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8443

 

<느티나무 수호대>를 읽고


강혜원

 

 마스크는 나에게 은신처 같았다. 성장기에 완전히 폭발해 버린 호르몬이 만들어 낸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을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퍼진 당시 초5이었던 나는 난데없는 바이러스에 두려운 나머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등교했고, 겨울에만 쓰던 마스크를 사계절 내내 썼고,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곳곳에 비치된 손소독제, 매일 꼬박꼬박 30초 이상 동안 손 씻는 습관 등 모든 일상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뀌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올해 봄, 드디어 코로나 엔데믹 선언 발표와 동시에 마스크 착용도 해제되었다. 진짜 몇 년 만인지 마스크를 벗은 채 도서관 신간 도서 코너 앞에 섰다. 여러 책 사이에서 맑은 하늘색을 띤 [느티나무 수호대]가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책의 앞 내용을 잠깐 읽어보는 순간에도 바로 지연이가 떠올랐다.

지연이와의 첫 만남은 온라인 수업에서였다. 온라인으로 등교하던 2020년, 담임 선생님이 한 전학생을 소개하셨다. 5학년 때는 별로 접촉이 없어 잘 모르는 사이였다. 다음 해 2021년, 반에 들어섰을 때 아는 친구가 몇 명 있었지만, 마스크 때문에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아이 중 지연이도 있었다. 지연이와 2년 연속 같은 반이 되었다. 처음에는 같은 모둠으로 조별 활동을 하면서 약간의 대화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다. 한 달 동안 지연이 자리가 반 한중간에 있었다. 내가 지연이 뒷자리였는데, 대체 급식을 먹는 건지 마스크를 먹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심하게 가렸다. 어느 날, 영어 학원에 가고 있는데 지연이가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가 다니는 학원 건물로 들어섰다. 난 아는 체를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지연이는 아직 내가 이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지연이에게 모둠 활동 때 말고 처음으로 말을 먼저 걸었다. 우리는 학원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요일 하교 후에는 같이 학원에 갔다. 그 이후로 나와 지연이는 어느 정도 친해졌다. 자주 놀지는 못했지만, 지연이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매주 같이 영어 학원에 등원할 때만큼은 항상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느티나무’에서 아이들은 실컷 놀고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나도 지연이와 편하게 대화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내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마스크를 벗기는 싫고, 그렇다고 불편하게 마스크를 쓰면서 지연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우리에게 느티나무 같은 공간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 다른 중학교에 입학하고 우리가 학원을 끊게 되면서 우리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생겼다. 우리가 다니는 중학교 간의 거리는 약간 멀었다. 우리는 문자로 연락을 이어왔고 가끔 만나서 놀기도 했다. 이후 코로나 엔데믹의 해방감에 한 번 날을 잡아 놀자고 약속했다.

엔데믹 전에 하루, 우리는 카페에서 만나 최근 근황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득 지연이가 자기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이때 처음으로 지연이의 아버지가 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 지연이를 봤을 때 마스크로 가려도 약간 새어 나오는 이국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별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태국인이라는 이유로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 무언의 무시와 차별적인 언어를 들은 적이 있어서 속상했다고 했다. 차별의 상처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코로나에 맞춰 전학을 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과의 다름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이 지연이 같은 다문화였다. 이들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왔다. 지연이는 요한이와 비슷했다. 요한이의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인이고, 태권도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되었다. 5학년 때 요한이가 태권도 학교 대표가 되는 걸 반대하는 학부모도 있었지만 요한이가 전국 대회 금메달을 따자 그제야 학교 대표로서 인정받았다. 지연이는 악기를 잘 다루는데, 특히 피아노를 정말 잘 쳤다. 피아노 칠 때 지연이의 모습은 보자마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지연이는 간혹 대회에서 차별적인 심사위원 때문에 본실력만큼 평가받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런 사건들 때문에 지연이가 더 마스크에 의존하는 것 같다.

나도 여드름으로 덮인 시뻘건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 마스크로 내 얼굴을 꼭꼭 숨겼다. 지연이는 태국 혼혈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다. 우리 둘은 엔데믹 선언 전에도, 실외 마스크가 풀렸을 때도 마스크 착용을 고집했다. 만나서 밥 먹을 때조차 마스크를 편하게 풀지 않았다. 솔직히 지연이에게 먼저 다가간 이유는 우리 둘 다 마스크를 은신처로 쓴다는 것에서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아는 나는 그 자리에서 지연이에게 나의 사연도 털어놓았다.

나는 여드름 때문에 은근한 외모 차별을 받은 적 있다. 초등학생 때 여드름이 많아서 한 번은 ‘넌 얼굴이 그래서 답답하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내 마음속에 남은 상처는 짧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내 얼굴을 보고 약간 키득거리는 등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이 사연을 말한 후, 우리는 ‘너도 그랬구나’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는 느티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의 여드름은 치료될 수 있지만, 책 속 아이들, 지연이의 혈통은 바뀔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고통, 열등감 같은 것들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혼자서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 힘들어서 느티쌤이 있었다. 느티쌤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힘과 자신감을 가지도록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인정하고 소통하려 노력했다. 나도 지연이의 느티쌤이 되어 지연이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아’라고.

약속으로만 남아 있었던 우리의 만남은 엔데믹 이후 이루어졌다. 우리는 우리만의 ‘느티나무’ 속에서 마음 놓고 마스크를 풀었다. 제대로 지연이의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서 약간 어색했지만, 마스크를 벗음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마음에 나도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느티쌤이라는 것을. 나와 지연이는 서로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오랜 기간 소통하며 서로를 인정했다.

지금까지는 마스크 뒤에 나를 은신시켰다. 그저 부끄러움 때문에 내 얼굴뿐만 아니라 ‘나’ 자체를 숨겼다. 입을 꾹 다물었고 다른 친구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나에게 마스크란 처음엔 단순히 은신처였는데, 오히려 뜻하지 않게 친구들과 벽을 쌓고 있었다. 그 벽을 부숴준 사람은 지연이가 처음이다. 앞으로도 나는 지연이의 느티쌤, 지연이는 나의 느티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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