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2063

사는 것처럼 

-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고 - 


진수민

 

 미등록 이주아동. 생소한 단어에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넘기며 나와는 관련 없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데 ‘미등록’이라는 말 자체가 납득되기 어려웠다. 어릴 적부터 우리 가족이 받아온 국가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맞았다. 크게는 학교 진학부터 자격증, 수능까지 문제가 되었고 작게는 은행 업무, 본인 인증, 심지어 콘서트 예매까지도 불편함을 겪었다. 무엇이 이들을 ‘준비된 미래를 설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일까? 

미등록 이주아동은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이동 중 부모의 체류자격 상실, 난민 신청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체류자격이 없는 아이들을 말한다. 국내에 있는 이주노동자는 20~30만 명,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부모가 유효한 체류자격이 없으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법이 어긴 존재가 된다. 이 아이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학습권이 주어져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지만 주민(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이상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기 힘들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공부할 권리는 있지만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졸업 이후, 현행 법체계 안에서는 성인이 되면 언제든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아무 연고 없는 부모의 국적국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인다. 책은 5명의 이주아동, 1명의 변호사, 2명의 인권활동가, 1명의 이주아동 부모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이들의 객관적인 목소리는 나를 점점 그들의 삶으로 이끌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동정을 지나 사회적 문제로 다가왔다. 현재 대한민국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노동력을 의존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도 한국에 살 수 있었다.’ 라는 말은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한국은 주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오는 제3세계 출신 이주노동자에게는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일하더라도 가족을 동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미등록 이주아동은 계속해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수를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미등록 노동자들의 수를 줄이는 것인데, 앞서 말했듯 공장은 외국 노동자들의 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없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사회가 현실이라면, 외국 인력에 관한 정책과 권리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난민은 막 살았기 때문에 받는 형벌이 아니다. 이것이 ‘불법체류자’라는 용어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이다. 

이주노동자 부모에게서 이어진 미등록 이주아동의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니다’라는 표현이 가장 와 닿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없는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사회와 국가에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난민 인정 가능성 0.1퍼센트에 도전한 민혁과 친구들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배척에서 벗어나 믿음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결한 동료 시민의 역할과 중요성을 느꼈다. 남의 반 아이의 일도 자기일로 여기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친구의 고통을 알리고 같이 행동하자 제안하며 적절한 시민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그와 그를 도왔던 친구들이 ‘난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동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 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하지만 인내심이 아닌 강요된 침묵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미등록 아동들을 죄인이라고 전제하지만 그들은 나와 똑같이 매일 학교에 갔을 뿐이었다. 그들은 대학을 포기했고, 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고3 생활이 너무 길었다고 말했다. 한 살 더 먹었다는 이유로 내쫓는 현실은 삶이 연속성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내가 ‘어떻게 잘 살지’를 고민하는 시간에 그들은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나의 개인적인 견해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국가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이주아동의 수용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외국인을 보는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연민에 가득 차 있지는 않았는지, 나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는지도 되돌아보았다. 그들은 세상이 그들을 지우려 해도 ‘세상이 보이는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그들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어려운 고민을 품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심정이 복잡해진다. 내가 꿈꾸는 미래와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차이가 있을까? 행복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점은 똑같지 않을까? 어른들의 행동에 상처를 받는 것은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미래와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것 또한 어른이다. 아직 학생인 나에게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을 좋은 방향으로 장려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의 서두에서 작가는,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한 건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며 그냥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다. 정말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책 한 권으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누군가는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편리해진 삶 속에서 더 이상 소수의 인권이 침해될 수는 없다. 모두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 실질적인 행동만이 국가의 진정한 목표, 자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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