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2060

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를 읽고


지안


 ‘저만치 혼자서’는 일곱 개의 단편을 엮은 단편 소설집이었다. 작품 모두가 작가의 치밀한 관찰력과 화려한 묘사가 돋보여 읽기에는 모두 재미있는 작품들이었다. 다만 몇 작품은 억지스러운 사건전개가 흠이었지만, 아무튼 물 흐르듯 쓴 글솜씨라 독서는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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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명태와 고래

웅장한 태백산맥에서 흘러내리는 ‘향일천’ 주변의 유적을 더듬으며 전개한 산하의 묘사와 그리고 여기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실제 그 풍경에 서 있는 듯해 글맛이 참으로 유려해서 좋았다. 더구나 이런 흥취에 젖었다가 주인공 이춘개가 ‘향일포’로 찾아 들어가는 장면을 읽을 때는 이야기가 끊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화들짝 놀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기도 했다.

주인공 이춘개가 간첩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십삼 년이라는 형을 살고 ‘향일포’로 들어가는 이야기에서는 이것이 이 이야기의 절정임을 알았다.

주인공 이춘개가 태어나 성장한 곳은 휴전선 이북 ‘어래진’이라는 곳으로 휴전선 이남의 ‘향일포’에서는 해안을 따라 거리로서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어래진’이라는 포구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부모의 삶을 따라 어부가 되었고,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30자짜리 연안 자망어선인 ‘어래호’도 자연스레 물려받았다. 그리고 6.25사변이 일어나자, ‘어래호’를 타고 ‘향일포’로 내려와 정착했음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작품을 읽으면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6.25사변이라는 이 큰 전쟁을 작가는 왜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단순 폭격만으로 덮어버렸는지? 더구나 주인공 이춘개가 태어난 ‘어래진’에서 ‘향일포’로 내려온 것은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고 6.25 사변으로 피난민이 되어 밀려 내려와 정착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일어난 사건도 남북이 서로 냉전 상태에서 주인공 이춘개가 ‘어래호’로 선원들과 고기를 잡으며 항해하다가 조류에 밀려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흘러 들어감으로써 발발된 사건이었다. 다행히 그때는 남북 휴전 협정에 따라 북에서는 별로 꼬투리 잡을 일이 없으니 쉽게 풀려날 수 있었으나 ‘어래호’는 북한 경비원으로부터 돌려받지를 못했다.

이후 6년 세월이 흐른 후 ‘향일포’로 침투한 북한 간첩이, 주인공 이춘개가 6년 전 휴전선 침범으로 북에 억류되었을 때 그려준 ‘향일포’ 그림을 침투 경로로 활용함으로써, 이것이 대한민국의 보안법 위반이라는 죄가 되었고 그래서 십사 년이라는 형량을 받고 십삼 년의 형을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정말 그림 한 점으로 이런 형량을 받을 수 있는지? 이 점은 다소 의문스러웠다.

작가는 ‘군말’에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발간한 ‘종합보고서’를 보고 작품을 썼다고 했다. 그 ‘종합보고서’에 대해서는 이 시대를 살았던 독자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사상문제를 남북이 첨예한 대립 상태에서 군부독재의 일방적인 폭정으로만 몰아세우고 작품을 썼다면, 이것은 그 당시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던 사상에 대한 편파적인 비호만을 강조하는 듯해 이 점은 다소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사상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도 그 역사를 보면 여름날 파리가 끈끈이에 죽어가듯이 사상 때문에 의미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가깝게는 6.25사변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그로 인해 받은 아군의 피해는 차치하더라도, 아무 이유도 없이 아군의 총에 죽어간 선량한 중공군들을 보면, 중국도 국민에게는 인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국민을 불쏘시개 정도로 생각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음도 참고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야기에서 남북갈등의 사상에 대한 원초적인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북 분단을 만든 그 원초적인 사상대립과 이에 대한 시대 상황과 그 사상으로 인해 자유를 잃었던 또 한편의 수많은 사람도 많다. 더구나 남북의 사상갈등으로 일어나는 그 비극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서해안에서 공무원의 실족사로 인한 참변’과 ‘북한 어부의 강제 북송’은 누구의 잘못을 떠나 이것도 사상 때문에 그리고 분단된 국가이기에 일어나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입부의 그 화려한 지형설명에서 군더더기는 줄이고, 특히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바다에서 치렀다는 유치한 무당의 굿 이야기는 주제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니 없애고, 이야기의 근원적 문제인 사상과 그리고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이 저지르는 면을 같이 이야기했더라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착한 성정과 사악한 감정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이 세상을 착하게 살지 못함도 이해가 되어야 작품을 읽으며 사상이든 뭐든 독자도 자기반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 이야기는 오로지 남쪽 군부독재 때문에 한 어부가 희생되었다는 은근한 여운만을 남기는 단순고발의 비방만 하는 모습이고, 그렇게 주장하는 내용 자체에서도 다소 강요하는 듯한 억울함의 호소이니 이로 인해 작품의 장점조차 반감되었음은 정말 아쉬운 점이었다.

작가는 ‘군말’에서 ‘고통과 절망을 말하기는 쉽고 희망을 설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작가가 두 사상을 동시에 옳다고 주장할 수가 없으니 늘 자신이 선 그 자리를 기준으로 한쪽만을 바라보는 희망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이기적인 개인감정을 벗어나야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으로부터도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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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손

작품을 대하면서 먼저 이 제목의 ‘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게 궁금했다. 물론 ‘군말’에서 신체의 ‘손’으로 ‘손’이 하는 일들을 열거했지만, 작품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이야기의 제목으로 하기에는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은 특수강간 혐의로 군 교도소에 복역 중인 아들 때문에 경찰의 사건 마무리 조사라는 생경한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그 아들의 어머니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도 아리송한 제목처럼 무엇을 말하려고 쓴 작품인지 부족한 이해력에 한참 골똘히 생각하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 읽고도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였다. 물론 작가는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쓴 작품이었으나 어머니의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이 정리가 애매했다. 아들에 대한 연민도 일반 어머니들처럼 간절하다는 듯이 서술했으나 어머니의 모정은 너무 멀리 보였다. 그리고 남편의 외도로 그 어떤 갈등도 없이 이혼하는 묘사는 부부라는 관계를 너무 가볍게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에게 이혼은 옷 갈아입듯이 생각하는 그런 한가한 여자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작품에서도 부부의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서술하는 것을 보면, 항상 편파적인 글을 쓰는 모 여성 작가처럼 작가는 부부라는 의미를 늘 그러하다는 뜻으로 서술하는 것 같아 이 점은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들이 저지른 그 범죄가 자란 환경으로 일어난 비극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더구나 결손가정이라고 모두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하려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니, 도무지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다는 상황 설명도 납득이 되지 않아 좀 아쉬웠다. 더구나 어머니 이야기는 군더더기 같은 의류장사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아마도 작가는 모정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썼을 수밖에 없었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아들이 강간한 여자가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할 때 구조하는 사람의 옷을 힘있게 붙잡았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걸 제목으로 했다고 하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이 강간 당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니 이 부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딸의 아버지가 그 ‘손’ 때문에 왜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이 점도 작품 내용과는 별로 관계가 없으니 사족처럼 불필요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야기가 아들의 이야기라면, 그 어머니는 좀 더 절실해야 하는데 아들은 남편이 맡긴 남의 자식처럼 느껴졌고 더구나 모정이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아무리 간절한 듯이 아들 얘기를 해도 도무지 아들에 대한 정이 느껴지지 않는 어머니처럼 보였다.

더 어색한 것은? 마지막 끝맺음에서 그 어머니는 왜 피해자 딸의 아버지를 만나러 갔는지? 작가는 선악을 표현하는 것을 그냥 글을 쓰듯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운 속죄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썼다면, 이 장면은 진짜 생각이 없는 멍청한 어머니로 만들었음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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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저녁내기 장기’

작품은 외환위기를 넘기며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춘갑과 오개남이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작가는 ‘군말’에서 노년을 정의하듯이 내뱉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나는 해체되는 삶의 아픔을 느꼈다. 저마다의 고통을 제가끔 갈무리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 앉아서 장기를 두는 노년은 쓸쓸하다. 삶을 해체하는 작용이 삶 속에 내재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서 보았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환경만 다를 뿐 모두 다 의무적으로 늙어간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사업을 한 적이 없는지? 부도 이야기가 남에게 들은 조작된 이야기처럼 느껴져 생동감이 많이 떨어졌음을 알았으면 한다. 주인공 이춘갑이 재산을 빼돌리고 아내가 안정된 삶을 살도록 배려한다고 그런 잔꾀를 썼지만 다른 이유를 만들어 그냥 단순하게 아내에게 아파트를 위자료 명목으로 명의 이전해주고 합의 이혼을 했다고 했으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늙어가는 것은 부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첫 작품에서 얘기했듯이 작가는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는 꾸며진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흠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면서 그럴 거라는 안이한 사고로 글을 쓴다면 그 작가는 진실을 쓰는 작가가 아니고 거짓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대부분이 이런 진솔하지 못한 이야기를 필력 하나만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 이면의 생각까지 참고하면서 쓴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인생 경험은 그 자체가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주인공의 모습만 생각하고 글을 썼으니 사업가로 굳어진 그 면모는 전혀 고려하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전라도 지역 사람들이 애창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했는데? 이게 이 작품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더구나 이 작품은 지역갈등으로 일어난 이야기도 아니고 더구나 주인공 이춘갑은 필부의 인생을 살다가 가는 인생이었다. 인생을 치사하게 사는 모습이 아니고 모범을 보여주어야, 작품을 읽는 독자도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과 지역 불평등을 소재로 한 작품은 편파적인 이야기처럼 오래 읽히지 못한다. 더구나 법원 판결로 그 죗값을 다 벗었다는 듯한 설명은 경솔한 판단으로 보여 너무 상투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이 작품은 늙은이들의 한가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쓴 작품으로 생각한다. 오개남의 생애와 이춘갑의 생애가 서로 환경이 달라도 저물어가는 것은 같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부채 때문에 눈속임 이혼이 진짜 이혼으로 가는 것도 어색했다. 작가는 가정이라는 것이 하찮은 돈 때문에 이렇게 풍비박산 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착각이다. 왜 가정이 있으며, 더구나 아들을 두고 자식에 대한 핏줄 의식은 도무지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작가가 가족이라는 개념을 너무 홀대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재혼한 아내의 죽음은 왜 썼는지? 부부의 정을 이렇게 가볍게 표현하고 말하는 것은 작가가 부부의 정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는 자기가 쓴 글에 대해 그 진실성도 한번 되돌아봤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불만도 읽는 사람의 수준이 작가의 상상력에 비해 미흡해서라면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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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대장내시경과 검사

이 작품은 실제 겪고 있는 노년의 이야기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읽으려고 노력했다. 실제 건강 보험공단으로부터 대장내시경 검사를 여러 번 독촉장을 받았어도 일부러 가지 않아서였다. 여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는데? 어린 시절 명의라고 헛소문 난 돌팔이 의사의 오진으로 오히려 환부를 더 악화시켜 남은 몇 년간의 세월을 고통만 받으시다가 돌아가신 숙모가 생각나서였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관찰을 했는지를 눈여겨보려고 관심을 갖고 읽었다. 물론 이야기에서는 진단결과가 별 이상이 없었다고 설명하는 장면을 보고, 대장내시경 검사를 홀대했던 나의 괜한 벋댐이 오히려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까지 갖게 했다. 물론 이것이 나의 독선적인 판단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의사의 오진으로 대학병원까지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어이없는 재검을 받았으니, 멀쩡한 곳을 호들갑을 떤 개인병원 의사에게 항의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리고 백내장 수술 잘못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는 일까지 당하고 보니, 그래서 지금은 의사의 오진, 잘못된 수술을 운명으로 돌리듯이 앞으로 올 죽음도 그냥 나의 운명으로 돌리겠다는 각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혼으로 생긴 빈 곳을 결혼 전 사귄 여자친구와의 줄거리와 그녀의 아들 취업 부탁으로 메우려는 줄거리 선택도 좀 억지스러웠다. 그럴 경우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인생은 절대 헤어진 사람을 다시 찾아보는 경우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고 작가는 주장할 수 있겠으나, 그러나 작품은 이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켜간다.’

작가는 지난날의 일을 제목과는 별로 관계도 없는 일을 현실로 가져와 상상하게 했다. 작가는 또 은사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결혼은 물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신랑 신부가 안정된 수입의 바탕을 확보하는 일에 힘쓰기를 바란다. 사랑이 아니라 연민의 힘으로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을 물적 토대 때문이 아니고 연민의 부족으로 지겨워서 이혼한 것으로 만들었다. 배운 사람들은 이렇게 지겨우면 이혼을 해도 되는가? 작가는 부부의 정이라는 것을 결혼 전에 사귄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홀대한 줄거리는 다소 민망한 이야기가 되었으니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는지? 오히려 이해력의 짧음에 아쉬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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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영자

이 작품을 읽으면서 9급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읽으며 ‘그 치열함이 정말 그런가?’ 하는 엉뚱한 치열함에 좀 황당하기도 했다. 고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고작 9급 공무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준비하는 시대인가? 오래된 옛날의 이야기지만 9급직 공무원시험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성적으로 보면 대부분 중간 주변의 친구들이라, 학교 다닐 때는 학업준비가 다소 부족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들에게 요즘은 그 삶이 이렇게 치열한가 하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황당하게 느껴져 익숙하려고 한참을 불편했다. 직업은 공무원 9급보다 더 안정된 대우도 좋은 직업들이 많다. 그러함에도 9급 공무원을 이렇게 치열하게 설정한 것은 현실이라고 해도 아무튼 좀 어색하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보다 작품 제목을 왜 “영자”라는 제목으로 했는지? 이 영자, 저 영자 찾은 것도 아니라면서, 더구나 영자는 주인공이 잠시 이해가 안 되는 지나가는 동거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희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한 여자의 성(性)을 이렇게 치사하고 모자라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매도하는 이런 작품은 아무리 생각해도 삼류소설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돈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서 살아야 한다는 이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물론 세상은 바뀌어 인터넷 카페라는 것이 이런 어이없는 짓을 만드니 그럴 것으로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작가에게는 이런 여자를 만드는 줄거리는 옳은 일인가는 묻고 싶다. 희귀하여 이런 이야기를 마치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해주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가는 딸이 없는 것 같다. 딸이든 아들이든 대부분 성인이 되면 학업 때문에 취업 때문에 대부분 그 핑계로 객지로 나가 사회생활을 한다. 이때 넉넉한 재산을 가진 부모가 아니면 그 생활비지원이 부족해서 대부분 어렵게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부모는 늘 마음이 불편하다. 더구나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이 아버지로부터 육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오피스텔을 빌려 공부하라고 빌려주었다는 설정은? 작가가 이야기를 너무 동화처럼 착각하는 듯해 이 장면에서는 꾸몄다는 생각이 들어 짜증조차 났다. 객지로 나가면 어느 것 하나 모두 돈이 필요할 것인데? 풍족하게 해주지 못하는 딸 가진 부모는 이런 글을 읽을 때 눈에 쌍심지가 돋을 것이고 그 걱정으로 아마 잠을 설치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작가는 딸이 없기에 그런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면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을 듣고 작품을 썼어야 했는데 이 과정을 생략하고 쓴 것으로 보여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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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48GOP

일반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오히려 나는 참 쉽게 읽은 작품이다. 나 역시 군시절 비무장지대를 경계 근무하는 수색 중대에서 근무하다가 하사로 제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에서 고참 하사가 제대를 앞두고, 작가가 말하는 대로 제대할 날짜를 설날 기다리듯이 손꼽아 기다리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아무리 군(軍)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년 고참이 모두 그렇게 복무하다 제대를 하는 것은 아닌데, 어디 떠도는 허풍떠는 소리를 사실처럼 얘기하는 것은 좀 민망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은 아무리 소설이지만 군대조직을 낮추어서 하는 말이니, 성실하게 근무하다 제대한 사람들에게는 그 자부심을 무시하는 글이라, 비록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거짓말은 쓰지 않았으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군시절 경험은 늘 가까이 있다. 초소 근무할 때와 중대본부의 서기로 보직을 받고 근무한 기억들이 반백 년을 넘게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한번은 초소로 야간 경계근무로 나간 분대장과 본부 소대장과의 한밤중 간첩침투 보고 교신으로 중대가 초비상이 되어 그 밤을 뜬눈으로 보낸 기억은 아직도 지난 밤의 기억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일을 겪은 그 분대장은 그다음 잠복 초소 경계근무를 나가던 중 길옆의 산딸기를 따 먹으려고 숲으로 들어갔다가 북한 간첩이 설치한 부비트랩을 건드려 순직했다. 이런 살벌한 최전방이었지만 실제 평소는 그렇게 위험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군사 분계선 철책 사이를 다니며, 그때는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남북 군인들이 함께 순찰하던 시절이라, 자주 북한군과 마주 앉아 속내는 날카로웠어도 겉으로는 담소하며 잡담하며 보내도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부대가 다른 낯선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그런 분위기였다. 물론 비상 상황이 벌어지면 아찔한 참사도 일어나겠지만, 만나면 복장과 말씨만 다른 같은 동족이라 별로 적대감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의 말대로 전쟁으로 일어난 분단의 기원은 오래된 역사 속에서 그 필연성을 배태하고 자라나서 오늘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했지만 그리고 겉으로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은 배제된다는 점은 같은 동족이라는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원래 원수는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니,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치밀한 기획에 의한 작품이라 좋은 작품이었지만 유골 발굴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줄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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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저만치 혼자서

모든 종교가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수녀님들의 그 나이 듦에 따른 쓸쓸한 삶을 이 작품을 읽으며 새삼 돌아보게 했다. 일생을 수녀로 살다가 나이 들어가며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부부가 같이 산다고 할지라도 그 늙어감을 도와줄 수는 없듯이 그 누구도 도와줄 수는 없다. 그래서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푼 그 사랑에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가끔 건강 때문에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는 아내가 생각났다. 누가 먼저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럴 때 나 자신이 먼저 감은 편안하겠지만, 아내가 만일 빠르면 나는 어떻게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김루시아 수녀님과 손안나 수녀님에 대한 마지막 삶의 이야기는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작품으로 오래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표제로 할 정도로 흠 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좋은 작품이라 이 작품을 읽게 한 작가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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