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8479

거짓과 진실, 그 경계에서 선악을 판단하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고


금소담

 

현대 사회의 인간은 복잡한 관계 속에서 끝없는 정신적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모두 새로운 자극을 통해 그 속에서 받는 무한의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스트레스가 극대화된 최근 사회에서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서사, 영상물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이 책의 서사는 가히 충격적이다. 최근 유행하였던 ‘막장 드라마’에 못지않은 서사 구조와 진행, 그리고 반전을 보여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이 책은 현대인이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받는 고질적인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 수 있게 해 줄 만한 흥미와 16세기 프랑스 농민들의 생활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누구나 역사에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제공해준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역사 서술은 주로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한정되어 이루어졌다. 역사 서술자의 판단에 따라 매일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은 모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졌으며, 이 중 ‘중요한 것’만 역사적 서술로 남겨졌다. 중요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대부분 사회 기득권층과 관련된 것이었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의 일상생활은 대부분 기록하지 않았다. 본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배제된 민중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직접적이고 자세하게 기록된 서술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송사의 기록과 같은 부수적 사료들을 통해 우리는 역사 사이의 빈 구멍을 저자와 함께 메워가며, 16세기의 프랑스 농민들의 삶을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현대 사회 인간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오락과 같은 존재로의 서사 구조와 텍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민중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이유 모두 책을 읽게 되는 매력적인 요소임엔 틀림없다.

이 서사, 진실이라 믿기 힘든 이 사건의 핵심은 바로 ‘마르탱 게르가 누구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마르탱 게르는 어느 다른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는 매우 어린 나이인 열네 살에 열두 살인 아내 베르트랑드와 결혼한다. 그는 복합적인 책임과 역할 수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내와 아들을 뒤로 한 채 고향을 떠난다. 그의 아내 베르트랑드는 당대 사회를 지배하던 프로테스탄트적 윤리에 따라 재혼하지 않고, 기약 없이 마르탱을 기다린다. 그리고 마르탱은, 고향을 떠난 지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마르탱은 이전과 묘하게 달랐지만, 거울이나 사진, 연락 수단 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 농경 마을에서 8년 만에 보는 사람의 얼굴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개인의 기억과 행동을 믿었고, 이에 자신이 마르탱이라 말하는 사람의 주장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베르트랑드는 돌아온 마르탱과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며, 3년간 두 딸을 낳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탱은 그의 삼촌에게 자신 아버지의 상속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한다. 삼촌은 8년 동안 소식도 전하지 않았으면서 불현듯 나타났고, 유산을 요구하는 그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한다. 마을을 지나가던 군인은 진짜 마르탱 게르가 전쟁에 나가 다리를 잃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신발을 사러 간 마르탱 게르의 발이 작아졌다는 사실도 눈치챈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계속해서 그가 마르탱 게르가 아니라는 주장의 불씨를 더 키운다. 돌아온 사내가 마르탱 게르가 아니라면, 진짜 마르탱 게르는 어디로 갔고, 또 그 사람은 왜 마르탱 게르 행세를 하고 있었을까? 그의 아내 베르트랑드는 마르탱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만일 그 사실을 알고도 그와 3년간 부부관계를 유지했다면, 베르트랑드는 간음한 부정한 여인이 되는가? 그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세 프랑스 농민들은 재판을 선택하였다.

앞선 서사와 이어지며 전개되는 이야기가 본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리으(Rieux)에서 열린 첫 번째 재판과 툴루즈(Toulouse)에서의 항소심을 통해 마르탱 게르의 진짜 신분을 밝히고, 그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한다. 이 과정은 우리나라의 설화 ‘옹고집전’에 등장하는 ‘옹고집 찾기’와 비슷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비슷한 외모와 각종 신체 특징,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서술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람의 신분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베르트랑드도 증언을 강요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만약 그가 자신의 남편이 거짓인 사실을 기존에 알았음에도 그와의 부부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였다면, 그 역시 그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 뻔했다. 그 외에도 150명이 넘는 증인들이 그가 각각 마르탱 게르인 이유와 마르탱 게르가 아닌 이유를 재판장에서 소리 높여 설명하였다. 마르탱 게르 혹은 아르노 뒤 틸. 그 둘 중 그의 본래 이름이 있어야 했고, 손쉽게 판결할 수 없는 문제였으나 재판은 결국 그를 아르노 뒤 틸로 결론 내렸다. 사형, 첫 재판이 그에게 내린 몇 년간 마르탱 게르의 이름으로 살아온 죗값이었다.

아르노 뒤 틸, 혹은 마르탱 게르는 항소하여 툴루즈에서 상소심이 열린다. 16세기에 체계적인 재판에 이어 재판에 불복하였을 때, 다시금 재판을 요구할 수 있는 상고심 형태의 법정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가히 놀랄 만한 일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무고를 계속하여 주장하였고, 판사들이 대부분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그 때쯤, 진짜 마르탱 게르, 그러니까 군인의 주장대로 한쪽 다리 대신 의족을 단 사람이 재판장에 들어온다.

가족들과 대면 심문을 통해 마르탱 게르는 의족을 한 사내임이 확신 되고, 아르노 뒤 탈은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여행 중,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마르탱 게르를 혼돈하자 보다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마르탱 게르로 살기로 마음먹고,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마르탱 게르인 척하며 사람들을 속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베르트랑드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아르노 뒤 틸이 계획적으로 그녀를 속인 점, 그녀가 자신의 남편이 아님을 알았을 때 이미 때가 너무 늦었던 것과 같이 그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짜 남편이 아닌 사람과 부부 관계로 살아온 것이라고 사법부가 판단한 것이다.

며칠 뒤, 아르노 뒤 탈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16세기 중세 프랑스 농촌을 뜨겁게 달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실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이 책의 저자는 본 재판을 진행하였던 장 드 코라스 판사가 저술한 <<잊을 수 없는 판결>>을 바탕으로 그 사이의 역사적 공백을 매우며, 현대 우리에게 흥미로운 서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이 책을 위해 수많은 사료를 분석하고, 또 해석하여 역사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본 책이 맥락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한 부분이 아쉬웠다. 지나치게 많은 사료를 인용하여 전문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좋지만, 당대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맥락이 좀 더 친절하게 함께 존재하였다면 더 다양한 독자층이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트랑드는 진정 자신의 남편이 아님을 끝까지 알지 못했을까? 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떠난 매정한 남편 마르탱보다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아르노를 사랑한 것일까? 그들의 관계는 ‘창안된 결혼’이라 표현된다. 그들의 결혼이 창안된 것이고, 베르트랑드가 진정 교회법에 어긋난 ‘간통’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우리는 베르트랑드에게 그 죄값을 물을 수 있는가? 검은 진실과 하얀 거짓 중 우리는 무엇이 더 선하고, 무엇이 더 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저자는 이 모든 서사를 통해 선과 악이 결코 이분법적으로 구분될 수 없다는 사실, 때로는 달콤한 거짓이 쓴 진실보다 나을 때도 있다는 사실, 타인을 속였다는 잘못이 있지만 어쩌면 진짜 마르탱보다 더 마르탱 같았던, 그 역할을 다하였던 아르노의 죄가 죽음만큼 무거웠는가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있다.

어떤가, 당신의 생각은? 주말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고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끝까지 우기던 아르노 뒤 탈과 그런 사람을 사랑한 베르트랑드, 그리고 떠나버린 마르탱 게르까지. 누가 가장 악하고, 누가 가장 선한가? 모든 거짓은 악하고, 모든 진실은 선한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가벼운 서사에서부터 16세기 중세 프랑스 농민의 삶 속에서 벌어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통해, 현대 우리의 삶에도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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