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8430

 

키치를 넘어 의미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정미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권했던 연인이 있는가? 내게 그는 최악의 연인이었다. 하지만 연인은 떠나도 작품을 남았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접했을 때, 어려운 문장들과 끊임없는 외도가 반복되는 ‘바람둥이 연대기’로 짧은 평가를 마쳤고, 한동안 이 책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여러 연애 이후 20대 중반, 항상 우수에 차 있던 전 연인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흘러가듯이 했을 때, 그와 더 가까워지고자 이 책을 읽으며 이제는 만나면 그가 아무리 바람둥이일지라도 매력에 빠지고 말 것 같은 토마시의 행동에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고, 책 속의 그와 연인의 이미지를 맞춰 보고자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몇 달 뒤 그는 바람으로 최악의 이별을 선사했고, 이 책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결혼과 육아로 바쁘게 지내던 2023년, 영광독서감상문 공모전을 접하고 밀란 쿤데라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빠져들었던 것도 몇 년 전 아름다운 가을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부제1. 사랑과 키치 사이 외줄타기 


스무 살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가장 거부감이 들었던 부분은 토마시의 바람기였다.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스무 살에 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과 여성 편력을 즐기던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몇 번의 연애 후 다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토마시, 사비나, 프란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이 책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프닝이 떠오른다. 많은 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연 준비를 하며 무대를 위해 경쾌하게 뛰어가지만, 그의 뒷모습은 어떤지 외로워 보인다. 계속 반복되는 가사 ‘Can anybody find me somebody to love(사랑할 누군가를 찾을 수 없나요)’가 나직한 절규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실제로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을 오랫동안 사랑하고 지지하던 애인이 있었지만 많은 곳에 외로움이 묻어나며, 애인과 결별하고 동성애자가 되기도 했다. 


토마시,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 테레사는 토마시를,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움을, 프란츠는 사비나를 찾는다. 


저명한 외과 의사 토마시와 예술가인 사비나는 이미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명예 또한 있지만 공허함을 느끼고 끊임없이 외도를 즐긴다. 이들을 보며 부와 명예, 그리고 가장 위대하다고 여기는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던 공허와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미디어와 책을 통해 사랑을 배웠던 어린 시절엔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귀여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을 하던 순간에도 끊임없이 공허는 밀려왔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된 이후 비로소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이해가 된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며 사랑 이외에도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느끼던 키치가 내게 다가왔다. 아마 사랑하는 아이 덕분일 것이다. 아이를 처음으로 품에 안은 순간, 극도로 충만한 행복을 느끼며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토마시도 테레사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은 마치 토마시가 테레사를 ‘여섯 우연의 연속’이라 여기자 거리감을 느낀 것처럼 출산 후 이곳저곳 아픈 몸, 모유수유의 어려움 등으로 희미해졌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도 육아로 힘들 때마다 나중에 입고 싶은 옷, 아기를 위한 (그러나 당장은 필요 없는) 물품들을 주문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고, 하루 중 유일하게 생기가 있는 시간이 쌓여 있는 택배를 풀 때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토마시가 여러 여성을 만나며 생기를 느꼈던 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성 편력을 통해 키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토마시였으며, 테레사에 대한 진실된 사랑을 가지고 있고 추후에 이를 깨닫지만 작품 전반에서 매번 새로운 여성을 만나며 욕망을 배설하는 그의 모습은 작품 속에서 언급한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가 똥 때문에 사망한 사건처럼 키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파시즘에 저항하다 사망한 신의 아들’이라고 소련에서 야코프의 사망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처럼 ‘존재의 가벼움에 고뇌하다 어쩔 수 없이 여성을 만남’이라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말하겠지만, 이는 욕망의 배설로 키치로 가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토마시의 행동이 결국은 키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설 활동이라 느끼면서도 나 또한 ‘육아의 어려움을 인터넷 쇼핑으로 풀며, 이는 정당함’이라고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키치를 보이고 있다. 내게도 키치를 넘어 아이를 향한 완전한 사람으로 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부제2. 그래야만 한다 : 이념을 넘어 의미로 


토마시는 작품 내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를 빗대어 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감시와 신문을 받고, 결국을 이를 피해 유리창 청소부가 된다. 작품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체제에 대해 느끼는 허무함이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많은 지식인 청년들이 허무주의에 빠졌던 것처럼 토마시를 여성 편력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세기에 전쟁, 이념 갈등 등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고 고통받았다. 21세기 남북정상회담, 전쟁의 종결 등 이념이 종결되는 듯 해 보였으나,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 등을 보며 잊고 있었던 이념의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느낀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어도 그들이 겪을 상처와 아픔에 대해 생각한다. 해당 지역의 전쟁이 종결되고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바란다. 


전쟁으로 세계가 시끄럽지만,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20세기의 젊은이들을 묶어두었던 이념에서는 자유로워 보이며 분단국가와 이념에 대해 민감하던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더할 수 없이 풍족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요새 젊은이인 나는 종종 삶에 대해 공허함을 느끼며, 이를 쇼핑이나 맛있는 음식 먹기 등의 키치함으로 잊어보려 하며 내 주위 많은 이들이 허망함을 잊으려고 키치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또 다른 등장인물 사비나가 떠오른다. 사비나는 끊임없이 가벼움을 추구한다. 그녀는 자신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닌 키치라고 주장하며, 이념으로 얼룩진 체코를 떠난 이후에도 가벼움을 추구한다. 그녀의 행동은 당시 키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이었지만, 이 책을 읽었던 많은 이들은 그녀의 행동을 모방하며 새로운 키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현상을 볼 때, 이념뿐만이 아니라 개인이 끊임없이 느끼는 존재의 무의미함도 사람을 허무하게 만들며. 키치에서 벗어나고자 해도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겪고있는 소비자본주의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허망함과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며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키치한 물건들을 사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간다. 또는 술, 담배 등을 접하거나 sns등에서 짧은 키치한 영상들을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이념이 떠난 자리에 소비자본주의가 허망함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소비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키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공허함보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가벼움을 추구하지만 결국에 키치를 벗어날 수 없는 토마시와 사비나를 보며 최근에 읽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떠올렸다. 이 책의 작가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학살로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했고 가족들 또한 모두 사망했지만 이로 인해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의미를 찾았으며, 해당 경험을 책으로 서술하여 괴로움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다. 등장인물들이 공허와 가벼움만을 느끼던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다면 토마시는 좀 더 일찍 테레사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며, 사비나 또한 허망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이 가져올 수 있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프레디 머큐리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등장인물들이 오버랩되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프닝곡인 ‘Somebody to love’의 가사가 내 마음을 적신다. 


Got no feel, I got no rhythm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I just keep losing my beat (점점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죠)

I’m okay. I’m alright (그래도 괜찮아요)

I ain’t gonna face no defeat (포기 안 할 테니까요)

I just gotta get out this prison cell (이 감옥을 나와)

Someday I’m gonna be free (언젠가 자유로워지겠죠)


삶이란 감옥에서 자유를 찾고자 했던 책의 등장인물들, 그리고 끊임없이 고뇌를 느꼈을 밀란 쿤데라가 이제는 자신들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가볍게 날아갔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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