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가난은 너희 잘못이 아니야
- <가난한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김경대
나는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났다. 육 형제의 막내로 서럽고 힘든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 도서관에서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제목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지나 저자는 왜 하필 가난한 아이들이 궁금했을까?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또 이 제목을 보고 어느 누가 가슴이 저릿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나같이 어린 시절 내내 소외되었던 아이일 경우에 말이다.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목차를 보니 인터뷰한 아이들의 이름이 보였다. 한 쳅터씩 읽어 내려가는데 잔뜩 움츠렸던 몸이 풀어졌다. 저자가 만난 8명의 아이는 빈곤층에서도 다행히 희망의 증거가 된 아이들이었다. 저자는 복지학 공부를 하면서 지역아동센터 사람을 만났고 그 센터에 있는 아이들을 참여관찰의 목적으로 만났다. 그중 잘 자란 아이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만들어져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아이들을 긴 시간 동안 만나오면서 겪었던 과정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특히 ‘가난을 극복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에 대한 탐구를 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아이들을 만나면서 한 아이 한 아이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진정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편견적인 시선이 아니라 그들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큰 어른의 마음이어서 도중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알코올중독과 폭력에 허덕이기도 하고, 가족의 돌봄이 부실한데도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내면이 강한 아이들도 있었다. 목표없이 부유하며 떠돌던 삶에서 하나의 목적을 갖고 천천히 걷는 아이들. 아이들이 힘든 청소년기를 통해서 방황할 때 이들에게 나타난 건 사회복지의 빛과 관심 있는 돌봄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지렛대는 인간관계”라며 “사람들의 기대에 호응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사회의 기본을 지켜주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든다”고 했다. 나는 작가가 한 말을 읽으며 연대의 관계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미성숙한 한 인간이 지렛대로 지탱할 수 있는 한 사람의 구원, 그 딱 한 사람의 구원만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그 말에 가슴이 뛰었다. 그 이야기는 바로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일이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우리 집이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친척 집으로 흩어졌다. 대구에 있는 친할머니 집에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늘 변방에 머물러 눈치만 보는 아이였고 사춘기 이후로 거의 말수도 줄었다. 교복조차도 제대로 살 수 없었고 도시락은커녕 밥을 굶는 시간이 많았다. 점심시간 때 하릴없이 학교 식수대에서 어슬렁거리던 나는 그날도 배가 고파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고 입을 닦는데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물건을 훔친 아이처럼 얼굴이 발개졌다. 그 낯선 분은 우리 반에 배정된 국어를 담당하는 교생선생님이었다. 이상하게 수돗가에서 그 교생선생님이랑 자주 마주쳤다. 어느 날 집에 오는데 선생님이 자꾸 내 뒤를 따라 오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선생님의 집이 바로 우리 옆집이었다.
사춘기가 오면서 조용했던 내 성격도 삐딱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화가 났고, 분노가 일었다. 가슴에 온통 원망으로 들끓었다. 학교에 가면 어깨에 힘을 주고 괜히 소리도 크게 질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초라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이들과 걸핏하면 싸움질했다. 몰려다니면 더 힘이 세지고 더 이상 내 삶이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단칸방에 숨어 살던 내가 싫어 나는 밖으로 활개를 치고 다녔다. 하지만 어김없이 집에 돌아오면 내 한 몸도 누울 수 없는 단칸방에서 나는 겨우 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생선생님이 학교 가는데 불쑥 도시락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참고서를 어디서 구해 와서 내게 주었다. 당연히 참고서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수업 전에 언제나 시를 외우게 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도 외우고 그때부터 유치환, 박인환이란 낯선 이름도 알게 되었다. 시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판타지의 세계였다. 별 헤는 밤이 내 가슴속에 들어와 별똥별이 되어 툭 떨어졌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아무 저항 없이 별을 가슴에 품었다. 시는 짧은 글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해석은 어려웠지만 시를 읽을 때만큼은 마음이 헐렁하게 느껴졌다. 시를 읽으면 배도 고프지 않았고 나 자신이 초라해지지도 않았다. 뭔가 내 삶이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냉기 가득한 가슴이 그때부터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했다. 시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상대를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이 발동하기 시작한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집에 오던 그날도 선생님이 쇼핑백을 내밀었다. 열어보니 헤르만 헷세, 톨스토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런 알지도 못하는 외국 작가의 책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시에 눈 뜬 이유로 이런 책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나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았다. 시를 통해, 고전을 통해 헤매는 나에게 방향을 제시했다. 제멋대로 뻗어 간 가지를 쳐내서 햇빛을 향해 곧게 뻗어 나갈 수 있었던 옹이가 많았던 나무, 그 나무는 바로 나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때 그 정원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 있는 아이들은 분명 달랐다.
책 속에 소희라는 아이가 나온다. 소희는 스스로 힘든 상태에서 대학입시와 자격증의 높은 관문을 뚫은 친구다. 그 이유를 보자면 소희에게는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 도움을 준 친구가 있었고, 대학 입학을 물심양면 도와준 사회복지사와 복지관도 있었다. 즉, 자신을 믿고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들, 사회적 관계망이 있었다. 사람이 힘을 내고 노력하는 데는 혼자만의 결심과 성취 욕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희는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건강한 정신력을 가진 아이였고, 스스로 빈곤을 넘어서고자 노력했다.
여기 또 영성의 경우를 보자. 영성은 처음부터 바르고 성실한 아이였다. 칠판을 지우고 정리하는 아이라고 보면 아이 주변은 얼마나 반듯한지 느껴진다. 영성의 환경은 어머니는 사이버 종교에 빠져있고,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자로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영성은 학교 다니면서 주말 야간에 편의점, 당구장 알바를 다니며 자신의 생활을 치열하게 꾸려나간다. 영성의 꿈은 좋은 아빠가 되는 거다. 해체 가정에서 도저히 꿈꿀 수 없는 일이다. 영성이 이렇게 가정을 지키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성의 삶의 목표는 자신의 가정을 만드는 거였다. 주위가 아무리 흔들려도 자신의 중심이 단단하게 서 있던 아이. 영성은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작가가 가장 많이 만났던 지현이 또한 힘든 환경에서 대학 입학에 성공한 사례다. 작가는 지현을 보면서 지역 아동 센터의 공부 방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이야기한다. 지현은 자신이 원하는 영역을 정확히 선택할 줄 알고, 타고난 강인한 성격과 긍정적인 성격은 자신의 환경따윈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난 성공된 사례가 많다. 저자는 그런점에서 아이들에게 공통으로 느껴지는 ‘성찰하는 힘’에 주목한다. 성찰하는 힘은 짧은 기간에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 좌절, 고통, 성취, 단계를 거쳐 쌓아가는 내면의 힘이라 한다. 저자가 가장 안타까워했던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외적 지식(학력)이나 외형적 모습(재산, 직장 등)에만 매달릴 뿐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가난한 아이들, 아니 모든 아이가 자라는데 다양한 경험과 교육적 자극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학교나 공공도서관 같은 공공 영역의 할 일도 많다.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사회적 영역이 더 넓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관심의 손길이 아이들에겐 열등감과 위축감 없이 성장할 수 있다. 가난한 아이를 구제하는 핵심은 가난을 자신의 죄로 여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출발점이다. 가난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독립적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뭘까?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이다.
난 가난을 절망하고 부모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다가 청소년기에 교생선생님을 만나서 내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다. 그때 그 계기로 나도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퇴직한 상태이지만 나는 내가 그러했기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도왔고, 사회관계망에 다리 역할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이 있다. 청소년기에 느끼는 결핍은 생애을 통틀어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나 역시 그랬듯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무척 애를 썼다. 나는 이 책이 널리 널리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사회가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빈곤에 대한 인식변화를 사회적 관계망에 호소하고, 다 같이 고민하며 돌보는 사회에 앞장서야 한다. 세상은 이제 많이 달라졌다. 더 큰 관심으로 작가가 제시한 질문에 우리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한다.
Chapter
- 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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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중고등부) - 금소현 /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고
- 대상(초등부) - 송하름 /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은주 / <퀸의 대각선> 읽고
- 금상(일반부) - 허만규 / <쇼펜하우어 철학 다시 인생을 말하다>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정은우 / <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제설하 / <이방인>을 읽고
- 금상(초등부) - 김서경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금상(초등부) - 박한결 / <프린들 주세요>를 읽고
- 은상(일반부) - 김경대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은상(일반부) - 박경옥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진목 /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김경빈 / <소리를 삼킨 소년>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성준우 /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최효준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은상(초등부) - 강윤주 /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송윤재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조이서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영희 /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옥현 /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배병구 /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임문호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동상(일반부) - 황은주 / <완장>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배정윤 / <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안서현 /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안형준 / <구덩이>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이로은 / <남과 달라도 괜찮아>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조희경 / <죽이고 싶은 아이>를 읽고
- 동상(초등부) - 김현진 / <어린이 삼국지>를 읽고
- 동상(초등부) - 박진슬 / <아무거나 문방구>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이슬비 / <이순신은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을까>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이혜원 / <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정세나 / <왕자와 거지>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