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8500

이왕이면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사고 싶다.

 


김채린

 

꿈은 이왕이면 크게 꾸라는 말이 있다. 이때 말하는 꿈은 ‘이상’이나 ‘목표’를 말하는 것이다. 근데 이때 ‘꿈’이라는 단어가 잘 때 꾸는 꿈과 왜 동음이의어일까 궁금한 적이 많았는데, 영어에서도 ‘Dream’과 ‘Dream’이 동음이의어인 걸 보면 둘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아마도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사실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이 그 공통점일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확실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정하고, 중학교 때에는 진학 희망 대학과 학과를 확정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이미 내가 그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여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계획을 세워두었었다. 게다가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했고, 취미 생활도 다양했으며 늘 연애도 했었다. 항상 바쁘게 사는 편이었기에 친구들은 나를 만나려면 한참 전부터 일정을 정해야한다며 툴툴거리기도 하고, 어떻게 그만큼 많은 일을 해내는지 신기해하기도 했다. 당연히 나는 잠자는 시간이 항상 아깝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적게 잤다.

 [“하지만 잠든 시간은 어떤가요?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죠. 그저 가만히 누워 시간을 보낼 뿐이에요. 말이 좋아 휴식이지, 실제로는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인생을 통틀어 몇십 년을 누워지내는 셈이니까요!”]
 [“반쵸 씨의 이야기가 정답이에요. 사람들은 자는 것보다 재밌는 일이 많으니까 잠들지 않는 거예요.”]

물론 엄마는 내게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생겨나는 질병’들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셨지만 아직 어렸던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대학 때는 온갖 일을 벌이느라 늘 새벽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고, 겨우 새벽 4-5시쯤 곯아떨어졌다가 정확하게 4시간만 자고 일어났다. 어쩌다 초저녁에 잠드는 날이 있어도, 이상하게도 잠든 지 4시간이 지나면 알람 없이도 눈이 떠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사람은 잠을 자게끔 설계된 걸까? 잠자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웠던 나는 혹시 일주일 정도 잠을 안 자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알약이 발명된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더 풍요롭고 알찬 시간으로 가득 채워질지에 대해서 상상하곤 했다.

아마 나 같은 사람만 있었다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진작 망했을지 모른다. 이 소설은 수면과 관련된 상품, 즉 일종의 ‘꿈 관광 산업’ 도시를 배경의 중심지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꿈 백화점에서는 말 그대로 꿈을 판매한다. 전문 꿈제작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다양한 장르의 꿈을 만들면, 잠이 들어 이 도시에 방문한 손님들이 원하는 꿈을 구입한다는 설정이다. 꿈은 무의식의 산물이라는데, 내가 전혀 보지도 듣지도, 심지어 머릿속에서 상상하지도 않을 법한 꿈을 꿀 때면 도대체 왜 이런 꿈을 꾸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다른 사람이 만들어 둔 꿈을 ‘구입’하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페니는 꿈 백화점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페니가 새 직장이라는 낯선 공간에 점차 적응하는 모습은 마치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점차 이 소설의 세계관을 알아가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 소설이 특히 좋았던 점은 단골 고객의 잠자는 시간, 즉 백화점 방문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눈꺼풀 저울’이 있다는 것이나, 꿈값은 꿈을 꾼 이후에 느끼는 ‘감정’으로 지불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들이 마치 주식처럼 값이 변동되기도 한다는 점 등 소설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구성을 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꿈’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도대체 잠은 왜 자며, 꿈은 왜 꾸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 책이 어느 정도 답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제자처럼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든, 두 번째 제자처럼 과거에만 연연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신은 세 번째 제자에게 잠든 시간을 맡겨서 그들을 돕게 한 거예요. 왜, 푹 자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

생각해보면 나도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그렇게 적게 자다가도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동안은 잠병에 걸린 사람처럼 주말 내도록 잠만 자곤 했다. 시험 공부를 할 때면, 아무리 공부할 양이 많아도 잠은 꼭 자곤 했다. 자기 직전에 공부한 것을 푹 자고 나서 다시 한번 더 보면 머리에 더 남는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밤새워 공부했을 때보다 푹 자고 공부했을 때가 성적도 좋았다. 며칠 간 머리를 꽁꽁 싸매도 답이 떠오르지 않던 문제가 있다가, 자고 일어났을 때 갑자기 그 해답이 떠오른 경험은 나만 해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어리고 건강할 때, 그리고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 많을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왜 어른들이 잠을 일찍, 그리고 충분히 자야한다고 말씀하시는지 점점 느끼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몇 년씩 시험 공부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유난히도 잠이 많이 왔다. 오히려 잠을 자면 안 되는 때라고 생각해서 억지로 더 잠을 줄이곤 했는데, 결국은 병이 나서 2주 정도 병원 신세를 졌다. 유방에 혹이 생겨 제거를 해야했을 때도, 갑자기 살이 너무 쪄서 관리를 해야했을 때도, 신장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았을 때도 의사들은 나에게 ‘잠을 충분히 자라’고 권했다. 그런데 정말로 잠을 규칙적으로 푹 자기만 해도 건강이 크게 호전되곤 하는 것이다.

근데 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꿈을 꾸지 않고 푹 쉬듯이 자는 게 좋을텐데 꿈은 도대체 왜 꾸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 답을 얻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주인장께서 우리 가족들을 잘 살펴보시고 괜찮은 때에 해주세요. 너무 이르게는 말구요. 아시잖아요, 다들 괜찮아졌을 때, 하지만 너무 늦어서 섭섭하지는 않은 적당한 때. 그때 배달해주세요.”]

나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인 아빠는 그렇게도 원하시던 딸의 대학 합격 소식만 들으시고 캠퍼스에도 한번 와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평소 지병이 있으셨던 것도 아니기에 우리 가족의 충격은 너무도 컸다. 하지만 충격 때문에 모든 것을 놓기에는, 나는 그때에도 너무 바빴다. 대학생으로서의 삶, 그리고 타지에서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평소에는 예전과 똑같이 즐겁고 신나게 보냈다. 하지만 밤이 되어 기숙사 방에 혼자 남게 되면 갑자기 외로움과 허망함이 몰려오는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싫어서 늦게까지 할 일을 만들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 꿈에 와보질 않았다. 엄마도, 동생도 아빠 꿈을 꾸지 않았다. 우리가 감정이 메마른건지, 아빠가 섭섭해서인지, 아무튼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는 서로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아빠 기일 직전에 셋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빠 꿈을 꿨다. 얼굴이 너무도 좋아보이셨고 평소처럼 다정하셨다. 나중에 셋이서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이제 괜찮다고 말하려고 한 명씩 꿈에 다녀가셨나보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아빠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해졌고, 오히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예전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제는 1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빠가 꿈에 나온 날이면 여전히 베개는 엉망이다.
이 소설처럼 정말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은 가족들을 위해 꿈을 예약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가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기일이 다가오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나에게, 아빠 생각 않고 열심히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나도 괜찮다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아빠를 꿈에 모신 건 아니었을까.

 [“필요한 만큼만 꿈꾸게 하고, 늘 중요한 건 현실이라 강조하시죠. 시간의 신이 세 번째 제자에게 바란 것도 딱 그 정도일 거예요.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다스림.”]
 꿈은 현실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을 깨닫게 해준다. 행복한 꿈이든 악몽이든, 꿈에서 깨어난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충분히 잠을 자는 게 필요하겠지. 아직도 바쁘게 사는 나지만, 이제는 잠을 줄이지 않는다. 꿈에서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기에. 오늘 밤도 안녕히, 좋은 꿈을 꾸기를 바라며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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