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565

   

다시, 저녁을 배우며 

-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를 읽고

 


박옥현


통장님께, 

가을 색을 닮은 커피 마시기 좋은 오후입니다. 커피는 한잔하셨는지요. 저는 찻잔에 녹차 한 팩을 넣어 놓았습니다. 

해운대 달맞이 언덕 중턱에, ‘커피가 있는 오후’라는 찻집이 있지요. 거기서 차를 마시며, 젊은 날, 모두 어리고 늦된 존재였으며, 저녁을 ‘허기로 견디던(<떨기나무 덤불이 있다면>, 이하, 나희덕)’, 그 ’한 시절‘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허기가 아니었다면, 한 눈빛이 어떤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으며, 한 손이 다른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떨기나무 덤불이 있다면>)‘요. 이처럼 추억 온도가 높아 갓 내린 어둠이 진해지는 날, 그 찻집에 가서 예감의 저녁을 느껴 보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통장님, 우리 동(洞)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통장 회의 시작 전, 한 분씩 돌아가며 ’시낭송‘을 하는데, 그 시간을 통장연합회 회장인 제가 주도하지요. ’문화 도시‘를 가꾸는 일에 동참하자는 뜻도 있지만, 일선에서 주민을 상대로 ’감성 행정‘을 펼쳐 보자는 뜻도 숨어 있답니다. 

그런데, 시 낭송을 시작한 지 7개월째인 지난달 통장 회의 때, 시 낭송을 하지 말자며, 5분여의 낭송 시간을 귀찮아하는 몇 분의 통장님을 보고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이어 전체가 찬성하는 분위기에 당황한 저는, “한 달에 시 한 편도 읽지 않고 사실거냐?”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었지요.


통장님, 의식주가 해결된 지금 사람들은 왜 마음의 허기를 더 느낄까요? 압축성장으로 인한 물질만능주의를 감당할 정신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탓에, 우리 사회는 점점 ’생떼 쓰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뉴스가 하도 많아서, 시 한 편 읽을 시간이 없(유자효)‘다지만,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전 국민의 시 읽기과 시 쓰기‘를 한다면, 윤기 나는 사회를 만드는데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요? 


통장님, 요즘 시 한 편 읽으세요? 그날 이후로는 안 읽으세요? 저는, 태양이 자오선을 넘어선 지 두어 시간 지난 지금, 최근에 발간한 한국의 대표 시인 ’나희덕‘님이, 초기 시집 여섯 권에서 직접 고른 시편들을 한데 묶은, <그러나 꽃보다 적게 산 나여>를 읽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지나 온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시집이지요. 이런 그의 ’젊은 날의 시선집‘을 읊조리며 다시 ’저녁‘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둠에서 보기‘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살아온 순간을 다시 찾아가, 우리 안에 있는 청춘의 정신과 다시 연결되면 무엇이 재발견될까요? 인생의 심오한 삶의 진실을 한 마디로 쉽게 축약할 수 없지만, 저는 그것을 잠정적으로 ’저녁‘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나희덕의 시에서 ’저녁‘이라는 모티브는 자주 반복되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요. 그에게 저녁은,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해지는 시간(<야생사과>)‘이자,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 가만, 가만, 가만히 /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어두워진다는 것>)‘ 시간입니다. 저녁도 이슥해져야 한 시로의 어둠을 익혀내듯이, 이처럼 고통스러웠던 내 청춘의 윗목들을 견뎌냈기에, 40여 년을 지나, ’오늘의 저녁‘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됩니다. 


통장님, 저는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저릿만 마음이 일렁일 때면 잠시 멈춰야만 했습니다. 한 때, ’한 대야의 물속에 푸른 영혼을 담글(<18그램>)‘ 만큼 컸던 존재감이 이제는 상실했다고 믿었는데, 이 시를 읽는 동안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내 내면을 반영하는 시가 필요할 때나, 감정의 파도가 산처럼 일어났다 무너지곤 했던 젊은 시적의 기억에 압도될 때, 저는 이 시들을 계속해서 다시 읽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 사이를 홀로 헤쳐가야 하는 힘든 여정(旅程)에, 나의 저녁이 혹 느리게 다가올지라도, 변화에 대한 희망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기차를 보낸, 저자 ’나희덕‘ 시인의 덕분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아픔, 열정, 미련이 크레용처럼 진했던 과거를 다시 찾아가 이미 살았던 순간을 다시 살아낼 때만, 그 젊은 시절을 놓아줄 힘을 찾을 수 있으며, ’그 힘‘은 그때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할 것이고, 내밀한 자아를 만나 밤을 거두며 나를 추스르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진리는, 만드는 것이지 발견하는 것이 아니며, 이로써 생을 끊임없이 도약시켜 나가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또래의 60년대생인 저자 나희덕 님이,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 ’한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 때(<뜨거운 돌>)‘였다며, 그때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은 그곳에서 멀리 오지 못했고, ’꽃보다도 적게 살았(<고통에게2>)‘다는 것을 알고는, ’스물다섯의 내가 밀봉되어 있(<다시, 십년 후의 나에게>)‘던 ’젊은 날의 시‘를 다시 소환해 펼쳐 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통장님, 이제 가을입니다. 하늘 가득 적막으로 채웠던 마지막 매미 떼의,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귀뚜라미>)‘요?

저녁을 허기로 견디던 그 ’한 시절‘을 돌아보며, 이 구절에서 ’내 울음‘은, 7, 80년대 명절 연휴만 쉬고 1년 내내 일하며 ’공순이‘라고 얕보임을 당했던, 당시 ’우리 누이‘들의 ’저녁 울음‘일 테지요. 연둣빛 청춘의 때에 그 어둠의 시간을 이겨냈기에, 오늘날 ’겨울을 이길만한 눈동자(<11월>)‘를 가졌으며, 우리가 ’썩어가는 참나무떼‘가 되어도,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 버섯이 피어나(<음지의 꽃>)‘는, 아름다운 ’음지의 꽃‘이 되어,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젊은 시절‘에 보내는 길고 긴 편지 같은, 이 시집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즈음, 부쩍 짧아진 저녁 시간은, 수묵 색깔의 땅거미에 이끌려 한 뼘씩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제 찻잔의 녹차도 제법 우러났네요. 마주 앉았다면 ’짠!‘하고 잔을 부딪치고 싶은데..... 이때 언뜻 부는 한 줄기 건들바람은, 여름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쓰다듬어 줍니다. 이 바람이 소슬바람 되어 가로수 가랑잎들을 ’솨르르‘ 흩어져 내리면, 겨울이 우리 곁으로 오겠지요, 이어 첫눈이 내리면 거리를 걷다 ’커피가 있는 오후‘ 찻집에 갈 것입니다. 그 때 통장님도 오세요. 이제는, 시를 알아보는 맑은 눈을 가졌고, ’사랑하는 것들은 어두워져서야 / 이부자리에 팔과 다리를 섞을 수 있다고 / 모든 아침이 하는 말(<저녁을 위하여>)‘을 알아듣는 감성을 가진 통장님에게, 찻잔 속에 녹아든 설탕만큼이나 감미로운 시어(詩語)로 속살거리며, 가슴으로 달군 40도의 온정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2024. 9. 30.

박옥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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