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352

“가까운 것을 가까이에”

- 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읽고


김양희

 

연필로 쓰기. 언젠가 김훈 작가의 인터뷰에서 보았다. 작가들의 특이한 습벽을 다룬 인터뷰였을 것이다. 기자 시절 기사쓰기부터 장편소설, 이런 저런 에세이, 기고 글을 쓰면서 컴퓨터로 작업한 적이 거의 없다고. 앉은뱅이책상을 끌어다 종이와 깎은 연필 여러 자루를 두고 지우개가루를 쌓아가며 글을 써 왔다고. 워드 프로세서를 비롯해 온갖 첨단의 글편집 매체가 나오는 시대에 참 기벽 중에 기벽이라고 생각했었다. 김훈 작가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이 외에도 많을 것이다. 우선 민족적 영웅이나 역사의 위대한 인물을 다룬 소설로 밀리언셀러, 스테디셀러를 기록했으니 국민작가라는 호칭이 손색없을 것 같다. 언론사 시절 그만의 ‘정론직필’이 보여준 정치적 입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보수와는 다르겠지만, 그에게 독특한 보수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사상이나 관심사의 반영인 듯 맵쌀맞은 문체. 흔히 주어와 동사로만 구성된 미사여구 없인 간결하고 선명한 문장들은, 어딘가 진정성과 정직함을 전달하는 것 같다. 이제는 그의 미학의 요체이자 인장이 되었다. 중언부언 형용사와 부사를 대중없이 늘어놓는 나 같은 독자는 그의 글 앞에서 마치 선생님께 혼나는 학생처럼 괜히 긴장을 하며 의식하는 ‘부작용’과 함께.
국민작가답게 오랜 세월 그의 글을 접하거나 읽어왔지만 그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일별하고 보니 노작가에게 외람된 표현인진 모르나 정말 ‘개성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가의 글에서 한 번도 주인공이나 주체로 등장한 적 없었던 것 같은) 삼십대 여성으로 그의 글 앞에서 왠지 주눅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영웅론에서 풍기는 지나친 민족주의와 가부장제적 마인드, 좋게 말하면 원리원칙, 일관성이겠지만 사실 기이한 습벽과 스타일, 그러한 그의 보수성(<연필로 쓰기>에서 그는 스스로는 ‘꼰대’라고 말한다!)에 요즘 세대로서 갑갑함을 느낀다. 하지만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이번 책과 같이 새로운 글이 묶여 나오거나 일정한 때가 되면 노작가의 책을 들여다보게 된다. 무모하리만치 고집불통의 습벽들로 시대의 속도와 전혀 맞지 않는 호흡으로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 부박한 세상에 모슨 말을 걸고 있는지 궁금해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좀체 만날 것 같지 않은 40년대 생 남성 대 작가와 80년대 생 여성 독자는 그 끊임없는 말 걸기 속에서 이따금 만난다.
<연필로 쓰기>는 지금까지의 김훈 작가의 글들이 그랬듯 투박하면서 아날로그적 정취를 자극하는 글쓰기 이면에 작가의 장인정신을 느끼게 하는 결기와 신념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말년에 접어든 작가의 일상과 주변 생활세계에 대한 스케치를 하는가 싶더니, 어두운 사회현안, 우리 근현대사의 상처에 대한 성찰을 어느 결에 이어간다. 나는 일상과 주변 풍광에 대한 심심한 단상인 첫 글을 읽으며 책 전체에 포진한 절망과 슬픔, 분노, 그럼에도 지며리 간직한 긍정과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일산의 호수공원의 풍경을 그린 글이다. 도시의 이름은 지금의 우리에게 깔끔하고 번화한 신도시의 풍요와 연결된다. 하지만 이곳이 소박한 변두리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에 이사 와 70대가 된 지금까지 20여년을 살고 있다는 작가에게 이곳은 매일같이 거닐고 만나고 숨 쉬는 삶터다. 숲에 서식하는 동물들, 풀과 나무들을 쓸어보며 어려운 계절을 잘 나고 있는지 그들의 생태를 살핀다. 개를 산책시키는 주민들을 만나고 장기를 두거나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에게 안부를 묻고 같이 섞인다. 어린 아이와 나온 젊은 엄마를 잠시 염려하기도, 그들의 모습에서 괜스레 위로를 받기도 한다. 자연의 풍광이나 작은 뭇짐승에서부터 이웃주민들과의 마주침에 이르기까지 그는 관찰하거나 관조하지 않고 사색하고 성찰한다.
이입하고 연민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개입한다. 그 와중에 이 심상하고 하잘 것 없는 것들을 글감으로 쓰기 위해 메모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글에서 선생의 시선은 공원의 자연물에서 시작해 어린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 어린아이들, 노인들로 옮겨 가며 끝난다. 작가는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고 말한다.
“가까운 것을 가까이” 하는 작가의 삶의 태도가 집적된 글을 바로 뒤에 이어지는 <밥과 똥>이 아닐까. ‘밥’과 ‘똥’이라니. 파격이고 충격이다. 가능한 멀리 두고 싶은 두 단어를 과감하게 병치할 수 있는 작가는 김훈 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그 선정성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선생 특유의 저널리즘적 치밀함과 문학적 감각으로 풀어낸 똥의 생태,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미(!)학이라 할 만하다. 언급하기조차 거북해지고 질겁하게 되는 주제를 장황한 글로 사유한 이유는, 밥처럼 똥 역시 긴절하고도 지엄한 존재라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것이 아닐까. “서울의 이 거대하고 운명적인 똥을 생각하면서 나는 문득 삶에 대한 경건성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 처리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노고에 감사한다. 설치지 말고 까불지 말고, 말이나 똥을 함부로 내지르지 말고, 흐르는 강물 옆에서 최고 포식자의 부끄러움을 늘 기억하자고 속으로 다짐한다.”
삶의 경건성. 똥과 같이 낮고 혐오스러운 것에 마저 깊이 사색하는 것은 바로 삶의 엄정함과 지엄함을 깨닫고 회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작년 이맘 때 동네 구청의 지하 강당에서 선생의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부산까지 먼 걸음을 하면서 도심이나 관광지, 대학의 강당이 아니라 변두리 동네를 찾은 것이 의아했는데 선생은 강연에서 말했다. 부산은 피란수도로서 선생에게도 의미가 큰 곳이라고. 강연회가 진행된 곳은 한국전쟁 당시 주민들이 폭격을 피해 대피했던 지하방공호였다. 이 책에도 한국전쟁과 관련한 글들이 많다. <서울<->신의주>라는 글에도 1950년 겨울 피난열차에 실려 부산으로 피난 간 이야기가 나온다. 구청의 옛 방공호 지하 강당에서 작가는 전쟁과 피란의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기차 지붕에 앉은 채 8박9일이 걸려서 간 피난길에 많은 이들이 떨어져 죽거나 얼어 죽거나 터널의 철근 콘크리트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고. 그런데도 기차의 객실을 차지한 고관대작들은 피아노며 가구에 요강단지까지 싣고 갔다고.
작년 작가의 강연회에서 내가 정작 인상 깊었던 것은 달리 있었다. 바로 작가의 ‘말년성’에 대한 기억이다. 48년생이시니 이제 생의 노년에 접어들었다 할 작가는 그날도 불편한 컨디션으로 먼 강연에 참여하셨다고 사회자가 전했다. 떨리는 손,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데 그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힘 있고도 무게감 있을 수 없었다. 어두침침한 강당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숨소리 죽여 집중하고 경청하던 기억. 노쇠하고 쇠약한 작가는 <연필로 쓰기>에서 이 사회의 가장 낮고 어둡고 습한 곳에 있는 이들을 집요하게 탐사하고 돌본다. 동거차도에서 만난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청년 배달노동자, 늦게 글자를 배워 시를 쓰는 칠곡, 곡성, 양양, 순천 할매들, 화살머리고지 등 전장에서 순국한 국군 장병들,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피해주민들... 최근까지도 (이 책에도 나오는)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인 배달노동자 박정훈 씨, 태안의 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운명을 달리한 고 김용균 씨에 대해 강연하고 글을 기고한 것으로 안다. 동시대 그 어느 작가보다도, 부박한 현실에 아파하고 개입하는 작가가 아닐까. 그리고 작가 자신의 일생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하고 뜨거운 글들이 아닐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품 넓고, 무엇보다 따뜻한 시선에 ‘말년성’이라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말처럼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고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한”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인 것일까.
김훈 작가의 신작 소식을 접할 때면 망설이게 될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 내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 작가에게서 훈계나 계도를 듣는 듯 주눅들 때가 있다.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관에(그리고 남성관도)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끊임없이 글을 써내며 지치지 않고 말을 건네는 작가라는 사실에, 결국 책장을 넘겨보고 만다. 그의 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거장이나 대가라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가장 낮고 아픈 곳의 이야기를 가장 높고 고결한 방식으로, 가장 첨단이고 최신의 세태를 무모하리만치 우직하고 투박하며 또한 정갈한 방식으로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면, 흔히들 언급하는 문체나 스타일 이외의 것을 말하고 싶다. 다름 아닌 ‘늙어갈수록’ 가까운 것을 가까이 두려는 마음, 사람과 사물, 이 ‘누항’의 거리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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