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가난과 무관심과 편견 속에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 <가난한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박경옥
한국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여겨지며, 또한 이뤄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것을 꼽는다면 평등한 교육조건이 들어갈 것이다. 교육에서만큼은 차등 없이 철저하게 동등한 대우와 조건을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 속에서 한국 교육은 학교 교실 안에서는 모든 학생이 똑같은 조건이라고 여겨지고는 한다. 한국에서는 돈이 없는 집안의 학생도 돈 많은 학생들과 같은 교실 안에서는 같은 조건으로 공부하고 평가받는다는 믿음. 동시에 같은 조건의 같은 교실 안에서는 아무리 집안이 가난해도 학생이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 가난한 학생도 이른바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등 얼마든지 미래가 잘 풀릴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면 마치 그에 비례하듯이 성적이 올라가기 마련이라는 믿음이 여기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저 믿음 속에서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잘 못한다는 말은 어느새 변명이나 핑계처럼 치부되기 일쑤이다. 가난한 집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좋은 학교를 거쳐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등 잘 풀린 사례를 들고 와서, 한국에서는 노력만 하면 누구나 저런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니, 저것보다 어두운 미래를 맞이했다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인식되고는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이분법처럼 마냥 모든 것이 단순하기만 할까? 한국 교육환경에서는 가난한 학생도 본인이 열심히 공부만 하면 얼마든지 이른바 괜찮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걸까?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바로 그 점을 심층 관찰하듯이 면밀하게 지켜보는 책이다. 이 책은 언뜻 보면 가난한 집안의 청소년 여덟 명의 인터뷰 및 개인 사례를 마치 옴니버스 구성처럼 모으기만 것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덟 명의 이야기를 한 편씩 읽다 보면 어느새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여덟 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파편적으로 합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학창시절을 보내는 청소년이 겪을 법한 여러 유형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난한 환경이란 조건의 어떤 부분이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지, 그 부분까지 정밀하고 세세하게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부제인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은 청소년과 가난이라는 테마를 긴밀하게 연계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더없이 잘 담아내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학생. 이 단어의 조합에서는 대개 두 가지 학생상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첫 번째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는 학생이다. 한국은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을 여러 면에서 보호하면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제공한다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에서 저런 학생상은 더욱 강화된다.
두 번째는 첫 번째 학생상의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이다. 그런 학생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학생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경우가 많다는 식의 편견이 생기게 되는 사례쯤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마치 한국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인데, 오로지 본인이 노력을 안 해서 그런 미래를 맞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저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가난한 청소년들의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편견 그 자체인 저 이분법 이외의 사례가 있다는 것조차 무관심하게 간과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여러 이야기를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는커녕 식모살이를 해야 했던 어머니와 함께 성장기를 내내 우울한 환경에서 보내야 했고, 우울증으로 청소년 시절 학교를 그만둔 뒤 나중에 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이른바 대학생활에 안착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지만 불안한 우울에서는 결코 벗어나지 못한 소희.
마음껏 공부만 하고 있었지만 대학에 입학한 순간부터 돈을 벌어야 해서 공부할 시간조차 내기 힘들었고, 그 때문에 대학교 성적에서부터 이른바 또래와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영성.
가난하지만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며 가난해서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활용하며 쭉 밝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가난한 청소년에게는 때로는 그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겪어야 했던 지현.
변변한 정보 없이 막연하게 선택한 대학교 전공이 운 좋게 적성에 맞고 발전적인 미래로 이어졌지만, 그 전에는 청소년 시절 내내 겉으로는 얌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기력하게 넋 놓는 일상을 보내야 했던 연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중에서는 괜찮은 일자리를 얻었지만, 잠시라도 수입이 끊기면 안 될 가계 상황이어서 더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과 돈을 마련할 여유조차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출발자리에서 미래가 통째로 멈출 뻔했던 수정.
청소년시절 항상 싸움 소리만 들리는 집을 벗어나 자기와 어울려주는 친구들과 같이 지내다가 이른바 비행청소년으로 불릴 행동까지 하게 됐고, 어른이 된 후 그 시절을 반성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현성.
식당에서 일하면서 아무리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손님에게도 좋은 평을 들어도, 청소년이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편견의 대상이 되고 미래에 할 수 있을 일도 한계가 생기는 상황을 겪는 우빈.
청소년을 보호하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 자체를 두렵게 여기게 되어버리고, 어느새 좁은 인간관계에 스스로 갇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피하게 되고, 자기 인생을 그 좁은 테두리 안에 묶을 뻔했던 혜주.
이 여덟 명의 이야기는 한국 학교에서는 가난한 청소년도 마음껏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는 믿음의 반대 사례이자, 한국에서 가난한 청소년이 얼마든지 겪을 수 있을 여러 어려움을 다양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난한 청소년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마음껏 평온하게 공부하는 것조차 바라기 힘든 사치일 때가 종종 있다는 것.
그 와중에 가난한 청소년이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도 높다는 점 역시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모든 것에서 보호하지는 못해도 많은 것을 보호할 수는 있는 곳이다. 그런데 가난한 학생이 성년 나이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보호를 더 이상 받지 못하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보호막조차 없이 방치되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가난한 학생도 열심히 공부만 하면 한국에서는 성적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현실에 맞닥뜨리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서 소개된 여러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절망적인 것도 결코 아니다.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씩이나마 덜 나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개선은 상황을 세세하고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파악한 내용을 바탕으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조금씩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그런 통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수긍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통념과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간과하지도 무시하지도 않고 그런 현실이 있다는 것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될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가난한 청소년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우면 될지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난한 학생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그 상태 그대로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면서 더 이상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사태가 계속 일어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더욱 좋은 환경, 적어도 덜 나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학생들이 더 이상 나오지는 않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바로 그 첫걸음을 디딜 수 있도록 상세하게 안내하며, 어째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를 다각도로 깊이 있게 분석하여 보여주면서, 그런 현실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Chapter
- 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김채린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대상(중고등부) - 금소현 /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고
- 대상(초등부) - 송하름 /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은주 / <퀸의 대각선> 읽고
- 금상(일반부) - 허만규 / <쇼펜하우어 철학 다시 인생을 말하다>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정은우 / <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제설하 / <이방인>을 읽고
- 금상(초등부) - 김서경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금상(초등부) - 박한결 / <프린들 주세요>를 읽고
- 은상(일반부) - 김경대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은상(일반부) - 박경옥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진목 /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김경빈 / <소리를 삼킨 소년>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성준우 /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최효준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은상(초등부) - 강윤주 /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송윤재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조이서 /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영희 /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옥현 /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배병구 /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를 읽고
- 동상(일반부) - 임문호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동상(일반부) - 황은주 / <완장>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배정윤 / <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안서현 /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안형준 / <구덩이>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이로은 / <남과 달라도 괜찮아>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조희경 / <죽이고 싶은 아이>를 읽고
- 동상(초등부) - 김현진 / <어린이 삼국지>를 읽고
- 동상(초등부) - 박진슬 / <아무거나 문방구>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이슬비 / <이순신은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을까>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이혜원 / <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정세나 / <왕자와 거지>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