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0109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라면 - 차 한 잔 하시겠어요? 


황서영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
낚아채듯 잔을 받은 모양으로 책을 펴들자마자 허겁지겁! 좀 급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 아니 풀 수 없는 실타래를 안고 두어 달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러다 ʻ어쩌면ʼ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은 셈이다.
50년 경력의 정신과 의사와 그 반의 경력을 지닌 상담 전문가가 나눈 인생문답. 합이 75네, 일단 나보다 앞선다. 이번 여행은 수월할 수도 있겠다. 그냥 이끄는 대로 가면 되니까 하면서도 두고 보자 하는 마음도 생긴다. 


먼저 향기를 맡듯 - 책표지를 본다.
은색의 스포트라이트 원에 펼쳐진 세상. 우산 때문에 비 오는 게 두드러진다. 하필이면 우산을 거꾸로 들고 있나? 거슬린다. 비를 가리겠다는 건지 담아보겠다는 건지, 쯧. 하여튼 그 어리석은 사람과 한 줄의 평범한 글귀 하나가 담겨있다. ......인생 문제에 대한 명쾌한 대답. 명쾌한? 그런 말에는 속지 말자. 어느 정도 마음 무장을 하고 책을 펼친다. 


살짝 한 모금 - 이 책의 여는 글이 정곡을 찌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속 터놓고 “난 요즘 이렇게 사는데 넌 어때?” 라고 묻고 싶은데 막상 주위를 둘러보아 그럴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벗들이 어찌어찌 너무 멀어져 있다는 생각에 더 우울해지는 요즘, 그런데다가 그런 자신이 괜스레 부끄러워 마음의 짐을 덜 수 없었다. 그런데 ‘나도 그래’ 답해주는 듯, 9개의 작은 제목들이 ‘함께 하자’며 나를 이끈다,


홀짝홀짝 다독다독 - 최근 나를 떠나지 않는 화두는 가족이었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아이를 부모님이 길러 주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살림을 합쳐 3대 가족으로 살았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여느 부부들보다 편하고 여유롭게 지냈다. 그러다가 타지로 보낸 아이가 연락이 안 되는 일이 잦아지게 되면서 이러다가 결국 가족 관계가 끊어지는 게 아닌지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가까이 없으니 짐작만으로 아이의 상황을 상상하게 되고 그러다 한번 꽂힌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끈끈한 가족 연대감이 부족한 지 뒤돌아보게 되고 그것이 대가족의 산만함에서 오는 문제인 것만 같았다. 핵가족이 갖는 소소한 즐거움과 연대감 등이 부러웠다. 그런데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문제없이 사는 사람에게 문제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자체가 문제라고.
 집착하듯 해대는 연락에 어쩌면 아이는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아이는 자기답게 살려고 태어난 존재이니 불안에 속지 말자. 부모의 불안이 아이를 내몬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유비무환이라는 허울을 씌우고 불안함 속에 산다는 것은 어쩌면 주객전도의 삶이 아닐까. 그래 아이를 믿자. ʻ이유 없이ʼ였다면 굳이 이유를 밝히려하지 않아도 그 이유는 약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 아직 어리니까 부모로서 알려줘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일종의 갑질이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젠 그의 선택을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성숙한 관계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니, 엉뚱한 걸 해주고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고 탓을 한 것도 보인다. 그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해주면서 사랑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었구나. 부부도 함께 또 따로, 10%만 서로 공유하고 나머지는 믿고 맡기라는 말이 아이에게도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믿음 속에 자유로워지면 그 관계는 더욱 굳어지고 확장되어간다. 가정이라는 게 이렇게 사회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정리할 수 있었다.
 모든 관계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이라 한다. 그러다보니 그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상처 입은 마음, 얼른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단다. 입을 만하게 마음을 수선해 가며 상처를 평생 친구라 생각하고 같이 살아가라는 말은 아마 정신과 의사로서의 저자의 경험이 녹아난 충고이리라. 다들 깊은 상처 하나쯤은 지니고 살아가는구나 싶어 모든 삶이 공평하게 느껴진다. 연민과 공감, 모두 각각 다른 모양새의 삶을 꾸리는 우리가 함께 가는 방법이 이것인가 보다.


마지막 한 모금 더 -
결국 자아를 단단하게 하고 자존을 키우는 게 인생에 휘둘리지 않는 비법이구나. 남과 비교하는 데서 우월과 열등이 생겨난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의 평가가 차지한 곳에는 나의 자존이 자랄 수 없다. 나는 나로 채운다. 나를 나로 살게 할 집중할 일이 나를 키운다. 그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보다 성숙한 태도로 나를, 가족을, 그리고 사회를 보자.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은 사라지고 우리의 미완성을 인정하면 서로의 미숙함을 보듬게 된다.
 다시 표지를 살핀다. 가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품격 있는 삶을 만든다고 했다. 아하! 이제 보니 거꾸로 우산을 펼친 저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 저리 당당하게 비를 즐기는 것이구나. 그가 우산을 이리 쓰든 저리 쓰든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선택으로 인생이 재미있다면 그것이 행복이고 품위가 아니겠는가. 남을 따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느끼는 즐거움, 그것이 행복이다. 표지의 은색 빗방울이 반짝반짝 재미나다.


그래도 남아 있는 - ʻ듣는 사람 마음으로 읽어 주세요ʼ 라는 저자 이근후 님의 당부가 새삼 감사하다. 내 깜냥으로는 두 저자의 혜안을 다 못 담아내었지만 내 마음으로 읽은 나의 책이 되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게다가 작은 일로도 큰 행복을 남기는 삶의 영업 비밀도 알게 되었으니,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지만 대박 소득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싶다.
또 다른 저자 이서원 님의 팁처럼, 앞으로의 삶에 대기하고 있는 많은 기념일들을 챙기자.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 거기에다 또 다른 C (Congratuation))의 의미를 더해 삶을 즐기면서 나로 살아야겠다.
 조금 굴곡이 많은 삶이라도 뭐 어떤가? 어차피 길은 꼬불꼬불 구부러져 새로운 이름을 갖고, 길은 길에 연달아 이어지며 삶을 단단하게 해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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