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8501

죽음을 위해 준비할 것은 ‘사랑’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고 -

 


박옥현

사람들의 ‘이기심’이 가장 많을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장례식장일 것이다. 왜? 아직은 내가 아니니까.
그러나 죽음은 어느 날 방심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덮친다. 죽음의 손님이 예기치 않은 시간에 우리 삶의 문을 노크하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거나 모른 척 하고 싶어 한다. 언젠가 자기 일로 닥치기까지 그것은 철저히 남의 일인 것이다.
TV ‘동물의 왕국’을 보면, 숲의 덤불 속에 숨어 있던 사자가, 한가로이 풀을 뜨는 사슴무리에 몸을 날려 덮칠 때, 미처 도망가지 못한 한 마리의 사슴은, 그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의 공격에 순식간에 숨통이 끊어지고 만다.
혼비백산 도망가던 사슴무리는, 잠시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돌아와 그 자리에 풀을 뜯고 있다. 심지어 사슴무리는 병들고 약한 사슴 한 마리를, 사자 쪽으로 밀어붙여 잡아 먹히게 하는데, 그러면 한 3일 정도는 평온하다고 한다. 우리 역시도 죽음을 생각할 때는, 풀 뜯는 사슴처럼 남의 일로 여기고 있다.

‘유품 정리사’가 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 실린, 서울대 치대를 수석 졸업한, 한 청년의죽음 이야기와 수많은 고독사, 또 신내림으로 인한 가출로 괴로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 여성의 이야기, 사랑이 증오로 변한 괴물 같은 청년의 방화로 두 딸을 잃은 이야기 등은, 죽음이 바로 내 곁에 있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와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사고, 5, 60대들에겐 추억의 목소리인 성우 박일 씨의 잠자리에서의 죽음, 이태 전 태풍 ‘링링’ 때 버스 기사가 회차 지점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담벼락이 무너져 그 자리에서 변을 당한 일, 층간 소음 갈등으로 30대 부부가 귀가 직후 변을 당한 모습에서, 죽음이 뜻밖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실감한다.
이처럼 죽음의 그림자는 어디에나 숨어 있으며, 심지어 우리 집의 커튼 뒤에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저자는 유품 정리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사람들은 업체명이 적힌 사무실 차량조차 근처에 두는 것을 싫어하며, 사무실 앞에서 간단한 세차만 해도 “그 더러운 차를 어디서 닦아!”하면서 소리친다고 탄식한다. 이런 특수청소업체가 없으면 힘든 건 본인들인데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이토록 견고하다.
이처럼 우리는 죽음을 터부시하지만 일본, 대만, 미국 등에서는 죽음에 대한 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켜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준다. 우리나라는 그런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살다가 느닷없이 노년을 맞이하면 죽음을 더 피하고 싶어 한다. 죽음이 실감 날 정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죽음에 친숙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멕시코 사람들은 고급 식당에서 식사할 때, 맞은 편에 공동묘지가 있으면 그것을 보면서 더 맛있게 먹는다고 한다.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톨스토이’는 인간이 ‘죽음을 의식할(메멘토 모리/Memento Mori)’때,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절대적 평등이다. 이 사실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마음을 열게 해 주는데, 영원히 산다고 착각하니 죽음에 관해서는 무지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비교, 경쟁, 시기, 질투에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주어진 찰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소중하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죽음은 삶의 동반자이며 죽음을 기억할 때 삶도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현재의 삶에 묻혀 죽음을 외면하고, 멀리하고, 두려워하며, 심지어 잊어버리고 산다. 죽음은 피하고 부정해야 할 키워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껴안으며 삶의 동반자로 함께 나아가야 할 존재다.
우리가 죽음에 관해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더 참된 삶과, 더 멋진 인생을 위해서다. 죽음을 이해해야 삶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이 생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생각이 바로 서며, 나도 언젠가는 죽는 존재이고 지금도 엄연히 죽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때, 나와 우리의 현재 삶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본 책에 있는 수많은 죽음에서는, 위와 같은 깊은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고, 떠난 후에 남겨진 것이라곤 술병, 쓰레기더미, 외로움뿐이었다. 더욱이 죽은 자와 남은 자(유족) 사이엔 ‘사랑’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다.

힘든 것도 살아 있으니 겪는 것이고, 행복한 것도 살아 있어야 누리는 것이다. 인생에 행복만 있을 수 없고, 반대로 괴로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취하려 한다. 행복한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서 행복인 줄 모르고, 괴로움은 원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라며 원망하고 비관하며 자신을 파괴한다. 이쯤에서 ‘사랑의 추억’은 사치스러운 말일 뿐이다.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고 기적이다. 내가 존재하는 건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태어났으므로 나는 선택 받았으며 사랑받는 존재이다.
본 책에서 어느 노래방 도우미는, 주거 공간인 옥탑방에 고양이 배설물과 함께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도록 방치했다. 어쩌면 그리도 높이 쓰레기를 쌓아 올렸는지 미스터리 일 정도였다. 이는 삶을 방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소는 의뢰했다는 것은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다!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 아닐까?
그는 이제 겨우 스물둘, 사랑을 배워가는 나이였다. 상처가 삶까지 방치하게 만들고 생의 마감 직전까지 가게 했지만, 이제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와 다시 사랑의 추억을 쌓으며 성숙한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결국, 죽음을 위해 준비할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그러니 지금 사랑하자. 이 순간이 과거이고 현재이며 영원에 닿아 있으니 사랑을 연습하자.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 또한 사랑이니 지금 그 사랑을 연습하자.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그러나 지고 가지 못하고 남기지도 못한다. 정말로 남는 것은 집, 학벌, 돈이 아니고 사랑했던 추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우리가 떠난 후에도 세상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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