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627

화가 난 이들의 보금자리를 보면서
-조남주의 사하맨션을 읽고


한미옥

 

  “젠장, 정말 못해 먹겠네!”
  화가 난 남편이 현관문을 세게 닫고 들어오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왜 그러는지 감이 오지만 애써 물어보지 않는 건 그나마 잘 챙겨 돌아온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남편은 작은 트럭을 개조해 여기저기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순대 파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남부끄러운 일이라며 마스크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일하더니 제법 단골도 생기고 수입이 올라오니 서서히 맨 얼굴을 드러내며 사업을 이어갔다. 호사다마라고 했던지 승승장구하던 남편의 사업은 누군가의 신고로 영업정지를 당했고 얼마 동안은 몸을 사려야 할 상황이었다.
  “여보, 그거 알아? 신도시라고 불리는 아파트 단지 있잖아. 아파트 장이 서는 날이면 음료수 사들고 관리사무소부터 들러야 돼. 그렇지 않으면 화장실도 제대로 못 쓴다 이 말이지. 뭐 팰리스다 뭐다 해서 입주민이 아니면 아예 아파트 땅도 못 밟게 한다니까!”
  순대 삶는 냄새가 남편의 넋두리 곳곳에 베여 있는 것 같다. 조촐한 술상을 내어 놓으며 나는 얼마 전 읽었던 조남주의 사하맨션을 떠올렸다. 사하맨션은 등장인물의 사연과 사건 중심으로 계급 사회의 단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암암리에 사람들을 계급별로 나누고, 그에 따라 우대하기도 무시하기도 하며 나름의 질서를 영위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하맨션은 소설이라는 허구성을 가장한 현실 비판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한 그런 책이었다. 주변인이라고 했던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를 이르던 말. 그 존재들이 모여 살면서 명명된 계급이 소설 속 ‘사하’이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던 결과론적으로 살인자로 낙인찍혀 쫒기는 도경이나 낙태 시술을 하다가 사고가 나 도망쳐 온 꽃님이 할머니,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없던 사라 모두가 비참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한편 나는 L2로 태어났지만 보육사의 꿈을 가졌던 은진이야 말로 나와 동일시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벽에 붙여 놓고 학창시절을 보낸 전형적인 사하의 사람이다. 자라면서 봐왔던 혹은 겪었던 부조리와 차별은 나를 채찍질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에겐 교사라는 꿈이 있었으니까.
  ‘르상티망’이라는 철학용어가 있다. 약자의 입장에서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시기심을 뜻하는 말인데, 예를 들면 고가의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천 원짜리 컵순대를 먹어도 괜찮아. 남편의 사랑이 스며있으니까 하는 심리를 말한다. 나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사하의 사람들처럼 나비 폭동을 일으킬 용기도 없었거니와 내가 속한 이 세계를 언젠가는 탈출하여 더 나은 L의 인생을 살 것이라는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하의 사람들처럼 끝까지 사하맨션과 함께 살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 처지를 부정하고 싶었던 거라고 솔직히 말하고 싶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이 그립고 돌이키고 싶은 건 어떤 의미일까?
  책을 덮고 눈을 감으면 ‘난 이제 지렁이나 선인장이나 그런 것처럼 그냥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 이 구절이 맴돈다. 제대로? 그래 제대로! 나는 남편에게 돈을 적게 벌어 와도 되니 더 이상 아파트에는 순대 차를 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남편이 도경이나 진경처럼 버티는 삶을 사는 것이 싫다. 떳떳하게 자릿세를 내고 장사를 하는데 마치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인 듯 화장실 쓰는 것도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무엇보다 공손이라곤 느낄 수 없는 말투에다 자신들이 마치 성에 사는 귀족층이나 왕족이나 된 듯 남편을 포함한 장사치들을 깔보는 그런 세상에 남편을 등 떠밀 순 없다. 그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위로와 배려를 받고 나니 그걸 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따질 수 없었다던 이아 엄마의 말처럼 나와 남편은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위로와 배려를 받는 입장이 아니니까 시시비비에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주잔을 들이키는 남편에게 인터넷 기사를 확대해 보여 주었다. 조남주 작가의 간담회 발언인데 소설의 주 공간인 사하맨션은 사하공화국에서 따왔다. 그 곳은 기온차가 100도 이상 되는 곳이며 전 세계 50%가 되는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묘한 은유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소설 속 공간을 사하맨션이라고 붙였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에게 우리는 보석이 숨겨진 시간과 공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의 추위와 더위를 견뎌 보자고 했다. 곧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것이고, 발견의 기쁨을 절대 우리만 가지지 말고 어려운 이웃과 같이 나누어 가지자고 말했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는 눈초리로 나를 보는 남편이 참 애처롭다. 세계 경제가 이렇게 암흑기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회사가 공중분해 되어버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빵빵한 월급에 보너스 까지 순대집 사장과 농담 따먹기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댔을 사람인데 불황이라는 늪이 참 깊구나. 내 주변엔 신용불량자들이 많아졌고 생활고에 이혼율이 전국 상위라는데 이런 불황에 허우적대는 서민들을 상대로 보금자리론이니 햇살론이니 격려나 위로의 가면을 쓴 은행 대출 상품 광고를 보면서 남편을 괄시했던 그 아파트 사람들은 과연 은행 빚 하나 없이 진정한 갑부인지 아니면 껍데기만 갑부인지 태풍이라도 불어 한바탕 세상을 휘젓고 갔으면 좋겠다.
  술상 옆에 널브러져 잠든 남편의 양말을 벗긴다. 고생했어요 라는 말보다 버텨주고 견뎌줘서 고마워요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내일은 또 어디를 기웃거리며 순대 가마솥을 열 것인지. 남편의 보금자리는 바로 여기 우리 가족 곁인데 매일 매일 둥지를 찾아다니는 남편의 부표를 생각하니 어떤 대기업이 도시를 인수하건 빨리 민주적이고 훈훈한 타운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 타운에는 적어도 직업과 재산으로 계급을 나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하맨션, 화가 난 이들의 보금자리를 보고 난 후 나는 나만의 타운을 그려 보았다. 남편이 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꿈꾸는 타운을 같이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 곳은 누구든 눈치 없이 머무를 수 있으며 먹고 살 걱정에서 자유로운 곳......모두의 공간이면서 각자의 공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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