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350

<당신이 옳다>


권현지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떠나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어도 억울한 정도로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왜, 이유가 뭘까.
과거처럼 밥을 굶지도, 옷을 살 수 없는 형편도 아닌데 왜 예전보다 더 못한 마음의 빛을 드리운 사람들이 많은걸까. 나는 그러한 마음의 기근은 어떻게 해야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처음, 작가 정혜신을 접했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라는 자신의 자기 확신이 필요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모든 심리적 어려움의 원인이. 뇌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인 요인임을 인식 할 필요가 있다.

원래의 ‘나’로 살고 있는게 맞는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 낸 하나의 상(像)에 갇혀 스스로를 가둬버린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내 느낌이나 감정을 온전히 느껴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을 두드리고, 내가 옳았다는 공감을 끊임없이 할 필요가 있다. 무기력한 내 자신과 타임을 공감해 줄 때 그제서야 액서서리나 스펙 차원의 ‘나’아 아닌 존재 차원의 ‘나’를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기 전, 매일을 전투적으로 살았다. 감정이 사방으로 곤두박질 칠 때도 그걸 무시하며 그냥 꾸역꾸역 살았다. 항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책 들을 마구잡이로 읽었다. 요즘 내 마음이 어떠한지는 살펴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며 나의 감정을 희생하며 말이다. 나 자신에게 어떠한 충고와 조언, 평가와 비판을 하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에, 내 마음 자체에 공감하니 마음이 점점 더 단단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공감이라는 방법을 통해 나는, 나와 그리고 타인들의 마음의 기근. 정신적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통해 동굴에서 벗어나 마음의 심장을 다시 살린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은 사실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찾아왔다. 요양병원에 몇 년을 계셨지만 초라해진 할머니의 모습을 마주하기가 두렵고 무서워 잘 찾아뵙지도 않던 내가 이제 서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던 할머니라는 존재의 부재를 감지했다.

길을 걷다 나이 든 어르신들을 볼 때. 할머니가 좋아하던 아귀찜을 먹을 때, 할머니와 함께 언양 이모 집으로 가던 12번 버스를 마주할 때. 할머니가 즐겨 신던 줄무늬 양말을 양말통에서 우연히 집을 때. 그리움이 밀려와 견딜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탈진이 극한에 일렀다. 순식간에 마음이 허물어졌고, 숨기고 있던 연약한 속살이 금방이라도 드러나 버릴 것 같아 하루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그 때 책장에 꽂혀 있던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가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 읽고 되새김질하면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던 정혜신의 영감자 남편 이명수 씨의 말이 떠올라 조용한 카페에 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 무작정 읽었다. 그게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된 두 번째 계기다.

감정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정혜신, <당신은 옳다>中에서)

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극복해야할 대상, 병적 감정이 아니라 순하게 수용해야할 삶의 중요한 감정 말이다. 그렇다. 나는 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것도 나를 10년 넘게 키워 준 아주 가까운 나의 사람을. 25년을 마주한 나의 소중한 존재를. 그런데 나는 죽음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거다.

죽음을 겪은 후에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게 외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일 거다. 그러니 할머니의 죽음 후에 내가 느끼는 우울과 무기력은 반드시 필요한 감정 반응이며 긍정적 신호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나는 정말 옳았던 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생전 처음 할머니의 앙상한 팔 다리를 젖은 수건으로 닦고, 밥과 약을 먹여드리고 양치를 시키는 순간에도 나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으로만 삭히고 이어폰을 나눠끼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전해야만 했던 아쉬움과 회한도, 할머니와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치유와 평화의 과정으로 그 순간도 후회 할 필요 없이 옳았던 거다.

<당신이 옿다>에서는 이렇듯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들 삶의 속성을 바탕으로 ‘도움이 되는 도움’ 이론이 아닌 실질적인 위력을 갖는 실용적인 심리학인 소박한 심리학. ‘적정 심리학’으로 이름 붙혀 누구에게든 치유의 선물을 주고 있다.

다정한 전사가 직접 전하는 공감과 심리적 심폐소생술. 이게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이자, 우리의 틀린 감정에 소금이 아닌 동아줄 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자’가 될 때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고 구원하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치유의 시작임을 깨닫자.

나도 옳고, 당신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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