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347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김동규

 

“혈압 오르는 것 같다.”

화해의 몸짓이 무르익을 즈음에 듣게 된 황망한 외마디 소리였다. 아내와 난 이 일이 있기 전 다퉜고, 월드컵 독일전이 있던 밤에서야 전반전 시청을 마다하고 가까스로 화해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기분 좋게 아점으로 해물덮밥을 먹고 커피까지 사 왔다. 뇌출혈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이내 ‘가래 끓는 듯한 소리’(death rattle)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소리가 죽음을 향해 가는 소리인줄을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119 대원들은 집에서부터 차 안에서까지 심폐소생술(CPR)을 하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계속되었다. 아마도 5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바이탈은 돌아오지 않았다. 급기야 의사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라고 다그치기에 이른다. 울며불며 저항을 해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뚜벅뚜벅 걸어왔고, 난 어렵사이 서명을 하고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이 그녀의 머리와 가슴에 손을 얹고 임종기도를 했다. 아마도 세상에 태어나 해본 가장 힘을 뺀 하지만 간절한 기도였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하늘에 대고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커튼이 쳐진 나와 아내 사이에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나가던 의사가 황급히 들어왔다. 바이탈 사인이 제대로 돌아온 것이다. 어서 수술을 하잔다. 그녀는 7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삶과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며 삶을 향한 투혼을 불살랐고, 상흔을 간직한 채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늦은 밤 집을 향하는 나에게 담당 의사는 언제라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수 있으니 전화를 켜 두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병원에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심 호전이 있나보다 하고 희망을 품었다. 맙소사, CT를 판독한 의사는 뇌사상태라고 했다. 순간 땅 밑으로 꺼져 들어가는 절망이 엄습했다. 다시 어둠이 내리고 잠시 집에 돌아온 사이에 그녀는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의사는 다음 날 새벽 2시 38분에 사망을 선언 했다. 혹여 나의 부재를 틈 타 작별을 한 것은 아닐까. 만 이틀이 채 못 되는 시간에 세상이 무너졌다. 그리고 나는 맹자가 말한 사궁민(四窮民) 중의 하나인 ‘환과고독’(鰥寡孤獨)의 ‘환’의 신세로 전락했다. 말 그대로 하소연할 데 없는 ‘홀아비’라는 비천한 처지가 되었다.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려야 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부산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작은 아이와 나 둘만이 던져진 공간을 덩그러니 맞닥뜨리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장례미사는 나의 혼돈이 절정에 이른 시간이었다. 세분의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많은 신자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그날 성당 마당에서 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아내가 왔음을 느끼며 잠시 눈물을 글썽인 이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미사를 집전하면서 흐느끼는 사제의 물기 섞인 위로며 신자들의 흐느낌마저 나만 모르는 거대한 ‘음모’라도 있는 것처럼 느꼈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를 보듯.

사별(bereavement), 이렇게 아프고 아리는 일인지 미처 몰랐다. 많은 죽음을 목격했지만 이렇게 나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넣은 일은 없었다. 세상은 아내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고, 나는 고아가 된 듯 느꼈다. 세상으로 이어진 모든 끈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눈물만 흘러내렸고, 술병만 쌓여갔다. 맨 정신으론 하루하루를 버틸 몸도 마음도 아니었다. 어린 딸아이의 황소 같은 눈망울이 애처로웠지만 아랑곳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장례를 마치고 한동안 물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평소 몸에 밴 기억  때문일까? 몸은 묵주를 들고 기도하도록 이끌었고 차츰 책을 읽을 힘이 생겼다. 그래서 읽은 책이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바오로딸)이며 ‘떠나는 사람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진실’(바오로딸) 같은 책이었다. 왜냐하면 아내 현자 베로니카의 영혼과 사후(死後)가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나의 고민은 곧 내 삶에 관한 문제로 넘어갔다. 사실 죽음은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테(Dante)가 베아트리체(Beatrice)를 찾아 ‘스틱스(styx)를 건넌 것처럼, 난들 아내인 베로니카를 찾아 건너가지 못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그 길이 푸근한 길 마냥 느껴졌다. 단지 숙제처럼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생각이 읽고, 걸으며 생각하고, 계속 쓰게 만든다.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난 책이 샐리 티스데일(Sallie Tisdale)이 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라는 책이다. 원제는 ‘Advice for Future Corpses’이다. 직역하자면, ‘미래의 송장들에게 주는 충고’이다. 한동안 ‘걸어 다니는 송장’이었다. 티스데일은 완화의료 전문가로서 죽음의 문제를 온전히 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를 내팽개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죽음이 있어 남겨진 삶을 더욱 멋지게 살아갈 긴장감을 갖게 된다. 아내를 떠나보낸 후에야 낭비한 시간들을 참회할 수 있게 되었다. 티스데일의 말마따나 우리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단지 아직 초등 5학년인 둘째 딸이 마음에 걸리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만으로 살기에는 삶이 애석(哀惜)하다. 고개를 돌려야 한다. 회두(回頭)의 시간이 남겨져 있다. 나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다면 예언의 능력과 예감의 능력을 주신 것이다. 아내가 자신의 죽음으로 나의 목숨을 늘려주고 갔음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복기(復棋)를 하듯이 아내의 죽음의 과정을 빠르게 복기할 수 있었다. 그 속도는 이 책의 진행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책의 ‘마지막 몇 달’, ‘집에서 모신다고?’, ‘마지막 몇 주’, ‘마지막 며칠’의 장절은 불과 이틀도 못되는 시간으로 눙쳐졌다. 그렇지만 이 장들에  소개된 이야기는 더욱 긴 시간을 두고 마음 졸이며 죽음을 맞이하는 더 심도 있는 내용이었기에 나의 부러움의 소이(所以)는 될지언정 무의미한 것들의 나열은 아니었다. 아직 살아갈 목숨이 남아 있으니 나와 딸들에게는 유의미하리라.

한동안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의 문제에 매여 있었다. 아내의 죽음이 ‘나쁜 죽음’이라 생각했었다. 아내는 사업의 마지막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파산을 하면서 아내는 아무런 조력 없이 법원 출입을 해야 했다. 법복(法服)들의 조여 오는 심문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머리에 뇌동맥류가 생겼음을 몰랐던 내가 자책의 나날을 살아야 하는 것이 어찌 새삼스러우랴. 사인은 ‘지주막하출혈’이었다.

아내가 떠난 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장 힘든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매일 새로운 감흥과 슬픈 내력이 빛깔을 달리 하는데, 타인들은 식상한 넋두리에 질색을 할 테고, 그 어디에서도 가슴 따뜻한 위로를 받아 누릴 수 없다. 심지어 마치 ‘싸나토스’(Thanatos, 죽음의 화신)인 양 쳐다보는 차가운 시선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몸 둘 바를 모르게 한다.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아내도 그랬다. 그렇게 죽을지 몰랐다. 나도 몰랐다. 그러니 죽음의 어둠이 내릴 것을 하나도 모르는 건방진 혹은 무지한  ‘미래의 송장들’이 이 책을 보면 옷깃을 여밀 수 있지 않을까? 사전 연명 의향서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딸들에게 미리 알릴 것이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니 말이다.

죽음을 목도하며 죽음으로 질주해가는 우리의 삶을 생각해본다. 아내는 일기에 불길한 죽음의 향기를 뿌려 놓았다. 처음엔 자작시인줄 알고 홍두깨를 맞기라도 한 듯 충격을 받았다. 찾아보니 홍윤숙의 ‘머지않아 떠날 그날을 위해’라는 시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해서 베껴 쓴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백수(白壽)를 누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축복하기 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미구(未久)의 어느 날, 머리맡에서 딸들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틀어놓고 성모송(聖母誦)을 라틴어로 읊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애비가 평생을 두고 외국어에 목숨을 걸었으니.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내 마음의 베아트리체, 베로니카여,
당신은 오늘 갔지만 내일은 우리 만날 것을 믿습니다.
Deo Gratias!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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