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2055

‘여기쯤 함께’의 사회를 생각하다

- 김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를 읽고


김회관

 
10여 년 전 고등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진로계획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자신의 진로를 설정한다.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생명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 그때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사람들이 꼭 행복해야 하나요?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가야 하지 않아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서 우리 주변에는 왜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없어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있다. 김훈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종종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장편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었을 때, 구국에 온몸을 바치는 장군이나 나라의 존망을 염려

하는 왕뿐만 아니라, 참혹한 전란으로 곤궁하고 위태로운 생을 하루하루 이어가야 했던 백성들의 처절한 운명을 생각하면서 가끔 목이 메기도 했다. 이번에 작가는 7편의 단편을 묶어 ‘저만치 혼자서’라는 책을 냈다. 이번에도 주인공들의 비운에 마음이 무거웠다. 소월의 시, ‘산유화’에서 따온 제목에는, ‘이 땅을 사는 우리는 모두 고독할 수밖에 없다’라는 통찰뿐만 아니라, 거친 세상을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엉뚱한 일로 간첩으로 몰려, 가정은 깨지고, 13년을 복역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죽는 어부 이춘기에게는 기댈 사람이 전혀 없었다. (‘명태와 고래’) 특수강간죄로 10년 형을 받게 된, 이혼 후 혼자 키우던 아들을 가진 어미와 그에게 강간당한 딸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닥뜨린 아비 둘 다 벗어날 가망이 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다. (‘손’)

IMF 사태로 가정이 해체되고 구두를 수선하며 살아가는 이춘갑과 쓰레기 수거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오개남의 내기 장기에서는 버려진 개까지 등장한다. 우리들의 삶의 기반은 얼마나 부실하며, 인간관계가 얼마나 피상적일 수 있는 지도 보여주었다. 결말묘사는 좀 건조해 보였지만, 여운은 아주 길었다. “다음날, 김영자(이춘갑의 전처)는 화장되었고, 오개남은 옥탑방으로 이사했고, 오개남의 개는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공원 앞 유기견 센터 철망 안에 갇혀 있었다. 이춘갑은 오후에 공원 장기판에 나왔다. 오개남은 짐을 정리하느라고 공원에 나오지 않았다, 이춘갑은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비집고 안약을 넣었다.” (‘저녁내기 장기’ 120쪽) 

성공적인 직장생활 후,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혼자 사는 노인이, 추억 속의 여인이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에 잠기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켜간다(129쪽)”라는 말은 애잔하게 다가왔다. (‘대장내시경 검사’). 

말단 공무원이 되기 위하여 열악한 고시촌에서 분투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구조가 청년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그들의 삶은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게 되었다. (‘영자’) 며칠 전 한 일간신문의 ‘20대 사망원인 57%는 극단선택, 고독사는 9년 새 3.4배 늘어’라는 제목의 기사는, 청년들의 짐이 얼마가 버거우며, 사회가 어떻게 ‘앞날이 구만리’인 그들을 벼랑으로 내모는가를 분석하였다. OECD 국가 중 20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우리나라, 안간힘을 다해 버티던 많은 청년이 결국 세상을 등지는 우리 사회를 보면 매우 부끄럽다. 또한,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홀로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은 왜 이처럼 늘어나

는가? 최근 경기도 수원에서 위기가정의 세 모녀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하루가 멀다하게 자녀를 동반한 자살의 뉴스가 들린다. 이런 비극적인 사회현상을 접할 때마다 자랑스럽게 선진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가, 오히려 총체적인 결함사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6·25 때 청년이었던 할아버지는 전사하고, 조그만 가게로 겨우 살아가는 아버지와 준비 없이 제대하는 임 하사를 보면서,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진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과 빈곤의 대물림은 필연적이다. (‘48 GOP’)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았던 수녀들이, 호스피스 수녀원에서 지내다가 쓸쓸하게 죽어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모두 저만치 혼자서 피고 지는 존재’임을 실감하였다. 옷가지 몇 점, 묵주 한 개, 나환자촌에서의 일지를 유품으로 남기고, 독방을 쓴지 

두 달 만에 죽은 김 루시아 수녀의 장례에는 한 사람의 유족도 없었다는 서술은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저만치 혼자서’) 소설집의 제목 ‘저만치 혼자서’가 나오는 시, ‘산유화’를 다시 읽어보았다. 산유화는 어떤 특정한 꽃의 이름이 아니라, 산에서 피고 지는 모든 꽃을 가리킨다고 한다. 시인은 홀로 외롭게 피고 지는 꽃의 비극적 존재를 형상화하고, 이러한 존재의 생멸이 순환하는 공간으로 산을 제시하였다. 작가는 바로 꽃의 이 이미지를 책의 제목으로 빌려왔고, 저만치 홀로 태어나서, 홀로 살다가, 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이러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끝없이 일어나는 공간인 세상을 촘촘히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는 약한 이웃들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공감하며, 그들 편에 이웃으로 서 있다. 한 사람의 이웃으로써,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본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사람들을 이웃의 눈으로 바라보고, 여러분께 보여드린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현직에 있으면서, 어린 학생들이 공부뿐만 아니라 불행한 가정의 짐을 지고 허덕이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서 우리 주변에는 왜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없어요?”라고 묻던 학생이 떠올랐다. 작가는 ‘저만치 혼자서’라는 제목으로, 비록 불행한 사람들도 함께 행복을 꿈꾸며 살 수 있는 ‘여기쯤 함께’의 사회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이웃들의 착한 이웃이 되어 함께 만들어 내는 따뜻한 사회를 꿈꾸

며,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저만치 혼자서’의 비정한 결함사회에 살고 있지만, 마음을 

열어 함께 어울리며, 사랑으로 서로를 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을 모은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한 ‘여기쯤 함께’의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난과 재난에 휩쓸려 가는 이웃을 지키는 이는 바로 우리여야 한다. 우리는 각자 ‘외로운 섬’이 아니라, 모두 연결된 한 사슬 안에 매인 사람들이다. 먼 곳의 불행도 바로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불행도 가볍게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작가처럼, 더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공감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착한 이웃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소설 속 인물의 독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사랑이 가득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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