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8498

삶을 돌아보게 하는 죽음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노문희

 

고3 수험생 자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딸이 아직 미혼일 때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엄마와 한참 싸우던 때였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 계속 이렇게 혼자 살 거냐, 누가 소개를 해준다는데 좀 만나봐라. 싫다는데 왜 그렇게 강요하느냐고 따지면서 서로 가슴을 할퀴던 그때, 나는 엄마를 많이 원망했다. 왜 다 똑같은 모습으로 살면서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느냐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살지 않는 게 틀린 거로 생각하는 엄마가 이상한 거라고, 그저 남들과 다르게 사는 자식이 부끄러워서 나를 그렇게 다그친다고 여겼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왜 그렇게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걱정을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으로 생각했으니. 돌이켜보면 엄마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이었을 거다. 다른 형제자매 모두 결혼하고 자기 가정을 꾸렸다. 돈이 많든 적든 각자의 가족을 곁에 두고 살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옆에서 돌봐줄 수도 있고, 힘든 일을 의논할 대상이 있다. 엄마는, 지금은 엄마와 내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엄마가 떠난 후에 혼자 남을 나를 걱정했던 거다. 외롭게 살아갈까 봐, 어려운 일이 있어도 곁에 의지할 사람 한 명 없을까 봐, 혼자 아프게 살다가 죽어도 누가 알아채지도 못할까 봐. 아무리 형제자매가 있어도, 내가 그들을 가족이라고 불러도, 서로 다른 인생을 살면서 각자의 가족에 충실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그들에게 우선순위가 될 수 없고, 그들이 나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탓할 수도 없다. 엄마의 걱정 때문인지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늦은 나이에 나는 결혼을 했다. 이제는 남편과 나 둘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얘기하곤 한다.

이 책은,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가 언젠가 맞이할지도 모를 순간을 이야기하다가 읽게 됐다. 사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읽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우리 곁에 깊숙이 다가오는 것인지, 이런 죽음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족이 있어도 고독사하는 이들이 있는 걸 보면, 고독사의 이유가 꼭 가족이 없어서는 아닐 거다. 유품정리사인 저자가 말하는 삶과 죽음을 듣고 있노라면, 아직 우리가 마주하지 못한 죽음의 양상은 너무 많았다. 죽음의 이유도, 죽음 이후의 모습도, 죽음의 현장을 정리하다가 벌어지는 일도. 저자는 죽음의 현장 중에서도 주로 고독사나 자살, 범죄 사고와 같은 장소를 자주 접한다. 누군가 죽어간 장소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가족이 있어도 직접 할 수 없고, 직접 할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가족이 없어서 그와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해줄 수 없는 상황도 많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죽음 앞에서 그는 숙연해진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아무리 혼자여도 누군가 가끔이라도 옆에서 안부를 물어주었더라면, 그렇게 방치된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는 이 일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죽음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을 시사하면서 이 책으로 현장을 전한다. 그가 마주하는 죽음의 현장은 대개 무관심한 죽음이었지만, 그 사이에서도 따뜻한 사연과 추억은 존재했다. 불쾌하게만 여기지 말고, 한 번쯤 이런 상황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의도로 읽힌다. 세상에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고, 그러니 이들의 죽음을 우리가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혹시나 내가 맞이할 수도 있는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사연 하나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죽음의 현장에 있는 것들은 생전 고인의 흔적이었다. 벽에 빼곡하게 걸려있던 액자 속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옆에 놓인 노트에는 살아가려는 다짐과 의지가 빼곡했다. 그렇게라도 살아가려고 애썼을 텐데, 죽음의 힘이 더 셌던 걸까. 외로움 앞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야 마는 건지.

혼자 떠난 이들의 이유도 다양했다. 어머니에게 안부를 물으며 고시원 단칸방에서 꿈을 꾸다가 죽은 청년,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딸의 시신을 끌어안고 우는 아버지,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마저 못 보고 사는 시간을 견딜 수 없던 중년의 고독사, 혼자 살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집주인에게 괜찮겠냐고 묻는 세입자 할머니, 아들의 삶을 강요하다가 아들의 폭발로 사망한 어머니, 그리고 더 많은 죽음. 그때마다 그들은 혼자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프고 쓰라렸다. 문 하나만 열면 다 보이는 누군가의 삶이었는데,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다. 외롭고 괴로워서,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싶어서, 다른 이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선택한 죽음이 너무도 슬펐다.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나의 엄마가 보였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 앞에 서 있게 될까. 외롭지 않게 마지막을 그려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무섭고 두렵다.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분명히 그들과 다른 모습으로 떠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어서 말이다.

죽음의 현장에는 특히 술병이 많았다. 외로움과 고통을 술로 달래다 죽은 이가 많았다는 거겠지. 기댈 곳이 없으니 술에 의지하면서 생명을 단축하고 있었다. 어느 현장에는 소주병이 방에 가득했고 그 안에는 버리지 않은 소변이 채워 있었다고, 청소하려고 화장실 문을 여니 대변이 변기에 넘치다 못해 화장실에 가득했단다. 사연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홀로 지내던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서 거동이 어려워지자, 이제는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어서 매일 마신 소주병에 소변을 봤더라는 이야기였다. 본인 몸이 불편한 것을 딸에게조차 의지하기 싫어서 혼자 그렇게 앓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기에 딸은 통곡했다고 한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홀로 버티고 버티다 끝난 생의 마지막이 처참했다. 가족이 있어도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면서, 가족이 없는 이들의 마지막은 어떤 죽음으로
기록될까 싶어서 한참을 생각했다.

결국, 서로 마음을 내어놓고 관심 두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정답에 가까웠다. 불편한 몸으로 혼자 지내다가 돌아가셨다는 고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엄마가 생각났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육체는 더 고단해지기 마련이다. 엄마는 예전보다 병원 신세를 질 일이 더 많아졌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통원치료하면서 우리 집에 계시거나. 그때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너희가 불편하겠다고, 그냥 집으로 가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오히려 엄마가 불편할까 봐 걱정인데, 엄마는 자식에게 짐이 되는 자신의 몸뚱이가 거추장스럽다고 한다. 여유롭게 키우지 못한 것도 미안한데, 이제는 나이 들어 병든 몸을 자식에게 기대야 하니 절망스럽다고. 이렇게라도 내 옆에 엄마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르는데, 엄마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살아온 걸까 싶
어 안타까웠다.

저자가 이 책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도 같다. ‘우리에게 정말 남는 것은 집도, 돈도, 명예도 아니다.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13쪽)’이라고 말한다. 짧은 안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소중하게 만든다. 그 ‘누군가’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겠지.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부터라도 엄마의 진심을 듣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사랑했던 기억 많이 남기려고 노력해야지. 밥 한 끼 같이 먹는데 시간 없다는 핑계 대지 말아야지. 결혼하고 1년 동안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 최소 하루에 한 번은 엄마에게 전화한다. 식사는 했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별일은 없는지. 이 전화 한 통에 나는 오늘도 안심한다. 혼자 계신 엄마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지내셨구나. 일주일이 한두 번쯤은 엄마를 보러 간다. 아무 일이 없어도 마치 무슨 약속처럼 시간을 비운다. 쉬울 것 같지만, 사실 하루에 한 번 전화할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그만큼 나와 떨어져 지내는 누군가를 챙기고 관심 두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일이다. 외로움이 아니라 좋았던, 사랑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사는 동안 우리의 시간이 채워져야 하니까. 우리 부부 역시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도 다짐한다. 우리 자신은 보지 못하겠지만, 자기 죽음의 순간이 아프거나 외롭지 않길 바라면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지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절’하면서 나를 위한 삶을 선택하곤 한다. 바쁘다면서 마음 쓰는 일을 미루고, 타인의 영역이라 말하며 감정의 선을 긋는다. 특수한 상황에서 거리 두기가 일상의 필수인 요즘에, 아마도 고독사는 늘어나지 않을까? 마주하며 안부를 묻는 일조차 위험한 일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핑계로, 우리가 타인을 향한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가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심코 지나쳐온 다양한 죽음 속에 내가 언젠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살아가는 동안 충분히 사랑하고 관심 두고 마음을 쏟아낼 것.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살아갈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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