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357

소년은 어디쯤일까?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김진주

 

토요일, 학교에서 자습 중 공부가 지루해서 책장에서 가장 가벼워 보이는 책을 골랐다. 예상하지 못한 내용에 ‘어…?’ 했고, 잠깐 읽다가 덮으려 했던 손이 책의 마지막 표지를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덮었을 때 나는 코가 벌렁거리고 눈을 수차례 깜빡이며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책을 덮은 그 날 자기 전 결국 조용히 베개를 적시던 그 순간까지 심장에 추를 매단듯한 기분이었다. 그 날의 광주에 있었을 동호, 정대, 정미 은숙이, 진수, 영재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입술을 달싹거리다 잠들었던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머리에 떠오르는 감사 하다고 하는 말은 그들의 희생이 꼭 필요했다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각 장마다 동호부터 동호의 주변 인물로 화자가 달라진다. 나는 이런 책의 구성이 나이, 성별 관계없이 짓밟혔던 그 날의 광주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은 읽고 나서 너무 힘들었다. 동호의 이야기는 있을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하는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동호의 형이 동호의 이야기를 써도 된다고 대신 다시는 어떤 모독도 받지 않게 잘 써주셔야 한다고 허락하는 장면에선 허락을 구하는 한강 작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직도 광주 민주화운동이 폭도라는 글이 인터넷에 많이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5.18 광주사태가 무슨 얼어붙어 죽을 놈의 광주 민주화운동이야’라는 제목의 글에서 잡혀가는 시민군의 사진 밑에 “폭도 생들이 자칭 민주화 열사라고 깝죽거리고 있고, 민주 유공자가 되어 보훈처에서 보상금 매월 꼬박꼬박 수령을 타 먹는다.”라는 글을 보았을 때 동호의 형과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지 내 가슴이다. 타들어 갔다.
 가장 인상적이고 가슴 아팠던 이야기는 정대와 동호의 어머니 이야기였다. 정대의 이야기에서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이 장면은 털이 삐쭉 설 정도로 한스러웠다. 또 동호의 어머니가 자신을 꽃핀 쪽으로 이끄는 손을 회상하는 장면은 책장을 더 넘길 수 없을 만큼 내 손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다.
 난 책을 읽으면서 분노 가득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계엄군은 왜 시민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걸까 봐 사람을 때리고 학대하고 죽이고 또 그 시체들을 가져가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조사실에서 고문을 받으며 미쳐가는 사람들을 보았으면서…. 계엄군들이 너무 원망스럽다. 다 같이 시민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게다가 평생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도 먹지도 그렇다고 죽지도 못하고 고통에 시달렸으면 하는 사람은 너무나 멀쩡하게 잘살고 있다. 누군가의 권력욕 때문에 3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정권 때 이 책을 쓴 한강 작가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민주가 무엇이길래…. 광주 민주화운동을 겪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민주를 운운하며 서로 물어뜯고 있다.
 소년은 누구일까? 동호일 수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 일 수도 모두가 원하는 민주일 수도 있다. 소년은 온다. 소년은 어디쯤일까? 소년은 이미 왔다. 불꽃으로 간 소년은 봄에 핀 꽃으로, 우리의 웃음꽃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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