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0125

최필조의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을 읽고
“우리 절반의 진실 밖에 볼 수 없는 건가요?”

 

권현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타인을 구체적으로 식별 할 수 있는 앞모습과 달리, 인간의 뒷모습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지닌다. 앞모습은 철저히 통제 가능한 시선의 영역 안에 있지만, 뒷모습은 그 영역 밖에 존재한다. 툭 떨어지는 목덜미와 질끈 묶은 머리카락. 살짝 굽은 어깨, 추워 보이는 발목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이 된다.

 

앞만 보고 뒤를 못 보는 절반의 진실. 진실을 캐기 위해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보이지 않아 간과해버린 일상의 뒷모습과 함께. 있는 힘껏 굴러가며 사는 이웃들의 삶을 섬세히 찍어냈고, 다정히도 담아냈다.

 

삶의 무게

 

당신의 오늘은

감당 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 였나요?

고무 대야가

시멘트 바닥에 갈리는 소리가

마음 속에 박힙니다.

 

( part 1. 진정한 당신, 남몰래 훔쳐보기 - 뒷모습 )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구부정해진 허리는 수직으로 땅과 수평을 이루고, 거친 바람을 마주하고 건져낸 삶의 무게는 시멘트 바닥과 맞닿아 고통의 소리를 토해 낸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 삶과 늙어버린 청춘이 빗발처럼 얼굴을 적시지만, 피가 나고 삶에 찔려도 쉽사리 손을 거두고 성내며 돌이 킬 수 없는 게 할머니의 삶이 겠지. 그렇게 묵묵히 매 삶의 무게를 밀고 식어버린 추억들 가슴에 붙은 집 마당에 바다를 들여놓고 사는 삶을 누가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바다에 생사가 걸려 있고 죽살이치는 세월이 녹아있을텐데 말이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어린 나는 삶을 배웠고, 가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 감옥 같은 요양원에서 수 많은 계절을 웅크린 채. 견디고 견디던. 유난히 뒷모습이 조용했던 외할머니의 뒷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은 바닥을 마주하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그 곳에서 당신은 우울을 그리저처럼 매달며 살아냈다. 우울은 눈꺼풀 밖에 던져두고, 칠흑 같은 어둠에 알록달록 물감을 흩뿌린 채 꽃동산이라도 놀러 다니는지. 언제나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고, 가끔은 천장의 허공을 마주했다.

 

저녁마다 달려드는 어둠. 혼자 감당하시던 그녀는 결국 언젠가 고목처럼 쓰러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게 몇 해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꽃동산에 꽃가마 탄 채 영영 떠나버렸다.

 

이제는 거짓 웃음 지으며 괜찮다는 말 안 해도 되고. 닳아빠진 무릎으로 걷지 않아도 되고. 눈물과 콧물 속에 슬픔과 공포를 담아낸 채 지내지 않아도 돼.’ 라며 하늘이 비를 토해 내듯. 어질어질 이어지는 절규를 오늘도 쏟아낸다.

 

우린 뒤에서 기다리는 천사에게 등을 돌린 채 몇 번이나 어리석은 즐거움을 찾아 무작정 달려가기만 했던가. 라는 미셸 트루니에의 시처럼. 식어버린 추억들을 가슴에 붙인 채 나를 목이 빠져라 기다릴. 나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정작 둘러 볼 생각도 못한 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기 바빴다. 그 사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등을 내주는 나약한 존재가 되었고, 그렇게 그녀의 뒷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홀로 존재하는 한 인간의 짙은 그림자를 담은 채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나는 거짓 없는 진실을 담은 뒷모습을 보며 숨겨진 절반의 진실을 찾았고, 남은 반쪽의 진실을 채우기 위해 이번엔 손을 기억해 내려 한다.

 

마음과 표정은 감출 수 있겠지만 고스란히 드러난 손은 당사자의 삶을 헤아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삶의 내공이 묵직하게 묻어난 손은 때때로 삶의 지혜가 되어 주기도 하며,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욕심을 갖도록 만든다.

 

 

 

 

어머니의 기도

 

오늘 우리가 평안한 것은

어제 우리의 어머니가 드렸던

간절한 기도 덕분입니다.

 

( part 2.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네 - )

 

언젠가부터 눈의 깜빡임은 부족해졌고, 무언가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걸을 땐 한쪽 팔을 움직이지 않았고, 걸음은 종종 걸었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같은 자리를 하염없이 돌기도 했다.

 

어느 주말, 친할머니는 우리집에 와서도 한참을 빙빙 같은자리만 맴돌았다. 그런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아빤 집안 전체를 훌라후프 돌리 듯 돌고 또 돌았고. 그렇게 한참을 돌다, 우린 단체로 최면에라도 걸린 듯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잠에 들어버렸다.

 

할머니는 내가 눈을 감자마자. 감긴 나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힘 있게 열어 젖히셨고, 나는 너무나도 놀란 마음에 소처럼 눈을 크게 뜬 채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그렇게 아이처럼 몇 분이고 우는 나를. 할머니는 초점 없는 눈으로 연신 내 눈물을 닦아냈다. 따뜻하고도 주름진 손으로 말이다.

 

처음이었다. 할머니의 손이 내 피부에 그렇게 오래 닿아 있던 건. 할머니는 내가 잠들고 혼자 깨어있는 게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조금 더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랬던 걸까.

 

신체가 쇠약해지는 만큼 할머니의 기억력은 날이 갈수록 흐려졌고, 도무지 약이 없이는 잘 수도 없는. 한 없이 유약한 존재가 되었다. 몸은 굳어지고, 기억은 잃은 채. 몇 년을 멍하니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해내셨다.

 

유난히 병원을 에워 싼 높은 아파트들이 이질적이라고 생각 하던 그 날. 할머니의 임종을 알리는 전화가 울렸고, 우린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서둘러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할머니의 시린 손에 모두 따뜻한 온기를 얹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우린 할머니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생을 감싸 주고, 할머니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작은 상처 하나 남겨 놓지 않은 채 그렇게 상처 가득 감싸 안고 흙으로 돌아갔다.

 

손을 잡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만지는 일이다. 손가락 위에 난 상처와 그 깊이, 미세한 온도와 살이 스치는 느낌까지. 손을 잡고 그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한다.

 

뒷모습과 손. 신체에서 가장 큰 상징을 담은 두 모습을 통해 나는 완전한 진실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최필조 작가의 첫 사진집 말 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 줄 수 없어 쓴 글에서는 뒷모습, , 그리고 밤골, 길 위.’ 네가지의 주제를 관류 하고 있다. 주제를 통한 대다수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시선. 자연과 인간관계를 남다를 관조의 시각으로 재발견했다.

 

과하게 포장되지 않은 사진 한 장,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은 솔직한 몇 줄의 글들이 나의 삶을 성찰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무너진 나의 인간성을 회복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카메라를 들고 집에서 나서면 언제나 나를 위한 거대한 무대가 펼쳐져 있다. 자연은 무대가 되고, 사람들은 배역이 되어 언제나 나를 맞아 주었다. 한 때 나는 스스로 관람자가 되었다는 착각으로 유랑하듯 세상을 떠돈 적이 있다.” 라는 작가의 말이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다.

 

나 또 한 여행을 할 때 가장 편안한 사람이기에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이렇게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작가와 같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가 되어서가 아닐까.

 

 

Chapter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