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를 읽고
전대진
나는 세상에 그 무엇보다 책을 좋아한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체리새우란 책 제목을 보고 무슨 맛집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인줄 알고 그냥 지나칠 뻔하였다.
그러나 표지 속에 나오는 여자아이 모습이 이 책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반감시키고 말았지만 주제와 어울리는 삽화와 새우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글을 쓰는 사람보다는 독자에게 호감을 주는 책 표지를 그리거나 디자인하는 만드는 사람의 숨은 노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한 시간만 지나면 거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다현이란 친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내 생각에 사람의 기억은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이유로든 기억을 오래하지 못한다면 살아가면서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생활하고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기억과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상실한다는 것은 어떻게든 넘어야 하는 벽처럼 보였다.
하지만 주근깨 만발한 자신의 얼굴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고 살아가는데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친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다현이는 채리새우란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우연히 찾아온 행운처럼 다섯 손가락의 멤버가 되었으면서도 그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고 말할 수 없는 여러 개의 비밀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
다섯 손가락 친구들에게 밉상으로 통하며 왕따를 당하는 은유는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런지 단짝 친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도 않고 혼자 있어도 너무 당당하면서도 씩씩한 친구였다.
그에 반해 답답할 때마다 핸드폰의 블로그 앱을 켜는 다현이는 새 학기가 되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은유와 짝이 되는 바람에 친구들이 정한 규칙과 같은 말을 섞어서는 안 된다는 틀을 깨고 은유를 대놓고 미워하지도 못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중간 입장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살다가 보면 가끔씩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로는 그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친구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때도 있다.
그로 인해 다섯 손가락에서 심각한 왕따를 당한 다현이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그처럼 왕따 시키던 주인공의 이름이 순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가 예전에 당한 왕따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려는 순복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연결된 왕따의 대물림 현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누군가로부터 왕따를 직접 당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무슨 정의의 사도처럼 앞에 나서서 다른 친구가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겪은 불편과 부당함을 가지고 상대에게 맞설만한 용기가 없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유달산에 단풍이 물들어가는 오늘 내가 읽은 이 책은 초등학교 때 관심 깊데 읽은 왕따의 양파일기처럼 은따와 왕따를 둘러싼 친구들과의 갈등이 나와 있어 평소에도 책을 즐겨 읽는 나에게는 전혀 낮선 주제는 아니었다. 아마 내 생각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초중고를 거쳐 오면서 한번쯤 경험 할 수 있는 왕따는 정말 만나기 싫은 친구임에는 틀림없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학교 교실에서는 사라져야 할 이런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왕따를 극복하는 과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이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생각되는 지난날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친하다는 친구들의 무리에 뒤섞여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 사막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던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친형제보다 친했다고 믿었던 친구들이 모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배신에 따른 분노와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선뜻 다가와 준 고마운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도 나에게 많은 힘을 주고 있다.
체리새우에 나오는 다현이가 그랬듯이 나는 그때 몸에 도저히 맞지 않는 작은 옷을 벗어 던지고 났을 때처럼 더 큰 자유로움을 맛볼 수 있었고 나를 왕따 시킨 친구보다 더 멋지고 좋은 인간성을 가진 진짜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기억은 나에게 진실한 친구란 어떤 친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맑은 물에서 사는 담수새우로 몸집이 점점 자라면 주기적으로 탈피를 하는 체리새우는 빈 껍질을 벗어 버리고 점프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몸집이 자라면 주기적으로 탈피를 거듭 하듯이 자신이 필요할 때만 친구로 받아들여주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모임에서 왕따를 시키는 다섯 손가락이라는 껍질을 벗어던진 주인공 다현이의 멋진 점프를 나는 책속의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다가 다시 한 번 이 책 표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은은한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저녁 무렵에 한 여자아이가 이어폰을 쓰고 혼자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던 표지의 모습은 아마 주인공인 다현이가 자신을 따돌리고 상대해 주지 않는 친구들의 날선 비난과 질투가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보호해주는 안전지대가 이어폰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섯 개의 가방이 운동장 조회대에 널브러져 있는데 아마 내 생각에 그것은 다현이가 한때 속했던 다섯 손가락 아이들의 가방처럼 보였다.
사람이 어떤 이유로 무리를 짓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자기들끼리 잘 지내는 테두리를 벗어나 다른 친구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비난하는 좋지 않은 상황을 발생 시킨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 한 명이 '그 친구 좀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미움의 씨앗을 뿌리면, 다른 친구들은 '이상하지, 완전 이상해'라며 싹을 틔우고 그 다음부터 좀 이상한 그 친구로 낙인 찍혔던 아이가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이미지를 가진 괴물이 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문화에 그 원인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정보 통신의 발달로 산업화가 가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지나치리만큼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찾아내면 교묘히 꺼내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건드리는 묘한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된 헛소문이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고 확대시켜 멀쩡한 사람을 왕따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서 매장시키려 하는 바람에 왕따를 당한 친구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정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사람과 이야기를 건네 보지도 않았으면서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면 마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듯 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게 만드는 왕따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고 얼굴 한번 보지 않았으면서도 말로만 듣고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려내는 잘못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왕따의 병폐를 깨닫게 해준 체리새우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Chapter
- 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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