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0112

<나의 길은, 나의 글은 언제나 새로운 길>
-‘윤동주 평전(송우혜)’을 읽고

 

금소담
 

내 기억 속의 삶, 그 이전부터 나는, 글을 좋아했다. 눈으로 보는 것도, 귀로 듣는 것도, 직접 만져보고 경험하는 것도 모두 좋았지만, 글을 읽는 일이 늘 새로웠다.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었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썼다. 내 생각을 무엇보다 잘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동으론 다 보일 수 없는 것들까지 표현할 수 있어서.
아홉 살 때 처음으로 전국 단위 글짓기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신기하기도 했고, 그 때의 상이 지금까지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다. 처음으로 내 글을 많은 이에게 인정받았다. 그 뒤로는 그러한 인정이 너무나 잦았다. 글 쓰는 일도, 내 글이 칭찬받는 일도 모두 당연하게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와 다르게 머릿속을 떠다니는 단어들을 활자로 옮기고 싶었다. 물음표가 붙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끝말잇기를 하였고, 그 속의 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나은 글을 쓰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글이 아닌, 나의 글. 스크린 대신 원고지를 채우고, 잉크 카트리지 대신 만년필 속 잉크를 채워 넣고, 타자 대신 만년필을 움직여 완성되는.
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후 나는 문학을 이전보다 더 가까이하게 되었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학교 때의 꿈이었다면, 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것이 고등학생이 된 나의 꿈이 되었다. 생각보다 좌절할 일도, 예상치 못한 시련도 많은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나를 위로해 준 건 언제나 책과 짧은 시였다. 때때론 윤동주, 이상, 백석,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몇몇 작가들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을 느꼈고, 내가 갈 길이 늘 새로운 길이라고 되새겼다. 가끔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된 것만 같고, 또 다른 날은 하늘이 날 가장 귀해하는 것이라 나를 위로해보았다. 사회를 풍자하고,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렁였다.

그 중에서도 윤동주의 글에 담겨있는 따스함과 언제나 한결 같은 평정심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게 타올랐다 꺼져버리는 나와는 다른 사람 같아서,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그의 글이 순수하고, 또 정갈해서. 이런 식으로 이유를 이야기하다 보면 오늘 밤에도, 내일 밤에도 아마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 헤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을수록,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해졌다. 영화 ‘동주’를 통해 가볍게나마 알고 있었던 그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좀 더 자세하게 ‘인간 윤동주’를 알고 싶었다. 평전이 쉽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앉은자리에서 바로, 3시간 만에 두꺼운 이 책 한 권을 모두 넘겨 읽었다.
그의 삶을 훑어본 후, 지금의 나에게 윤동주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민족시인, 천재 시인 따위로 명명되었던 지난날의 그는 내가 차마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그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끝없이 생각하며 살았던,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청년. 그의 삶을 찬찬히 읽고 나니 그의 시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이 세상에 찍은 발자국들이 그의 글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조금 시큰거렸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그를 보며, 그가 시에서 가진 성찰만큼, 삶에서 직접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실망스럽기도 했다. 목숨 바쳐 싸우던 독립운동가들과 비교되는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조금은 무책임하다고까지 생각했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투쟁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에 비해서 윤동주는 독립운동에 투신한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러한 일에 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다고 성급히 판단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가 시를 쓰며, 자신의 투쟁을 이어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투쟁의 방식으로 글을 선택했던 사람.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을 그는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와 다르게 따뜻하고 배부르게 공부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겐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을 것이다. 그의 최선은 글로써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가 느끼는 책임은 아마도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얄팍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 

그의 삶을 따라가며,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떤 글을 쓸 것인가’였다. 결국 두 질문에 대한 답을 또 다른 글로 남기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답은 하나이다. ‘잘’. 나는 윤동주 시인처럼 나를 담은 글을 쓰고 싶고, 그처럼 본인다운 인생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첫 명함에, 그의 시를 새겨 넣었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는 구절 하나로, 언제나 새로운 길이 될 나의 미래를 바라며. 너무 무디지도, 또 날카롭지도 않은 칼 위에 나를 올리고, 언제나 비슷한 온도에서 은은하게 데워진 뚝배기 같은 삶이길, 늘 생각을 멈추지 않는 삶이길 바란다. 언젠간 나의 글도, 윤동주의 글처럼 타인에게 따스함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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