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2072

한 사람의 이웃

- 김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를 읽고 -


장영미

 

삼십 년의 시간을 건너와 나는 올해 초에 퇴직을 했다. 돌아보면 돛단배처럼 시간의 풍속 앞에 그저 무심히 밀려온 듯하다. 밀려온 시간은 아득하나 밀려온 공간은 조붓하여 어제와 닮은 오늘을, 또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흘러온 것만 같다. 

 첫 발령 이후 몇 년 동안은 시내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시골 마을에서 근무했다. 집 나간 엄마와 일거리를 쫓아 떠난 아비를 둔 아이들이 조부모와 악다구니를 하는 동네였다. 퇴근 후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섰노라면 천지가 산이고 산속에 내가 파묻혀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빛바랜 내 젊음이 서러웠다. 


 단편 「영자」의 화자는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마장면사무소 서기보로 근무한다. 대낮에도 인기척이 없고 단풍이 저 혼자 짙어가는 외진 시골 마을. 그곳에서 그는 오토바이로 마을을 돌며 공가 상태를 점검하거나 산불 조심 팻말을 논두렁에 박거나 노인들의 효도 관광에 동행하여 뒷바라지를 한다. 오래  전 나의 이십 대 시절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홀로 찬란하나 아무도 눈 주지 않는 깊은 산골의 단풍을 닮은 청춘. 도약을 꿈꿀 수 없기에 혼자 시들어가는 젊음이 그 시절 내 얼굴인 듯 혈족처럼 닮아있다. 

 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때, 노량진 고시텔에서 동거했던 9급 보건직 지망생인 영자. 세 군데 이상 알바를 뛰며 방값으로 섹스를 지불하고 씻지도 못한 채 라면 국물내를 풍기며 잠들던 영자는 시험에 떨어졌다. 그녀는 또 어디서 조미료가 범벅된 한 끼를 넘기고 기거할 방을 위해 분투하고 있을까. 

 버려진 플라스틱 함지박에 영자가 심었던 조롱박 넝쿨이 생각난다. 조롱박 넝쿨은 쓰레기통 옆에서도 잘 자라 올라 어린애 손바닥 같은 이파리를 이층 창문 앞에 펼쳤다. 하지만 동거가 끝나자 조롱박 넝쿨은 걷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영자는 왜 조롱박을 심었을까. 척박한 땅에서도 싹틔울 작은 희망 한 줄기를 찾고 싶었던 것일까. 

 「영자」를 읽다 보면 노량진과 마장면이 같은 동네처럼 겹쳐지고 합격한 자와 불합격한 자의 불안과 고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늘을 사는 젊음의 모습을 처연하게 그리며 작가는 '인간의 생존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힘'의 작동에 대해 말한다. 나의 젊은 시절에도, 그리고 현재를 사는 젊음에게도 그 거대한 힘은 무시무시하게 작동하고 있다. 어느 시기라도 가난한 젊음은 그 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듯 보인다. 그래서 ;고통과 절망을 말하기는 쉽고, 희망을 설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또 다른 단편 「저녁 내기 장기」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마치 「영자」의 젊은이들이 긴 시간을 흘려보낸 뒤 나이 든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 것처럼 느껴진다. 일곱 평짜리 구두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이춘갑은 외환 위기 때 가정의 파탄을 맞았다. 유기견을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는 오개남은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며 연명한다. 그들은 늙은 몸으로 모르는 상대와 장기를 두며 하루하루 시간을 밀어낸다. 

 예전에 김훈 작가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을 읽으며 봄꽃에 관한 아름다운 묘사에 매혹됐던 기억이 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저녁 내기 장기」에서도 작가는 세상의 모습을 꼼꼼히 살피며 섬세하게 풀어놓는다. 오개남이 개에게 볶음밥을 먹이는 장면 묘사를 보며 생각했다. 작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세상을 관찰하며 보내고 있는 걸까. 그의 작품들에는 관찰에 관찰을 더하지 않고서는 묘사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생에 대한 너절한 훈수도, 질펀한 감상도 없다. 이 작품에서도 그저 한 늙음의 모습을 한 편의 그림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짧고 명료한 문장들은 미사여구 없이도 깊은 울림을 준다. 나와는 먼 어느 시기의 탈색된 한 장의 그림일지라도 현재의 내 시간과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위치한 듯 생생하다. 「저녁 내기 장기」 역시 한 젊음을 늙히는 시간의 쓸쓸함이 마치 내 곁의 오늘인 듯 사무친다. 

 폴리우레탄 귀마개로 외부 소리를 막고 피가 몸의 혈관 속을 흐르는 웅웅 소리만 듣는 노량진의 젊음. 아무나 짝을 지어 장기를 두고, 며칠씩 함께 장기를 두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행방을 묻지 않는 신도시 공원의 노년. 노량진의 젊음과 신도시 공원의 노년이 시간의 다른 위치 속에서도 겹쳐진 듯 닮아있어 씁쓸하다. 이전의 나는 노량진 젊음 중 하나였을 것이고, 이후의 나는 신도시 공원의 노년일지 모른다. 존중 없는 세상의 시선을 비껴나 홀로 저무는 노년의 시간을 함부로 부리며 나도 그렇게 사위어갈지 모른다.   


 김훈 작가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나는 『저만치 혼자서』를 읽으며 작가의 이 말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낮은 이, 저무는 이들의 옆자리에 앉아 그들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온기 어린 손을 만질 수 있었다. 


 삼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는 오늘 여기에 있다. 불통과 소외에 고뇌하던 젊음은 이제 그냥 추억이라 치부하게 되었다. 직장을 나오자 하루하루 헐떡이며 달리던 시간이 내 앞에 멈춰 섰다. 그 시간 속에서 『저만치 혼자서』의 단편들을 모두 읽고 나자 마치 나와 닮은 이들을 수없이 만나본 것처럼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그들의 울분과 절망과 고통과 슬픔이 실재하는 감정으로 내게 옮겨왔다. 「손」의 한 장면, '얼음 조각에 실려서 떠내려가는 개'의 울부짖음을 생각한다. 천지간에 홀로 울부짖는 개의 비명에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나는 그 울부짖음에 메아리로 따라 울고 싶다. 그리고 '저만치 혼자서' 사위어 가는 것들을 응시하며 그들의 옆에 앉아 있고 싶다. 주머니 속에 따뜻한 조약돌 하나를 움켜쥔 사람처럼 덥힌 손을 은근히 내밀어 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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