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0849

 

지천명, 배우고 익혀 늦게라도 활짝 꽃 피우는 중


조희영

 

올해 초 30년쯤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게 되어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두 아들을 키우던 시절에도 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이었다. ‘필사’를 하게 된 것이 삼천포 도서관의 2023년 독서 행사에 참여하면서였다. 필사의 느낌이 궁금했고, 대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주최 측에서 준 공책 52쪽을 ‘내가 꾸준히 그 공간을 채워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필사할 책을 고민하던 중 ‘좋은 생각’에 인용되었던 ‘오십에 읽는 논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공자와 제자와의 문답과 50이 넘은 책 저자의 개인적인 느낌이 내 삶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게 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30년의 결혼생활을 동안 무난하게 지내게 해준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을 지탱해 준 것은 어린 시절 친정엄마의 배움에 대한 사랑, 어른이 되었을 때는 남편의 베푸는 마음, 그리고 나 스스로 작은 것이라도 달팽이처럼 꾸준히 하면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믿음이었다. 이 책 속에는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귀한 문구들이 많아 내 마음이 더 든든해지고 깊어졌다.


마음 문장 1. 호학정신을 가졌던 엄마 모습을 닮아가자.

          子曰 十室之邑 必有 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 십실지읍 필유 충신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공자께서

“열 집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의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41세에 넷째딸인 나를 낳았다. 50대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60세 홀어머니께서 막내딸인 저를 대학에 보냈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돌아가셨지만 나의 엄마는 존경스럽다. 내가 여러 갱년기 증상을 겪으면서 문득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찡하게 마음이 아렸다. 내가 50이 훌쩍 넘어 가보니, 혼자 자식을 키우면서 많이 고단했을 엄마 심정을 생각하니, 그 시절 철없는 행동에 참 미안했고 키워 주셔서 많이 감사했다. 1940년대 그 시절 외삼촌은 대학을 보냈지만, 엄마는 다니고 싶었던 학교를 딸이라는 이유로 가지 못하고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친정엄마는 외할아버지 생각과 달리 ‘딸이라도 배워야 한다.’고 늘 말했다. 엄마의 호학정신(好學)과 같은 그 고집 덕분에 나도 대학을 갔다. 나도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공자의 배움을 좋아하는 모습과 친정엄마의 딸도 배워야 한다는 그 마음 덕분에 나도 나이 듦에도 계속 배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마음 문장 2. ‘근자열, 원자래’의 마음으로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고마움이다.

         葉公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 (섭공문정 자왈 근자열 원자래)

        섭공께서 정치에 관해 물었을 때 공자께서 말하셨다. 

“이웃 백성은 은혜에 감복하여 기뻐하고, 먼 곳의 백성들도 그 소문을 듣고 흠모하여 찾아온다.” 즉,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우리 부부는 올해 결혼 30주년이 되었다. 얼마 전, 남편이 내 생일에 유해준의 노래 ‘고맙습니다’를 보내주었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외풍도 심했던 날들, 가끔은 힘에 겨워서 다 포기할까 생각해봤소. ... 어느덧 비구름 지고 햇살이 좋은 날이오’ 이 부분이 참 공감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해 주는 부분이라 나도 가슴이 찡했습니다. 남편은 항상 주변의 사람을 먼저 챙기고 나에게 이득이 없어도 맘 쓰이는 사람에게 정을 퍼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남편이 나의 인생 파트너라서 참 고맙다. 베푸는 그 마음이 나에게도 스며들어 막내인 내가 장남인 남편에게 그 마음을 배운다. 남편은 내향적이며 신중한 편이고, 나는 외향적이고 다소 경솔한 편이다. 그래도 나의 톡톡 튀는 색깔을 인정해 주고 있어 그 또한 고마운 마음입니다.

  

마음 문장 3. 좋은 습관을 반복하여 인생 후반을 재미나게 지내자.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자왈 성상근야 습상원야) 공자께서

        “본성은 비슷하나 익히는 것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 

  무엇을 익히고 반복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의미이다. 런던대학에서 2009년에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몸이 새로운 습관에 적응해서 자동으로 실천하는데 평균 66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의 습관들을 살펴보면, 육체적 건강을 위해 시작한 ‘수영 강습’은 3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를 차분히 시작하기 위해 시작한 ‘15분 아침 산책’은 3년쯤 되었다. 7년전부터 매일하는 ‘15분 피아노 연습’도 손가락 근육과 뇌 활동에 은근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20분 저녁 필사활동’은 이제 2개월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습관은 호흡을 차분하게 해주어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영, 산책, 피아노, 좋은 문장 필사하기는 소확행이다. 이 소소한 습관이  하루 아침에 나에게 특별한 기적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을 하루에 15분씩 해 나가는 것이, 내 몸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이 얼굴빛이 맑고 환하다고 한다. 이 소박한 습관은 나의 후반 인생을 재미나게 할 꾸러미들이다.

지금까지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아닌 ‘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지난 25년을 싫어하는 일 위해 살았다면, 다가오는 25년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재밌게 살아야 합니다.  - 머리말 중에서


  읽으면서 이 부분은 참 뭉클하고 눈물이 확! 쏟아졌던 대목이었다. 이제는 나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못다 핀 꽃이 아니라, 활짝 핀 꽃처럼 살아보고 싶다. 피아노 연습하여 2개월에 1곡씩 블로그에 올리기, 월 1회 장애인센터에 급식 봉사하기, 수영 배워서 휴가 갈때 자유형 해보기 등 달팽이처럼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엄마 모습을 지켜보는 두 아들도 응원의 박수를 쳐 주고 있어 힘이 난다.


 흰 구름이 떠 있는 파란 가을하늘을 마음껏 쳐다보고 있다. 이 쾌청한 공기를 준 자연에도 참 감사한 아침이다. 좋은 습관을 가지고 배우고 익히면서 살자. 나도 남편처럼 다른 이들에게 베풀면서 살자. 이것이 논어에서 말한 진짜 군자다운 행복이 아닐까 한다. 

 가장 먼저, ‘목적이 있는 삶’이라는 원칙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비추어본다. 나에게는 스스로 정한 인생의 원칙이 있었던가. 보존하고 싶은 목적과 목표, 나 자신을 경계할 수 있는 굳건한 뜻이 있었는가 돌아보니 결국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온다. 최근 읽었던 책에서 ‘보다 포괄적이고 통합된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고 깊이 공감한 적이 있었는데, 스스로 정한 인생의 원칙이 통합된 정체성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지금까지는 주어진 역할이나 직무에 따라 정체성을 고민하고 각각의 정체성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아왔던 게 고작이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정한 인생의 원칙으로 통합된 정체성을 만들어갈 시기임을 논어를 통해 지지받는 것 같다. 

 ‘바르게 사는 삶’이라는 원칙으로 나를 비추는 과정은 ‘바르다’의 의미를 헤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깨닫는 과정이었다. 저자는 논어를 통해 진정한 강함이란 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잘못은 대개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서 유발되는 것인데, 이런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이 바로 자신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해석에 공감했고 ‘지금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글귀에 한참 머물렀다. 오만과 아집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방법을 한 줄 글귀로 표현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공자는 인자(仁者)의 삶을 바탕으로 하되, 지자(知者)의 방식을 취하라고 말씀하셨다. 

인자가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며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자는 책과 배움을 가까이하여 지식이나 지혜가 많은 사람을 뜻한다. 지자와 인자에 단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지자보다는 인자가 더 성숙한 단계로 평가받는 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해석에 덕(德)이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의 어려움을  

이해했다. 바르게 사는 삶이란 지혜와 사랑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니 그 뜻이 조금은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품어야 하는 삶의 원칙은 ‘함께 사는 삶’이다. 저자는 함께 사는 세상의 법칙은 조금 달라야 한다며 공자의 ‘공리공욕’을 말한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을 때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무너진 공동체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를 뼈저리게 겪어왔던 터라 긴 설명 없이도 이해되었다. 논어는 여심(如心)이라는 단어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심이란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너와 나의 마음이 같게 여겨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역지사지’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궁극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니 바르게 사는 삶이 곧 함께 사는 삶임을 말해주는 것도 같다.


 내면의 바탕이 외면의 꾸밈을 이기면 촌스럽고, 외면의 꾸밈이 내면의 바탕을 이기면 번지레하다고 했다. 촌스럽지도, 번지레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오십에 읽는 논어』를 통해 제시되었으니 진심으로 큰 축복이라 여겨졌다. 아직은 일상에 치여 나 자신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외부 조건에 대한 불평 대신 내가 정한 삶의 원칙에 집중하려 한다.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다 고민에 쌓여 불면에 시달리는 번뇌의 과정을 마감하고 나만의 덕(德)을 가꾸다 보면 보다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번뇌의 시간이 학습과 실천을 위한 몰입의 시간으로 변화한다면 수년간 나를 괴롭혔던 불면도 사라질 것이라 확신하니 자신감이 솟는다. 잘 자고, 하루를 잘 살고, 인생을 잘 살아낼 것 같은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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