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2059

 

사필귀정(事必歸正)과 질량불변의 법칙


하진형

 

 

누구나 살다보면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삶의 여로에서 내리막길이 많다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좋은 것만 내어주지는 않는다. 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되면 사람은 자만에 빠진다. 그러니 꽃길만 걷자고 얘기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부족한 존재인 사람인지라 인생행로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에 맞닥뜨리거나 갑자기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면 실로 난감하다. 그 와중에 믿었던 사람의 등까지 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아연실색할 것이다. 


어느 날 그것이 황망하게도 나에게 찾아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정말 착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하는가. 하늘은 왜 이토록 고르지 아니한가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의 해는 빛을 잃고 쉼 없이 뛰어온 내 자신이 불쌍했다. 그런데 혼미한 정신을 수습하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니 ‘그 일’ 이 나에게는 생겨나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생겨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언제나 약자(弱者) 편이었고 한 번도 길가의 걸인들을 그냥 지나친 적 없이 살아왔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이냐는 말이다. 


그때 만난 존재가 이순신 장군이었고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였다. 언감생심(焉敢生心)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그때 그 분은 그렇게 큰 어려움도 이겨 내셨는데 나는 작은 어려움 앞에서 헤매고 있을 수는 없다’는 추스림이었다.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정녕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는가? 살다보면 쓰러지는 때도 있을 수 있는데 과연 몇 번이나 쓰러졌다가 일어났는가? 그리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나의 행동은 완벽했었는가? 묻고 또 물으니 끝이 없다. 


또, 이순신 장군이 정유년(丁酉年)에 겪은 일을 접하면서 실로 충격이 컸다. 내가 억울하게 당한 것보다 천 곱절, 만 곱절도 더 넘는 고통이었다. 긴 전쟁기간 동안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하고, 또 그것을 사력(死力)을 다해 지키고 있음에도 억울한 누명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는 백의종군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의 황망한 죽음, 그리고 절대 열세의 전력으로 사력을 다해 일구어 낸 기적의 명량대첩, 뒤이어 자신이 가장 아끼던 막내아들의 전사 등 실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덮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적같이 이겨낸 의지와 용기에 진실로 존경스러웠고 자신에게는 부끄러웠다. 


그는 그야말로 장졸(將卒)이 너나없이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는데 나는 과연 하나가 되어 죽을 각오로 싸웠는가? 부끄럽게도 나 개인의 심신(心身)마저도 하나가 되지 못하였다. 

다시 되묻는다. 너 진실로 아쉬움 없이 열심히 살았어? 주위의 사람들을 나 자신과 같이 대하고 죽을힘을 다해 같이 싸웠느냐고? 그리고 열심히 산 이후의 결과에 대하여 초연할 수 있었어? 죽고 사는 것을 하늘에 맡기고 삶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느냐고? 

나의 가슴을 쳤다. 너 겨우 그것을 가지고 지금 뭐하고 있냐? 그것 가지고 삶을 포기할 거야? 몇 번이나 자신에게 되묻고 꾸짖었다. 늘 말해 왔었다. 세상의 아무리 작은 존재, 아무리 짧은 시간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새겨왔지, 말로만 말고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살펴라. 


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비친 한 줄기 빛,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울어 온 소쩍새’였다. 지난 날 나에게 홀연히 다가와 커다란 상처를 주고 간 그것은 새로운 만남과 더욱 중요한 일을 맡기기 위하여 지난 봄 부터 목이 아프게 울어댄 소쩍새였다. 

제대로 교육기회를 받지 못한 아쉬움을 떨치게 해주려는 듯 내내 공부를 실컷 해볼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었고, 자연에 섭리에 귀의하고 순응하는 가르침도 주었다. 즉, 더 큰 것을 맡기기 위하여 낭떠러지에 넣어 담금질 시키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게 하여 끝없는 지구력을 길러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맛보게 해주었다.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 보람의 의미를 알게 하였다. 그것은 인생 후반기에 엄청난 행운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초임지인 삼수고을, 조산보 만호시절의 눈보라, 곧 일어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들과 같은 흘린 땀, 국문장(鞫問場)에서의 죽을 고비, 절대열세의 명량해전 시 대장선(大將船), 그리고 마지막 겨울 노량 앞바다에서 자정에 올린 기도(이 원수를 무찌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를 생각한다. 그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고, 더욱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 존재였다. 

직장을 은퇴하고 인생 후반기 삶을 가꾸며 이순신 장군을 만나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비록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것은 아무런 장애요소가 되지 않는다. 마음을 다지고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못할 것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충분히 알차게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모든 것은 결국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되고, 어디선가 질량불변의 법칙이 작동할 것이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요즘은 산 아래 작은 집에서 채소와 감나무를 보살피고 책도 읽으며 열심히 살고 있다. 때로는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두드려 주기도 하면서 매사에 감사하며 산다. 그리고 내가 만족감으로 알차게 살아야 할 것들은 많다. 그 첫째가 자연에 순응하며 겸손하게 사는 것이고, 죽을힘을 다하여 열심히 살며, 그 결과는 하늘의 처분대로 오롯이 받는 것이다. 그때 곧 행복이 있다. 흙을 파고 삶을 일구면서 기회가 되면 이순신 공부도 더 깊이 해볼 참이다.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나 다시 매진하여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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