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356

괜찮다며 다독거리는 순명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

 

안종열

 

장영희 교수님!
제가 과문해서 여쭤봅니다. 묘비명 있으신지요? 만약 없다면, 주제넘지만 제가 정해드리면 안될까요? 묘비명은 교수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참배하러오는 이들이 읽고 새겨야 할 대목이겠죠. 당신이 남긴 말이 얼마나 울림이 큰지, 사람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또렷하게 보여주는 글이 여기 있습니다. 자그만 나비의 날갯짓이, 그 가녀린 속삭임이 어떤 회리바람을 불러일으킬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마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131쪽)

어때요, 묘비명으로 어울리지 않나요? 여기에 제가 딱 한 줄만 덧붙일게요. “여러분 이런 말 아끼지 말고 두루두루 나누세요.”

처음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전율이 확 끼쳤답니다. 영락없이 저에게 건네는 메시지였거든요. 나를 일으키는 말, 사람을 살리는 기운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참 많더라고요. 한껏 누리고 있으면서 마음이 삐뚤어져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요. 어떻게 이리 한심할 수 있을까 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집안일이 그렇고 아내와의 관계도 꼬여만 갑니다. 아이들과의 정서적 거리도 꽤 멀어진 것 같고요. 고립무원이란 말을 자주 떠올린답니다.

무슨 짓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건 절망으로 메다꽂는 치명적인 말이었어요. 그때의 상황과 상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냉정한 경멸의 기운을 읽었을 때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답니다. 그 후론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어요. 저 또한 독화살을 날려 다른 이들을 질리게 한 적이 있지요. 얼핏 떠올려 봐도 몇 손가락 꼽을 정도입니다. 시름에 잠겨 인근 생태공원을 걷고 있던 차에 마침 지나치던 한 무리 여행자들이 제게 촬영을 부탁해왔어요. 괜찮으시다면 사진 좀 찍어 달라고. 대뜸 튀어나온 말이...... “전 한참 지나왔잖아요. 왜 번거롭게 다시 불러 세우세요. 알아서들 하세요.” 격한 거절의 말을 내뱉자마자 저부터 뜨끔했답니다. 다른 이에게 뿜으려고 머금고 있던 저주를 그들에게 투사한 셈이었죠. 퍼뜩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었답니다. 저 때문에 그분들 여행은 잡쳤겠죠.
 
이렇게 흐리고 구겨진 저를 붙잡아준 말, 마음이 빨아들인 목소리가 바로 교수님이 건넨 “괜찮아! 괜찮아!”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심리 모드가 바뀌었다 할까요. 갑자기 말끔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간만에 제 본디 모습을 되찾게 해준 거죠. 혼란스런 켜를 한 꺼풀 들추니 그래도 아직 괜찮은 구석이 남아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저를 일으켜준 것입니다.

당신의 서글서글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매체를 통해 접한 당신의 인상은 소박하고 친근하며 스스럼없이 푸근해 보였습니다. 젠체하지 않는 당신에게서 먹물과 은수저를 떠올릴 순 없었지요. 글도 씩씩하고 진솔하게 쓰는 통에 재수 없단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답니다. 구름 위의 스승이 아랫것들을 굽어보며 한 수 가르쳐주는 훈계조의 글은 보기만 해도 질색입니다, 왠 유체이탈 화법이냐며 비아냥거리기 십상인데 맑은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는 당신의 글은 바짝 경계하고 있던 마음을 그만 무장해제 시켜버리더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위로하고 달래주며 고무하려고 안달하지는 않으셨어요. 이렇게 솔직담백한 대도 글이 너무 신파조가 아닐까, 지나치게 악착같고 필사적으로 들리지는 않을까 늘 저어하곤 했죠. 또 당신은 신비니, 기적이니 하는 것을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 기적 같은 삶을 살기가 싫다. 기적이 아닌,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절대 기적일 수 없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9쪽)

그러니 당신의 말은 뭐든 곧이들리더라고요. 그런 당신이 제게 괜찮다, 다 괜찮다며 다독거렸으니. 속삭임의 다정한 온기와 측은히 여기는 습윤한 기운에 스르르 풀려버렸던 것이겠지요. 교수님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아연했던 적이 있었죠. 소아마비 외톨이 어린애에게 깨엿 장수가 들려준 그 말, 이제 그걸 저같이 상심한 이들에게 되갚고 있는 셈이네요. 묘비명을 읽게 될 사람들까지요.

그래서 저는 교수님을 사숙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위로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만능열쇠를 손에 쥐고픈 욕심도 있었고요. 교수님! 묘비명에 새길 글 말고 뭔가 하나 더 해드리고 싶은데 어떨는지요. 제가 교수님의 고해를 받아주면 안될까요. 무슨 자격으로 그러느냐고 물으시겠죠. 성사를 주재하는 사제는 비록 아니지만 교수님께는 왠지 신묘한 답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많은 빚을 졌으니까 당연히 갚아야죠. 아니 그런 부채감 때문이 아니라 교수님을 좋아하니까요. 교수님을 생각하면 상상력이 뭉클뭉클 돋아난답니다. 아껴주고픈 이를 위해서라면 적은 용량의 뇌라도 풀가동할 수 있겠죠. 그러니 제게 털어놓으세요. 이번엔 저에게 기대보세요.

교수님! 희망은 운명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셨죠. 그 말 늘 곱씹을게요.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논문 따위쯤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선 필사적 몸부림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순명의 느낌, 아니,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다시 속삭여 주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18~19쪽)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운명에 순응하는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에게 속삭이는 온화한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걸 느끼는 순간 악연이 선한 인연으로 화하고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뜨거워졌답니다. 이제 제가 그 주문을 사용해볼게요. 효과를 장담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믿어도 되겠죠. 마법이 꼭 일어나야 할 텐데. 한 치 어긋남도 없는 당신의 체험이니 그 말에 의지하여 다시 추슬러 보렵니다.

스산한 가을 밤 교수님의 다독거림을 받으며 속삭임을 자장가 삼아 꿀 같은 단잠에 빠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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