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8511

<페인트>를 읽고
-나는 어떤 가족을 원하는가

 


배수현

 

이 책은 국가에서 설립한 ‘NC센터’라는 곳에서 17년째 살면서 ‘페인트’를 통해 자신의 부모님을 찾는 18살 제누301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페인트’란 부모의 홀로그램을 통해 부모면접(parent’s interview)을 보는 것으로 영어발음이 비슷한 은어, 그 페인트를 의미한다. 1, 2, 3차 부모면접을 모두 마치고 합숙과 최종적인 부모선택까지 결정하고 나면 ‘NC센터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말끔히 없앤 후 센터에서 나갈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매우 생소한 얘기들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이야기 속 아이들은 페인트를 통해 ‘NC센터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없애고 싶어한다. ‘NC센터 출신’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대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누301의 생각은 달랐다. 홀로그램에서의 부모들처럼 가식적인 미소와 친절함이 아닌,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좋은 친구같은 부모를 그린다. 제누301은 ‘부모한테 팔려가느니 차라리 ‘NC센터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사실 나는 제누301의 생각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계부와 계모가 입양한 자식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자행하여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뉴스가 드물지 않다. 심지어 친부나 친모가 자신의 친자식에게 학대를 한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제누301의 생각은 어찌보면 현명해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를 되돌아보았다. 나의 부모님은 두분이 함께 가게를 꾸려나가시기 때문에 종종 혼자 있어야할 때가 많다. 형제자매가 있는 게 아니다보니 부모님은 언제나 나에게 모든 걸 쏟아부으신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기대도 걱정도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부모님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어떤 부모를 원하는 것일까? 얼핏 생각해 보아도 우리 부모님과는 다른 부모님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내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다 누구의 자식으로 어쩔 수 없이 태어나 부모님과는 싫든 좋든 부모자식으로 살아야 하니 말이다.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가 보자. 제누301은 룸메이트인 아키와 함께 페인트를 하러간다. 그곳에서 아키와 제누301은 자신들에게 걸맞는다고 생각되는 부모를 만나게 되는데, 아키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요리를 잘하고 위드보드를 자신과 함께 타고 다닐 수 있는 노부부를 만나게 된다. 제누301은 부모님이라고 부르기에는 그렇지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젊은 부부를 만난다. 부모면접을 도와주는 센터장 ‘박’은 그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제누는 오히려 그들의 솔직함과 독특함을 마음에 들어했다. 제누는 처음으로 본인의 부모가 될 분에게서 자신의 활짝 웃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선물받았고, 아키는 그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은 굉장히 만족했다. 그리고 그 부부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고 ‘센터를 졸업하면 당신의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약속한다. 오히려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있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어쩌면 ‘NC센터’는 아주 가깝고도 분명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선택한 색깔로 칠하는 미래, 자신의 부모가 될 이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곳, 설령 면접이 성사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지만 페인트를 할 때마다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는 본인들의 미래에 갔다 오는 것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경험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한 발씩 한 발씩 내딛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부모없이 이 세상에 홀로 던져져 살아가야 했다면 제누처럼 살 수 있었을까. 나를 낳아주신 분들은 아니지만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책 속의 세상은 내가 사는 지구와는 많이 다른 세상이다. 그 곳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한 계단씩 올라가 어느새 바깥세상으로 갈 수 있는 ‘빛의 길’을 만난다. 힘겹게 빛의 길까지 올라온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빛의 길을 걷는다. 빛의 길을 다 걸어낸 그들은 이제 ‘NC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음에도 성숙하고 근엄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에 대해, 부모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가족은 당연히 혈연으로 묶여있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어떤 경우에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꼭 피를 나눈 가족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게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사랑해야 하는 관계라서 오히려 마음에도 없는 사랑과, 수도 없이 할퀴는 상처를 주고 받는 가족보다는 누구가 됐든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가족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게 이 책은 선물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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