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0122

『법정스님 인생응원가』를 읽고

내 마음 그릇에 큰 말씀을 담을 때  

이지민

 

  법정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필독서로 『무소유』가 뽑혔을 무렵이었다. 그때 내 삶은 시궁창에 빠진 듯 어지럽고 힘든 시기였다. 가족이 죽을병을 앓았고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낱낱이 지켜봐야 했다. 사느냐 죽느냐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그보다 큰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공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방황했다. 학교 교실에 앉아서도 마음과 정신은 먼바다를 표류하는 조각배처럼 뒤숭숭했다. 그렇게 살고 있던 나에게 스르륵 마음의 문을 열며 다가온 책이 바로 『무소유』였다. 친구에게 빌려 읽은 그 책에서 열일곱 살의 나는 ‘인생은 어차피 빈손, 맨발로 와서 온 그대로 돌아간다.’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금방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열중하지 못하고 3년을 방황했지만, 대학에 가서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소유』로 만났던 스님을 실제로 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스님의 행적을 담은 다큐멘터리 2편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렸다. 간혹 도서관에 남아 있는 스님의 서적들을 들춰보면서 수필이라고는 전혀 읽지 않는 나에게도 스님의 입김이 서려 있는 그 책들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번 독서에서도 스님의 말씀들을 따라서 성찰과 통찰의 여정을 밟았다. 유서에 ‘할 얘기들은 충분히 했고 그 말들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만 남았다. 사후에 더는 내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지 말아 달라’고 적으신 대로 스님이 저자로 등록된 책들은 모두 절판되었다. 뒤늦게 『무소유』한 권 정도 소유하고 싶었던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지만, 스님의 유지를 따르는 것이 맞으니 숙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처음에 이 책을 마주했을 때 조금 불편했다. 법정스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법정스님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는 걸 보고서는 놀랐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적인 시선과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바에 따라 ‘나처럼 뒷북치는 사람에게 한 권쯤 가지라고 이 책이 나온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은 저자 정찬주 님의 마중물 생각, 갈무리 생각이 ‘스님의 말씀과 침묵’ 앞뒤로 붙어서 나왔다. 스님이 재가제자로 두고 법명까지 지어주신 분답게 스님의 말씀들을 망칠 만큼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쓰인 글들이 마음에 들었다. 법정 스님의 말씀들은 언제 읽어도 감탄을 자아내고 어떨 때는 마음을 심하게 꼬집기도 해 표시를 안 한 구석이 없을 만큼 인상 깊은 구절들이 많았다. 덕분에 책에서 또 읽고 싶은 부분에 붙이는 플래그가 오십여 개에 이를 정도. 사실 어느 것 하나 쉽게 읽을 부분이 없어 낭독했음에도 덜 잠긴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톡톡톡 내 마음을 끝없이 울리는 스님의 말씀들은 읽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읽는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닌데 말씀의 깊이나 농도가 짙어서 마음을 끝없이 울렸다.
  우리는 물질문명의 포화 상태, 모자란 것보다 넘치는 것, 못 먹는 것보다 과식으로 인한 병이 더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정보의 범람도 아마 그 앓음의 원인이 되고 있는 듯하다. 끝없이 누군가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나 자신을 한없이 작게 만들고 깎아내리게 만드는 것도 문제이다. 너무 많은 정보와 너무 많은 관계를 맺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 한결 바람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거리 유지도 쉽지 않다. 쉽게 전화를 걸고 카카오톡으로 쉽게 연락을 취하면서 과분한 관계들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나는 가끔 이런 관계와 삶 속에서 권태를 느낀다. 아마 글을 쓰면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완벽하게 혼자여야 하고 고독하고 약간은 쓸쓸한 맛이 있어야 진도가 잘 나간다. 사유하는 시간과 다듬는 시간, 곱씹어 보는 시간은 타인과 함께할 수 없을 때, 오롯이 혼자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을 때에 이루어진다. 늘 듣는 뉴에이지 음악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일. 아무래도 성격이 내성적이라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보강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저 고독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법정스님의 명언들은 조용히 나 혼자만 알고 싶을 정도로 청아하고 청초하다. 여성이 쓴 글이 아니지만 섬세하고 때로는 날이 선 비판도 있지만 법정스님께서 홀로 지내시면서 마음속 깊이 깨달은 바를 글로 옮긴 것이기에 소홀히 대할 수 있는 페이지가 없었다.    

            
  법정스님의 말씀 중에서 ‘청빈한 것, 적게 가지고 적게 말하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왜 사람도 너무 자주 만나다 보면 서로 다른 점들이 도드라져 갈등이 생기거나 사이가 나빠질 수 있다. 적당한 거리와 세월을 두고 간간이 연락이 닿으면 그사이에 그리움이 머물며 소중함도 느끼게 된다. 홀로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을 인간 본연의 감정 상태로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오히려 자유로운 시간으로 여기면 깨달음이 찾아온다. 나에 대한 깨달음에서 고이 접어둔 만남에 대한 성찰과 통찰까지. 물론 그저 생각만 한다 해서 법정스님처럼 진리의 말들을 길어 올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순간에 독서와 사색이 겸비되어야 스르륵 다가오는 깊이 있는 말, 진리와 해후할 수 있다. ‘사람도 절절해지려면 지그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과 간소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가득 채우려고 하지 텅 비울 줄을 모릅니다. 텅 비어 있어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립니다. 텅 비어야 거기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갑니다.’        
  과욕이 자랑처럼 여겨지는 시대, 누가 더 많아 가졌는지 SNS를 통해 부각되는 시대. 이 시대를 살면서 끝없이 자신을 비워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란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더 절실해지는 것 같다.


  세상이 어지럽고 비리와 부정이 난무할 때 쓴소리를 해주시던 법정스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요즘 스님의 칼칼한 성정에서 나오는 바른 소리가 더욱 그립다. 아마 평생을 존경하며 스님의 서적들을 즐겨 읽을 테지만 스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 아쉽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하다. 존재만으로도 큰 위로와 정감을 주셨던 법정스님이 내내 그리울 것 같다. 비록 내 마음의 그릇이 너무 작아 스님의 큰 말씀 하나 제대로 담을 순 없지만 그래서 더욱 법정스님 생각이 많이 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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