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751

시대 유감 ’공감 상실‘

-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를 읽고 -


박옥현

 

2011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를 건학 이념으로 삼는 대학의 청소 경비 노동자 170명이 노조 설립 과정에서 기습 해고를 당한 일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무려 49일간 농성을 벌였다. 파견근로자 문제였고, 대학, 학생 모두 피해를 보았지만, 학생들은 기꺼이 노동자 편에 섰다. 당시 총학생회가 ’열악한 여건에도 고생해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앞장서서 돕겠다‘라는 성명을 발표하자, 노동자들은, ’학생, 우리가 치워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화답했다. 가히 ’공감의 시대‘였다. 

10여 년이 다시 지나 비슷한 일이 Y대학에서 벌어졌다. 이번에는 공감은커녕 학생 셋이 청소 경비 노동자의 집회 소음으로 수업권을 침해당했다며 고소했다. 이들은 또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및 진료비 등 638만여 원을 지급하라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예전 같으면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며 학생들을 힐난하는 여론이 높았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SNS 댓글은 물론, 커뮤니티 관련 글에도 학생들을 두둔하는 의견이 놀랍게도 훨씬 많았다. 노동자들이 신고도 하지 않고 공부하는 도서관 등에서의 집단행동이 과연 옳으냐는 날 선 지적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대학 나오면 으레 취직, 결혼, 내 집 마련이 순선대로 한 치의 오차없이 착착 이루어지던 낭만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구내식당도 부담돼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N포‘ 청년들에게 청소 노동자의 시위는 ’공감‘의 대상이 아닌 ’수업방해꾼‘으로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공감 상실‘ 시대에선 이게 상식이고 흔한 일이라 생각하니 씁쓸하다. 


위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지금 ’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문학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여 간접 경험함으로써 공감, 창의성, 새로운 사고, 관점을 배울 수 있고, 때로는 우리의 인생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문학에 숨겨져 있는 ’신경과학적 효과‘ 즉 ’우리 마음에 미치는 놀라운 효과‘ 덕분에 말이다. 


본서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저자 오하이오 주립대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이 획기적인 책을 통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혜택을 소개한다. 


“문학은 용기를 북돋고, 격렬한 분노를 떨쳐내며, 상처를 딛고 올라서게 하며, 또 비관적 생각을 버리며,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케 한다. 그리고 문학을 읽으면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 또한 자기 자신 혹은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 심지어 상실과 실패 그리고 모든 공포의 근원인 죽음에 맞서서 용기를 내고 극복해나가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앵거스 플레처는 ’문학‘에 숨겨져 있는 25가지 발명품을 소개하며, 이 모든 문학이 주는 효능 기저에 신경과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즉 <일리아드>에서 ’용기‘를, <오만과 편견>에서 ’사랑‘을, <욥기>에서 ’공감‘을... 등 ’문학‘이라는 경이로운 발명품이 인간에게 미치는 놀라운 효과를 탐구한다. 


우리는 지금 첨단 기기를 누구나 막 쓰는 거대한 ’하이테크 도시‘와 여의도, 송도, 해운대에 미래적인 마천루를 지어 ’빌딩 숲‘에 살지만, 감성(공감)을 잃어 가고 있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고독과 단절감을 느끼며 절망, 즉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 케골)‘을 앓기도 한다. 또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다. 이럴 때 ’문학‘의 가시를 찔러 정신을 바짝 차리자. 

김애란의 소설 <여름은 바깥>을 읽으면서, 상실 속에 아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를 통해 스쳐 지나가면 그만인 타인이, 순간의 위안을 선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보자. 그리고 정유정의 <7년의 밤>을 통해 선보다 악을 택하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 보자. 


한편,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고민을 나누길 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공감 상실‘의 시대이기에 허탈해진다. 이때 문학은 좋은 도구가 된다. 소설, 시 등 문학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느끼며, 세상을 배우기 위해서도 소설을 읽자. 인생의 많은 교훈은, ’정직하게 살라‘, ’베풀며 살라‘, ’공감력을 가져라‘라는 식의 한 문장으로 충분하지만, 우리는 굳이 한 권의 책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고 또 증명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또 “중년의 아줌마가 여행하다 뜻밖에 고립돼 겪는 일”이라고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찾아 읽는 이유는, 세상과 사람의 내면을 천천히 그리고 무게 있게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을 이용해 ’공감‘을 연습함으로써, 우리는 신경세포를 더 자주 공감과 반응하도록 길들일 수 있고, 이로써 집단적 분노와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줄여 우리 사회를 더 포괄적이고 더 행복하게 가꿔나갈 수 있다. 

그런데 ’독서 주간‘이 따로 정해질 정도로 책을 읽지 않아서일까. 각종 이익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생각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실종되고 있다. 사회적 연대 의식이 약화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이다. 따라서 서두에 청소 노동자들을 고소한 학생들은, 문학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먼저 기를 필요가 있다. 전공 지식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없다. 


이 시대는 바야흐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균형 있는 문학교육이 절실하다. 책을 읽지 않고도, 사는 데 불편함이 없는 사회는 무서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은 4.5권으로 6년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대학생들의 전공 서적을 빼면 독서량 평균치는 더 내려갈 것이고, 이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 절반을 훌쩍 넘는다는 뜻이다. 이런 통계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소설의 위상은 자꾸만 추락한다. 그러고도 이른바 K컬처가 세계를 휩쓴다니, 기묘한 일이다. 

작금의 시대 유감인 ’공감 상실‘이 미래에도 계속되어,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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