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관조하는 눈으로 바라본 그리스 로마 신화
<마흔의 공허함,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를 읽고
박경옥
개인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는 관련 서적을 일부러 적극적으로 찾아서 읽을 정도로 관심은 많지만, 이른바 필독서라는 견해에 동의한 적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서양 문화예술이나 관용어구 등에 관심이 많다면 읽어볼 만큼의 흥미는 있겠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이상의 의미는 딱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천 년 전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생겨나고 향유한 이야기라면, 그것만으로도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이름이 워낙 길고 낯설어서 기억하기 어려운 건 둘째 치고, 현대 한국 정서에서는 도저히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가 온당하다거나 권장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대목이 종종 있다.
제우스가 바람둥이인 것은 얼마나 악명이 널리 퍼졌는지 굳이 성토할 의욕조차 사라질 지경이고, 신분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등 계급의식이나 차별의식이 표출되는 줄거리도 종종 나온다. 현대 관점에서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 맹신하지 않는 비판의식, 굴종하지 않는 당당함 등 긍정적인 태도로 평가받을 일이 불경죄로 취급되며 신들이 처벌하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많은 이야기에서 신이랍시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강력한 힘은 있지만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 점은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며, 그 외에도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이다. 이쯤 되면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 그리스 신화를 믿는 것이냐는 식의 이야기는 오히려 깜찍한 농담처럼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마흔의 공허함,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를 읽은 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냉소적이던 내 관점은 바뀌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표면적인 내용만을 받아들일 때와,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에 비로소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비롯해서, 책 곳곳에서 마흔 나이에 생각하고 써내려가는 글이라는 것이 여러 번 언급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마흔이란 마흔 살을 꼭 집어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학창시절을 끝내고 사회생활을 할 만큼 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관점이라는 의미에 훨씬 더 가깝다. 본문에서는 수시로 저자 개인의 경험을 수필을 쓰듯이 끄집어내거나,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와는 무관한 다른 책이 인용되고는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을 기대한다면 당혹스러울 구성이지만, 이 책에는 더없이 합당한 구성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신화 자체가 아니라 신화를 매개체로 이런저런 사회적 테마를 떠올리며 그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미다스의 손이라는 표현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미다스는 신에게 손에 닿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자 음식이 금으로 변해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고, 심지어 가족마저 금덩이로 만들어버린다. 다행히 미다스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자, 신은 자비롭게 그 소원을 취소해준다.
오랫동안 미다스라는 이름은 탐욕, 과욕, 식견 없는 어리석음을 뜻했다. 지금도 어린이용 그리스 로마 신화 서적에서는 저런 교훈이 종종 강조된다. 하지만 오늘날 미다스의 손은 황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성공을 거듭하는 사람에 대한 찬사처럼 통용된다. 원전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뜻을 오독하고 곡해하는 사례가 되겠지만, 고정된 해석을 맹종하지 않고 다양하고 독자적인 해석을 이끌어낸 사례도 될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면서 관점도 변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 책은 후자의 시선이 두드러지며, 그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이 책에서 이런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챕터라면, 단연 이카로스 이야기를 들고 싶다. 이카로스는 다이달로스와 함께 촛농으로 깃털을 붙여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지만, 태양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말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너무 높이 날았다가 추락한 인물이다.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경고를 무시했다가 화를 당했다는 것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너무 높은 곳으로 오르려 했다가 응보를 받았다는 교훈담처럼 주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카로스는 ‘자신의 이상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는 자’로 재조명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카로스더러 무모하다고 성토하는 대신, ‘꿈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한다. 또한 동시에 이카로스가 대책 없이 무작정 도전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점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이카로스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것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밟아야 했다고 충고하는 입장이 된다. 여기에서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의욕이 앞서 준비가 부실한 도전정신으로 탈바꿈한다. 이카로스를 지탄한다면 그것은 다이달로스의 주의를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고, 감히 태양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불경을 저질렀기 때문도 아니라, 준비가 부실한 상황에서 도전해 실패를 초래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야말로 무릎을 탁 쳤다. 불가능하다던 목표가 조금 진척될 것 같으면, 거기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욱 많은 것을 준비해서 조금씩 더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수많은 발전과 진보를 이룩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도전정신과 철저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없었다면, 오늘날 사회는 옛날 사회에 비해 더 나아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카로스가 살아남았다면, 그 후 보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재도전을 했다면 이번에는 태양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태양 근처에는 공기가 없어서 사람이 호흡할 수 없고, 사람이 팔을 움직여서 태양까지 가기에는 태양은 너무나 먼 곳에 있으며, 설사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태양의 표면온도가 높아서 너무 뜨거워 근처에 가지도 못할 거라는 식의 이야기가 줄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신화적 모티브만을 따로 떼어 바라본다면, 이카로스가 태양에 다가간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을지언정, 실험과 도전을 거듭하며 조금씩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취의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이루는 수많은 것들이 그렇게 조금씩 발전하면서 이루어져왔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을 무조건 도전정신으로 칭송하지도 않는다. 파에톤이 태양 마차를 몰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태양을 궤도에서 이탈시켜 큰 재앙을 초래했을 때, 저자는 파에톤이 함부로 만용을 부리다가 불행을 초래했다고 단정해서 말한다. 마치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연히 지켜야 할 법률과 도덕이 있는 것처럼,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는 것은 도전정신이 아닌 것이다.
이 책에는 이처럼 학창 시절 이른바 필독서라는 책을 읽기만 했을 때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수많은 점을 포착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할 만큼 한 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통찰력과 식견이 돋보이는 대목이 많아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요 내용은 줄줄 외울 수 있을 만큼 관련 서적을 많이 읽은 입장에서도 새롭고 색다르고 신선하고 참신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색다른 많은 교훈과 귀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도, 통찰력 있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이끌어내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안내하고 있는 책이다.
Chapter
- 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류호성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 대상(학생부) - 박수정 /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을 읽고
- 금상(일반부) - 김동규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 금상(일반부) - 김영규 / <연필로 쓰기>를 읽고
- 금상(학생부) - 손은수 / <지금 여기 나를 쓰다>를 읽고
- 금상(학생부) - 하현지 /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읽고
- 은상(일반부) - 김양희 / <연필로 쓰기>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안종열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 은상(일반부) - 한미옥 / <사하맨션>을 읽고
- 은상(학생부) - 김민정 /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고
- 은상(학생부) - 김서영 /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을 읽고
- 은상(학생부) - 신정우 / <유관순>을 읽고
- 동상(일반부) - 권현지 / <당신이 옳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규리 / <당신이 옳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경옥 / <마흔의 공허함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정현경 / <디어 에번 핸슨>을 읽고
- 동상(일반부) - 한명주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진주 / <소년이 온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배정현 /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갈래>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재연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 동상(학생부) - 장유민 / <지금 여기 나를 쓰다>를 읽고
- 동상(학생부) - 한민지 / <블랙아웃>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