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2071

외면하고 싶은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고


박경옥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안쓰럽고 가엾은 아이가 추운 날씨에 외면당한 뒤, 처량하게 죽어간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한 독자라면, 으레 성냥팔이 소녀를 가엾게 여기게 된다. 만약 성냥팔이 소녀가 바로 옆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어린아이가 추운 날씨에 처량하게 성냥을 파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게 되고는 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아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성냥팔이 소녀에게 위로라도 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최중언의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는 마치 사람들에게, 성냥팔이 소녀처럼 소외되어 쓸쓸히 버려진 사람이 이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하는 듯한 책이다. 그리고 단순히 외면받은 현실을 알려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면서 앞장서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부제는 ‘소외받은 이를 향한 공감, 연민, 실천’이다. 그리고 여기에 동정은 언급되지 않는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호소하는 캠페인이나 구호가 워낙 흔해서, 마치 동정심만 가지고 적당히 자선만 해도 충분히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여기게 되기 십상인 상황과 비교하면, 의외라고 여겨질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소제목에 동정이라는 단어 대신 공감, 연민, 실천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이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주요 무대는 무료 자선병원이고, 저자는 그 자선병원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선병원에는 일반적인 병원에는 돈이 없어서 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이 책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이 어렵고 힘겹게 겨우 치료받는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다. 단순히 소외된 약자들을 동정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할 일들을, 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도록 이끌면서.

이 책에서는 노숙자, 의료 빈민, 도시 빈민, 이주 노동자 등이 등장한다. 일상적 차별에서는 여러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하나같이 처절하고 처량한 사연들이다. 워낙 일상적으로 소외된 나머지, 어느새 사회가 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걸 당연한 현상처럼 여기게 되며, 그런 사회적인 인식 속에서 더욱 소외받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자 처절한 사연과 함께 묘사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거나 증오하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일종의 암묵적 지침 같은 것이 있다. 실제로도 대놓고 약자를 괴롭히는 혐오범죄 계열의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서러운 신세로 화제가 되면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기는 한다. 특정한 약자 한두 명이나 가족의 기구한 사연이 알려지고 모금운동이 일어나면, 모금금액은 꽤 빨리 많이 모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이른바 소외된 약자들이 멸시받지 않는 사회라는 의미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부분을 의식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어느새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멸시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에서 철저하게 존재가 외면당하고 무시당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오히려 그 정도의 행동만으로도 소외되지 않은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충분히 할 도리를 했다고 여기면서, 평소에는 무관심한 것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가? 동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때 산발적으로 동정하는 것은, 과연 본질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이 책은 그런 시선에서 평소에는 일상적으로 제외되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책에서도 챕터 하나를 할애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피해자들에게 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끝난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이 악몽처럼 들러붙어 괴롭게 만드는 현재진행형인 이야기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과거의 사건으로 여겨지게 된다면, 그건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현상이 이른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에서는 법칙처럼 되풀이되고는 한다. 특정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주목하지 않고, 언급되지도 않으면, 어느새 그 문제가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건 해결된 게 결코 아니다.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외면당하는 동안, 속으로는 문제가 더욱 곪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아픈 곳을 치료받지 않고 방치하면 병이 더 깊어지기 일쑤이고, 그런 환자가 이 책에서는 여럿 나왔던 것처럼.

그래서 이 책이 불편한 진실이나 다름없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것이 더욱 와닿는다. 소외받는 사람들은 소외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평소에는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어느새 그런 일이 이제는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느낌과 달리, 실제로도 그럴까? 천만에.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일들이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단편적으로 쓰인 글들을 묶었는데, 집필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고 연대별로 마구 섞여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나중에는 제도적으로 해결되어 재발하지 않게 된 일이 없다시피하다. 이런 구성에서도 딱히 위화감이 없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십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더욱 생생하고 절실하게 체감하게 될 지경이다. 아울러 설사 일시적으로 그 문제가 좀 덜해진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있을지라도, 조금만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사로서 활동하는 구호병원에서 소외계층 환자가 생길 때마다 힘이 닿는 한 의료비 없이 치료하면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을 동정하기만 하는 대신, 공감하고, 연민을 가지며,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실천하는 것. 서류에 의존하는 기계적인 제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 되기 십상인 데 비해, 본질적인 해결책에 훨씬 더 가깝게 다가가는 모습과 함께.

소외받는 약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불편한 진실이자, 동시에 엄연한 진실이다. 이 책의 사연들은 그저 지나간 옛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일이자,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일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일회적인 동정심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면, 그 다음에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까?

한 가지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화제가 될 때 동정만 하고 평소에는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그 사람들과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말이다. 그건 곧 우리가 해야 할 일이자, 실천으로 옮기면 조금이나마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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