 않는다. 사회의 변화는 빠르다 해도 인간이란 알맹이는 여전히 느리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서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가치가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무지에서 오는 신비로움과 상상력, 그리고 여유는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눈 앞의 있는 것이 과학적으로는 돌일지라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요정이자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이루는 사실은 단 한 가지이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진실을 반드시 세상의 사실, 그 한 가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 사실과는 틀릴지라도 세계를 자신만의 눈으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여유 넘치게 남의 세상도 받아드리고 구경하며 즐기는 것이 더욱 멋진 삶이 될 것이다. 과학과 신화의 공존. 상상만해도 떨리지 않는가. 현대는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시작과 끝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더욱 빠르게 말이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걸을 길이란 이제 스스로 만드는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데에 중요한 것은 남들과의 공통점이 아닌 차이점이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자신의 생각과 시각을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신화를 읽어 보자. 순수하게 세상을 탐구하던 그 눈을 배우면서, 지금에야 사라진 것들을 되짚으면서, 다시금, 세상을 바라보자.
Chapter
- 제2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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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일반부) - 강윤정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상미 /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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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상(일반부) - 서유경 /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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