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0848

 

알에서 나오려면

-데미안을 읽고-


김태현

 

 두 세계가 존재한다. 싱클레어는 하나의 세계는 부드럽고 친절한 이야기, 깨끗이 씻은 손과 옷가지, 좋은 습관이 여기 속하고, 다른 하나의 세계는 끔찍한 것, 유혹적인 것, 무시무시한 것, 수수께끼 같은 온갖 것이 있다고 표현했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에 속하는 아이였다. 그런 싱클레어의 인생에 프란츠 크로머가 나타났다. 프란츠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약점을 잡고 돈을 요구하며 괴롭혔다. 싱클레어는 밤마다 악몽을 꿀 정도로 프란츠 크로머한테 붙잡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미안이 나타났다.

 막스 데미안은 라틴어 학교에 들어온 새로운 학생이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특이한 학생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데미안은 누구에게도 소년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어린 사내아이들 사이에서 돌아다닐 때 그는 어른처럼, 아니 신사처럼 성숙해 보였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 덕분에 프란츠 크로머한테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그 무엇도 영원히 ‘금지된’ 것은 없어. 바뀔 수 있는 거지.”


 데미안은 작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에게 금지된 것을 알아야 한다고. 너무 편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재판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금지된 그대로를 따른다고. 다른 이들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계율을 느끼는데 그러면 모든 명망 있는 사람이 매일 행하는 일들이 그에게는 금지되기도 하고, 또 보통은 엄금되어 있는 다른 일들이 허용되기도 한다고.

 데미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나는 언제나 나만의 기준을 갖고 있다. 그 기준에 따라서 내가 할 일을 정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정한다. 흔히 나는 이를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데 부모님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신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나의 기준’에 따라 내가 일을 행하지 않을 때 아빠가 ‘게으르다’고 정의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아마 앞으로도—아빠의 이런 논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는 것이 오히려 시간 낭비인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어째서 게으른 것일 수 있을까? 나는 내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쓰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 기준의 이름이 뭔지는 나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이 기준에 의해 인생을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동들은 이 기준이 허락을 했기에 벌어진다. 그런데 부모님이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내 정체성이 흔들렸다. 그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물지 않은 상처를 후비는 것처럼 아픈 일이다.


 싱클레어한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데미안만이 아니다. 피스토리우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인물은 싱클레어와 함께 아프락사스라는 이름을 부여한 새로운 신앙을 믿는다.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피스토리우스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에도 공감을 했는데 내가 직접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한테서 지금의 나나 내가 벗어던진 과거의 나와 비슷한 모습이 보일 때면 막을 세도 없이 내 깊은 곳에서부터 미움이 올라왔다. 분명 그 친구는 아무런 잘 못도 하지 않았고, 나 자신의 문제인 걸 알면서도 미움의 화살은 언제나 친구를 향했다. 엄마는 이런 내 말을 듣고 너는 그 친구한테서 네 모습이 보여서 싫은 거니 그 친구를 싫어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마음은 자꾸 합쳐지려고 했다. 그 시기를 벗어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친구가 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그 닮음이라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착한 것이었다. 나는 나의 순진함, 배려심, 믿음 같은 것들을 증오한다. 그것들 때문에 나는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한테 엿보이는 상처는 내 상처와 닮아 있었고, 나는 간신히 벗어난 내 과거의 그늘에 잠식당하려고 했다. 그러니 그 친구가 미웠던 것은 내 과거한테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야만 해. 너는 어쩌면 다시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크로머나 다른 어떤 것에 맞서기 위해서 말이지.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나는 이젠 그냥 말이나 기차를 타고 오진 않을 거야. 너는 네 안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럼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싱클레어와 헤어지기 전에 데미안이 한 말이다. 처음에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데미안과 만나면서 싱클레어는 점점 변해갔고, 마침내 데미안이 떠나감으로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되었다.

 솔직히 아직도 데미안이 싱클레어가 만들어낸 인물인지 별개의 인물인지 잘 모르겠다. 데미안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별개의 인물이 확실한 거 같지만 데미안은 꿈 속 인물처럼 현실적이지 않았다. 데미안은 마치 도달해야 하는 ‘이상’처럼 너무나 완벽한 인물이었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데미안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마지막에 데미안이 떠남으로써 싱클레어가 완전히 알을 깨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데미안은 여전히 독자에게 홀로 알을 깨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날 감싸고 있던 껍질이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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