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8492

<지구인은 지구를 사랑해>
여행의 목적

 


정연주

 

“나는 머무르는 여행이 좋아. 여행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여행을 할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짐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한 나의 몸은 비행기 값과 호텔 값을 생각하며 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게 머리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생생한 경험을 여행지에서 한다.
‘다른 사람들도 휴가철에 다 해외여행을 가니까…’하고 남들을 따라 시작된 해외여행이었다. 해외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의 후기에 솔깃하여 여행지를 정하기도 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주 가는 여행지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내 여행은 ‘머무르기’보다는 ‘훑고 오기’에 가까운 여행이 되곤 했다. 

평소에는 계획을 잘 못하는 편인데 여행만 가면 시간단위로 계획을 짜고, 버스번호까지 계획에 넣어 놓는다. 그런 여행 후 나에게 남은 것은 그 장소에 갔다는 사진, 그리고 그 때의 날씨 정도일까?
온전히 그 지역을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나는 늘 방문했던 여행지에 또 한 번 가고 싶어 한다. 또 한 번 더 방문하면 온전히 그 지역에 머무르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런 아쉬움으로 방문한 곳이 타이베이였다. 하지만 나의 ‘머무르기’ 여행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는 순간부터 ‘훑고 오기’로 변했다. “현지인들이 즐겨 가는 여행지를 갈 거야!” 하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최선, 차선 그리고 차차선의 계획까지 짰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실수하지 않고 잘 보내고 오고 싶은 나의 욕심과 길을 잃거나 소매치기를 당하면 안된다는 내 불안의 결합이 빽빽한 여행을 계획하게 만든다. 그리고 계획대로 진행되고 무탈하게 여행에서 복귀할 때 그것은 나의 여행계획 덕분이라고 안도한다.
그러니 나의 여행은 늘 빽빽한 계획과 실수가 없어야 하는 순간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향신료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 의아했던 편의점에서 맥주와 펑리수를 구매하던 우리에게 한국어를 배운다며 능숙한 한국어로 관광지를 추천하던 아르바이트생. 계획에 없이 방문하게 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보았던 높은 하늘과 폭신폭신해 보였던 구름.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찾지 못해서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 까지 버스노선을 찾으라고 그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던 순간. 계획된 버스를 타고 여행지에 도착했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는 길이 가팔라 음악도 나오지 않는 버스에서 몸을 주체하지 못했던 순간. 대만에 왔으면 홍루이젠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타이베이 중앙역의 지하상가가 얼마나 큰지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 수밖에 없었던 순간. 내 여행계획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순간들이 어제 본 영화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계획이 틀어지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예기치 않은 또 다른 만남과 또 다른 순간들은 여행의 묘미였다. 빽빽한 여행 계획 속에서 나는 소소한 반전과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여행의 얻음
내 여행이 ‘머무르기’라는 목적이 있다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 그리고 같은 부모를 둔 나의 형제들도 여행을 통한 각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견문을 넓히고자, 세계의 많은 친구를 사귀고자, 힐링을 하고자 각자의 목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특정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에도 여행자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
‘머무르기’라는 여행을 통해서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지구의 다른 공간에도 나와 같은 사람이 살고, 나와 다를 것 없이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한 지역에 머물고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여행객인 나도 어느새 그 지역에 동화되곤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낯설고 무섭고 두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구의 반대편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고,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이 살고 있고, 나와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살고 있고, 나와 같이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 다른 피부색을 하고 다른 체형 조금씩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에 우리는 ‘지구인’이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든 우리는 결국에 나와 같이 지구를 사랑하는 지구인이 많다는 동질감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지구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너, 나 그리고 우리.
나는 생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으로 일찍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자 노력했고, 선택적 채식을 지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제로웨이스트나 채식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관성이 없다.” 하며 비웃곤 했다. 그럴 때면 완전히 제로웨이스트나 채식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미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달과 고기 외의 선택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정세랑 작가가 생각하는 바와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들이 비슷한 것들이 있어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나 혼자만 이렇게 샤이하게 지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조금 더 당당해져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내 생활에 더 많은 범위로 제로웨이스트와 채식을 늘일 예정이지만, 샤이하다고 해서 선택적이라고 해서 비웃는 사람들에게 기죽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로써는 선택적 제로웨이스트와 샤이 채식은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식이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통해서 이 지구에는 내가 만나지 못한 많은 지구인들이 살고 있고, 많은 지구인들은 지구를 사랑하니까 어떤 다른 모습이든 지구를 사랑하는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당당히 지구를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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