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8449

 

‘일만번의 다이빙’을 읽고


박소연

 

꼭 다문 입술이 다부져 보이는 소년의 머리카락엔 물방울이 맺혀 있고 책상위로 내리쬐는 햇빛에 반사된 머리카락은 마치 윤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오빠가 읽기 위해 책상 위에 놓아둔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너는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니?’ 어떻게 보면 화가 난 듯도 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뭔가 큰 결심을 한 듯한 남자 아이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 보았다. 


꽃무늬 수영복을 입고 꽃길만 걷고 싶은 아이, 박무원. ‘폼이 정말 멋지더라. 김밥 먹을래?’ 라는 기재 코치님의 말 한마디에 다이빙을 시작한 내 또래의 남자아이. 코치님이 싸 준 마약김밥 때문에 다이빙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폼이 정말 멋지더라’라는 말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수영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 하고 힘들어 할 때,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이빙대에서 무원이가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를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무언이에게는 ‘다이빙’이 내게는 ‘글쓰기’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집앞에 도서관이 있었던 덕분이다.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글쓰기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 덕분에 글쓰기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주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써 놓은 글이 재미있다며 글짓기 대회에 출품을 하셨고 운이 좋게 나는 몇 번 수상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작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글쓰기가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 줄까?’ ‘이 표현을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잘 썼다고 인정해 줄까?’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 더 중심을 두고 글을 쓰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는 내 생각이 아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갈팡질팡 하는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결국 내 컴퓨터에는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만 쌓여갔다. 6학년이 되기 전에 한권의 책을 출간해서 어린이 작가가 되고 싶다던 나의 목표는 시간의 흐름속에 잠수를 하게 되었다. 대회에 보낸 내 글들이 수상을 하지 못 하면 ‘나는 글쓰기에 소질이 없나?'‘심사위원이 제대로 글을 읽기나 한걸까?’라고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들었고 이런 마음들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무원이처럼 나에게는 글쓰기가 환희나 설레임인 동시에 우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한번은 학교에서 수행평가로 국어시간에 주장하는 글을 써서 친구들끼리 평가하는 댓글을 단 적이 있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열심히 자료를 찾고 친구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도 만들어 최선을 다해 글을 썼다. 그런데 친구들이 남긴 댓글은 내가 기대했던 칭찬이 아니었다. 내가 쓴 글의 자료가 블로그에서 가져 온 데이터라 신뢰성이 부족하고 반 친구들의 설문조사를 근거로 제시한 데이터는 자신은 참여하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댓글도 있었다. 친구들이 무심코 남긴 댓글들이 나를 찌를 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글쓰기가 싫어진 결정적인 사건은 학교에서 실시한 ‘장애인식 개선에 대한 글짓기’에서 우리반 다른 친구가 상을 받은 것이다. 그 친구는 글짓기에 전혀 관심도 없고 책도 전혀 읽지 않는 친구였다. 수상자의 이름이 불리우고 친구가 상을 받는 동안 아이들이 치는 박수소리가 내 뺨을 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힘들어도 쓰러지지 않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재훈이나 본희, 은강, 기재코치, 그리고 기창 할아버지가 있는 무원이가 부러웠다. 힘들고 두려운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 덕분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훈이가 기량이 늘어나는 무원이를 경쟁상대로 생각하며 둘 사이가 삐그덕 거릴 때 나는 재훈이가 밉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상을  마치 친구가 뺏어간 것처럼, 친구가 상을 받는 그 순간의 감정을 나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시기와 질투! 그 순간 내 좁은 마음의 실체도 빨강이었다. 나는 내 감정이 부끄러워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혼자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한동안 글쓰기를 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책도 읽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 본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매일 컴퓨터 앞에서 뭔가 두드리던 내가 며칠동안 컴퓨터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으니 처음엔 드디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려나보다 기뻐하셨다. 하지만 딱히 공부를 하는 모양새도 아닌데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볼 수 없는 시간이 되자 궁금해 하셨다. 나의 이야기는 길었다. 하지만 엄마는 끝까지 참고 다 들어주셨다. 그리고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엄마는 대회에 상을 받으라고 니가 써 놓은 글을 출품한 건 아니야. 그게 너에게 상처가 되는 줄 몰랐어. 좀 더 신중하게 너랑 상의했어야 하는데.. 상이라는 결과가 너를 조금 더 성장하게 할 줄 알았지 상처가 될지는 몰랐어. 미안해!!!” 그리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글을 쓰고 싶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아. 네 꿈이 작가라고 해서 지금부터 네가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없어. 언젠가 너의 마음속에 글이 차 오르는 순간이 있다면 그 때 다시 써도 되고... 평생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면 영원히 안 써도 괜찮아. 네가 진심을 다해 쓰지 않는 글은 그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가 없어. 우리 기다리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마의 이야기 덕분에 나는 나의 꿈을 위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의 슬픔과 분노와 좌절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무원의 믿음이 내 심장을 다정하게 노크했다. 책을 읽으며 상이라는 메달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나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데 느끼는 기쁨을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행복이의 아이디어 세상’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내가 찍은 사진들과 글을 올리고 있다. 블로그 이웃이신 엄마는 내가 글을 올리면 가장 먼저 달려와 응원과 격려를 남겨 주신다. 그리고 가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내 글에 댓글을 남기면 심장이 튀어나올것처럼 신기하고 기분이 좋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도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나의 불안과 걱정을 이기는 끝없는 도전, 일만번의 글쓰기’ 

나의 꿈을 이루어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무원이처럼 나의 오늘은 수없이 많은 오늘이 쌓여서 만든 소중한 삶이었고, 분명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내일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좌절과 슬픔도 참아낼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열심히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이어지는 방법, 꾸준히 밀고 나가면 한번은 가 닿을 수 있는 길을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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