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영광독서 감상문
돌아보라, 걸어온 길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를 읽고
부산 남구 문현1동 정지홍
또 다시라는 반복감에 견딜 수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달리할 수 없는 선택,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되짚어 볼 여유도 없이 쫓기듯 분주한 나의 삶이 두렵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쏟아 부은지 언제던가? 게으름을 노동으로 인한 피곤함으로 합당화 시키고 변명하는데 익숙해지다보니 휴식처럼 달콤하던 추억으로 가는 길을 잊고 산거 같다.
겨우 백 년도 안 되는 인생을 살면서 목숨 걸고 매달리 일이 무엇이 그렇게 많던지,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기기 위함인가?
문득 외로움이 밀려왔다. 한 번도 뒤돌아보며 사는 것에 감동해 본적이 없었지만 예고 없는 그리움의 기억들이 가물거리며 스치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미소와 눈빛, 흡사 나를 지탱해 주던 옛 스승의 손길처럼 따뜻한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나본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 아버지의 실업과 그로 인해 이어진 가난, 그 안에서 고통스런 삶의 정체와 모순가득한 사회구조의 위기감은 사춘기 소년 모리에게 침묵을 안겨주었다. 사람 속에 내재된 본성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관대함을 모아 놓은 눈빛과 넘치는 미소, 모리 교수의 사람을 당기는 편안함 뒤에 숨겨진 과거에는 그만의 어두운 선택이 있었음을 발견하다.
모리 교수에게 스승이라는 이름이 있었을까? 위대한 이름의 스승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그를 자극하였을까? 작고 여린 모습의 모리를 채찍질하며 사회학에 뜨거운 열정을 쏟아낼 수 있었던 건 침묵 안에 감춰 두었던 자신이 만들어 놓은 반전의 음모는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말년에 찾아든 불치병, 루게릭은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평범하지 않은 운명을 맞이한다.
지극히 평범하기에 생활 속에서 고뇌하며 미래의 행복을 꿈꾸는 삼십대 후반의 남자. 미치, 걸림 없이 질주할 것 같던 대로에서 삐걱거리는 사회현상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춰 섰다. 앞만 보며살았기에 뒤돌아본다는 건 죄악의 일부쯤으로 생각했다. 그 즈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것을 꿈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저 기억 한 켠에 묻어 두었던 이름 모리 교수와의 재회…….
떨어지는 해를 벗 삼아 어둠이 찾아오는 때를 차분히 기다리는 모리 교수의 인생 앞에 미치의 방문은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순간이었다. 오랜 세월을 방치해 두었던 어릴 적 해묵은 일기장에도 정겨움이 묻어나듯 하물며 나를 이끌어 던 지극한 스승과의 재회는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죽음 앞에 서 있는 스승, 노련한 경험과 절제된 자아의식으로 무장한 그에게도 그러나 긴장과 초조로 무력해지는 감정만은 다 막을 수 없는 것, 미치를 아프게 하는 건 자신을 용서하는 스승의 눈물어린 미소였다. 미치에게 노교수 모리는 대학시절 그를 이끌어준 진정한 스승이셨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를 스승과 함께 하면서 친구이상의 더 깊은 우정을 나누지 않았던가? 미치가 접어둔 시간만큼 모리 교수는 미치의 가슴속에서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음이었다. 삶의 한 가운데 항상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자유로운 숨쉬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 사람 앞에서 나는 관대함을 이해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육신에 흐르는 눈물을 어루만지며, 그리고 남는 자에게 묻혀 있던 웃음을 일깨워 주는 모리를 기억한다.
미치의 순탄치 않은 인생 항로에서 결국 순탄함이 주는 미래와의 약속이 보장된 행복만은 아니라는 의미를 심는다. 때로는 돌아보면서 내 삶의 한 켠을 누군가가 지켜주고 있었음에, 그 따뜻함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정해진 대로 수 년 후엔 죽음의 시간을 맞지만 모르는 척 바쁜 하루를 산다. 단 한번 어스름한 저녁 무렵 마지막까지 발하는 태양의 힘겨운 몸짓에 귀 기울여 본다면…….
언제가 아버지와 나누던 비밀 얘기처럼 내 자식에게도 전해 줄 속삭임을 가득 품은 모리 교수의 메시지가 오늘 밤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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