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응원, 곁에서 호응하기
- 법정스님 인생응원가를 읽고
한미옥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베란다로 나가 깨진 장독 뚜껑에 심겨 있는 갖가지 화분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시들시들한 이파리를 달고 있는, 누가 보면 다 죽어가는 잡초쯤으로 생각하는 나무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싹을 불쑥 내미는 기특한 녀석들이다. ‘잘 잤어? 밤새 더 예뻐졌구나.’ 혼잣말로 하는 인사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언어다. ‘소통’이라고 불리는 나만의 언어. 식물과 교감하는 언어에는 모음도 자음도 된소리도 모든 음운이 하나의 언어가 된다. 목소리를 듣고 자란 나무는 꽃향기도 다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날 우울하고 겁에 질려 있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자란 우리 집 꽃나무는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을지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삶이라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다 부질없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세상일은 잘 굴러가고 제대로 똑바로 살지 않아도 인생은 그럭저럭 살만한 것으로 세월에 흔적을 새기는 그러한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이 나는 부당하다고 느꼈었다. 버려져야 할 것들이 중심을 꿰차고 앉아 만물을 조종하는 것처럼, 세상은 삐뚤어진 채로 삐딱하게 사람을 이용해간다고 혼자만의 소설을 쓴 적도 있다. 그러던 중 과연 인생이란 세상이란 그 자체로 응원 받을 만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나는 법정 스님의 인생응원가를 통해 찾았다.
나는 어릴 때 뜨거운 물이 목으로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보통의 목소리를 잃고 살다가 반쯤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저 음성을 낸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채로 지금까지 지내왔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다면 나라는 인생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지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지극히 섬세한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처 받기 싫어 ‘배려’가 미덕인 채로 살아왔다. 어쩔 때는 상대방이 내 생각과 같지 않으면 예민하고 불안해지면서 상대를 나의 틀에 끼워 맞추려고 집착하기도 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장애를 가진 나 자신으로 돌리며 자책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하루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만 벙긋대고 있는 나와 마주했다. 절망이라는 것이 내 목구멍 앞에 버티고 서 내 속의 온갖 말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때 법정스님은 책을 통해 ‘받아들임’을 가르쳐 주셨다. ‘만족’과 ‘행복’에 대한 설교를 ‘침묵’으로 말씀해 주셨다.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뀌듯 입은 재앙의 문이기도 하므로 엄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니 지금을 머릿돌로 삼아 새롭게 나 자신을 다듬어 보라고 하셨다. 오늘이 어제의 연속이 아니라 새날인 것처럼 나는 상처 받고 장애를 가진 어제를 벗어나 오늘은 받아들일 마음을 준비했어야 했다. 그것을 스님은 마음비우기라고 하셨고,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순리대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나의 정신으로 지금 주어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격려해 주시는 듯 했다. 마음을 비우려면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쓸데없는 대화를 피해야 하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너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고, 문명의 소리는 마음을 자꾸 어지럽히니 생명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귀띔해 주셨다. ‘그렇지.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가 자연의 소리가 시작되는 시발점이지.’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마중물을 퍼 부어 주신 분은 법정스님의 말씀이었지만 갈무리를 지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어. 그저 보통의 여자 목소리, 남들이 느끼는 딱 그만큼의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는 건데 그것도 욕심이고 과욕인거니?’
내 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조용하고 묵직하게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막고 있는 절망을 들썩거리게 했다.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내 마음은 들리지도 않는 외침으로 발악을 했다. 터져 나오는 한숨과 꺽꺽대는 서러움. 나는 그렇게 절망을 덜어내고 쏟아낸 울음보 위에 얹어 놓으며 한 발자국씩 세상을 향해 걸어보기로 다짐했다. 베란다로 향하는 중문을 열고 바람소리, 햇볕이 쏟아지는 소리, 계절이 지나는 소리, 구름이 떠다니는 소리를 음미하려 애썼다. 그러다 다듬지 않은 산세베리아 화분 사이로 꽃대가 솟은 모습을 발견했다. 애써서 마음을 주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생명을 보전하는 산세베리아가 대견해 보였다. ‘잘.했.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했어! 잘했어!
어쩌면 응원이란 거창한 노래와 몸짓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곁에서 같이 호흡하며 같이 호응하는 모든 것이 응원이 된다. 내 목소리가 나올 때도 나오지 않을 때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며 십 년에 한 번 핀다는 그 꽃을 지금 비로소 피어주는 작은 산세베리아를 바라보니 스님 말씀처럼 행복이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내 마음이 넉넉하고 충만하면 그 어떤 불필요한 감정이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이치인 셈이다. 열띤 응원은 바라지도 않는다. 열광적인 함성도 원하지 않는다. 묵묵하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자연의 소리 같은 응원이 좋다. 진정 그런 묵직한 버팀목 같은 응원이 좋다.
법정스님의 인생응원가를 다 듣고 난 지금, 나는 남들보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없어졌다. 평범을 가장한 허영인지 그저 평범하게만 살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에 그것조차도 내려놓으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나의 장애를 바라보는 나의 편견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인생에 주어진 나의 몫만큼만 살다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수분을 잃고 죽어가는 작은 나무 안에서도 생명의 불씨가 남아 돌아오는 계절 속에서 싹을 틔우는 강인함을 보여주듯, 나는 내 속에 있는 작은 희망의 보물들을 찾아 돌아오는 인생의 종착역에서 보란 듯이 들려주고 싶다. 내 목소리로.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라고.
이른 아침, 베란다에선 기공을 뚫고 나온 응원의 소리가 열렬하다. 우주의 선물을 나누어 가지는 나와 베란다 화분들은 서로를 응원해 주는 기가 막힌 인연이다. 고립되지 않게 나를 보듬어준 작은 응원객들에게 나는 나만의 언어로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푸른 응원의 물결 속에 벙근 하얀 산세베리아 꽃을 마음에 품고 용기를 내어 자 이제 현관문을 나서보자! 곁에 있어줄게. 너와 호응하며 걸음을 같이 할게. 현관문을 새어나오는 소리가 점점 이울고 있다.
Chapter
- 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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