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0119

「아직 멀었다는 말」을 읽고
- 간격을 좁히려는 모든 시도들에 갈채를 보내며

 

이동택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우리의 마음은 대체로 두 가지 양상을 띠게 된다. 하나는 미지의 영역에 닿기 전의 설렘, 다른 하나는 이미 닳고 닳은 세계로부터 벗어나 안식의 거처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의 발동이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간격이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거리감을 좁히고 싶은 인물들의 향연이다. 그 간격을 줄여보고 싶지만 언제나 그곳은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로 존재한다. 닿지 못하는 영역에 도달하고자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은 언제나 애달프다.


 「아직 멀었다는 말」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벌어져 있는 틈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자신을 옥죄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친다. 「모르는 영역」에서 명덕은 자신의 딸과의 거리감을 해소하기 위해 애먼 낮달을 가져와 그 간격을 좁히려 하고, 「손톱」편에서 소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와 언니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너덜거리는 손톱을 동여매고 고된 삶을 이어가지만 결국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손톱을 떼어버린다. 그런가하면 「희박한 마음」은 기억을 더듬어 옛 연인을 추억해 보려하지만 이미 옅어진 기억들은 그것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디엔에게 닿기를 바라는 꿈 얘기와 질문들은 내내 ‘아직 멀었다는 말’이 된다. 「너머」의 N은 기간제교사라는 계약직 신분이지만 교사 혹은 주무관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잡아 무기계약직이라고 불리는 그야말로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 「친구」역시 간격이 뚜렷한 화두로 등장한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아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외로웠던 아들의 세계를 이해하기엔 엄마는 늘 생활에 쫓겨 있었고, 아들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래의 폭력까지 감수해가며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였지만 진정한 관계에 이르기에는 아직 멀었다.


  언젠가 사이드미러만 보고 차선을 변경하려다 바로 옆에 다가선 차량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사이드미러가 비추지 못하는 영역은 분명 우리의 지근거리에 있지만 미처 우리의 시야가 도달하지 못한 자리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곳이 있었음을 깨닫고, 그 사각지대로 인해 나도 모르게 인생의 한 면이 흐려져 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송추의 가을」은 어른이 되어 서먹해져버린 형제들 간의 다툼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어머니의 진심’이 사각지대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난다. 늘 곁에 있어서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정작 자녀들은 어머니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한다. 「재」는 곧 타버려 재가 될 것만 같은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며 뒤늦게 자신을 돌보아 줄 이를 찾아보지만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하게 된다. 모든 이가 나를 둘러싸고 있지만 실제로는 곁에 없는 그들이다. 회색티셔츠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그냥 공기만 가득, 둥둥’떠있어 들여다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아닐까.


  아직 멀었다는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일종의 자괴감을 준다. 마치 ‘넌 아직 어려.’,‘넌 아직 실력이 안돼.’, ‘넌 그럴 그릇이 못돼.’, ‘더 아프고 더욱 뼈아픈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야 해.’라고 들린다.  「손톱」에서 소희는 자신이 일하는 구두매장에서 가장 좋은 판매고를 올려도 매니저를 그것을 한낱 운으로만 여기고, 그저 ‘무나아안하다’고 평가한다. 「너머」에서 N은 학교에서 기간제교사라서 내내 입지가 불안하다. 정규직의 빈자리를 매일 충실히 메워도 단 하루로 인해 자신의 처지가 달라지는 현실앞에 N은 절규하고 만다. 「송추의 가을」에서 막내는 형제들에게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왜 그만두었냐고 눈총을 받으며 여전히 가정사에 개입하기에는 아직 멀고 어린 존재로 취급받는다.


  삶의 종착지는 아직 멀었다. 그 사이 벌어진 간격과 틈을 우리는 어떻게 메울까. 시간은 충분한가. 아니 그 삐걱거리는 문을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있는가.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다시는 가지 못하는 길이라고 외면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모를 일이다. 「모르는 영역」의 명덕처럼 소원해진 딸과의 거리감을 좁히려 딸이 다니고 있는 직장으로 용기를 내 쳐들어간다면 날마다 만나는 낮달이 아닌 밤에 뜨는 달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손톱」 의 소희처럼 덜렁거리는 손톱을 매만지고 있을 일이 아니라 과감하게 떼어 내버린다면 과거로부터의 결별을 도모하고 가보지 않은 길에 맞닿을지도 모른다. 「아직 멀었다는 말」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아무 것도 해보려 하지 않는 인물들이 아니라 오히려 아직 멀었다는 말을 딛고 서서 현실과 맞닥뜨린다. 무르익지 않은 감정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아직 멀었다는 말이 그들에게는 걸림돌이나 장벽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간격을 좁히려는 모든 시도들에 갈채를 보낸다.


  문득 가깝고 먼 사람들을 하나 둘 떠올려 본다. 미처 돌보지 못했던 관계들, 미숙했던 나의 행동들이 빚어내 강제적으로 거리두기를 해야만 했떤 사람들. 무감했던 마음씀씀이로 멀어져 갔던 이들. 모두가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빛깔의 무늬들이다. 내가 ‘완성된 나’로 변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지만 내가 만난 이들의 색감에 기대어 나 역시 언젠가는 종착지에 다다른 어디쯤에 가 있지 않을까하며 손을 뻗어 휴대전화 연락처 사이 켜켜이 쌓인 이름들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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