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557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임문호

 

어른이 어떻게 가난한 아이들을 만드는가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8명과 마주 앉아 그들의 성장기를 들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전 읽었던 책 한 권과 그 책과는 관련 없는 어느 강연을 생각나게 했다. 책은 미국의 연쇄살인범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릴 때 자신을 포함한 형제와 하반신 마비된 아버지를 거실에 모아놓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남자 친구와 성관계하는 모습을 이들에게 상습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여자를 혐오했고 결국 연쇄살인범이 된다. 

 직장의 조회가 끝나고 초청된 강사에게서 들었던 강연은 이랬다. 미국의 어느 교수가 행복하게 사는 많은 사람들을 수년간 찾아다니면서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그 비결이 뭔지 조사했다는 이야기다. 오랜 연구 기간과 놀라울 만큼 많은 표본을 추적해서 조사한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한 사람은 부모가 행복한 사람, 그러니까 행복한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성장해서 행복한 어른이 되는 수순을 밟는다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순한 사실이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책 제목이자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과제는 앞서 이야기한 연쇄살인범과 행복한 사람을 찾은 연구 결과로 결론 지어지는 듯하다. 책에서도 나오듯이 빈곤은‘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해야 한다.’여기서 역량은‘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이다.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나보다도 선진국 문턱에서 태어나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희망 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트라우마의 벽을 넘지 못하는 사실이 놀랍다. 따지고 보면 가난은 불편함을 넘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 정서적 불안을 일으키는 병마와도 같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가난한 가족은 왜 우울한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소희의 삶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지만 여전히 10대 때처럼 우울하고 관계 맺기 어려워한다. 청춘 잔혹기를 보내면서 가족이 최우선임을 알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영성, 겹친 불행에도 슈퍼 긍정의 에너지를 가진 지현, 청춘의 그늘로 우울했지만 가족의 무관심과 방임을 극복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적성을 발견하고 열심인 연우, 빈곤을 뚫고 유치원 교사가 되고도 어머니와의 갈등이 계속되었고 이를 독립함으로써 성숙하게 해결하여 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수정, 현석은 영화‘오아시스’의 홍종두처럼 관심과 돌봄이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해서 사회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범죄에 휘말리는 인물로 기억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보다는 식당 아르바이트가 낫긴 하지만 공부하는 청소년이 아닌 일하는 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시를 느끼고 돈 좀 만지는 사람이 되려는 게 장래 희망인 우빈, 자기 삶에 대한 목표 의식이 부족하고 외부의 시선이 두려워서 끈기 있게 뭔가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혜주는 아동기부터 겪은 결핍감과 그로 인한 관계 집착이 20대에도 계속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내 어린 시절과도 연결고리가 있다.

 초등학교의 봄, 가을 소풍 12번 중 가족이 따라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와야 할 어머니는 나와 6살 터울의 쌍둥이 여동생 핑계를 대었다. 어린 여동생 둘을 봐야 하므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지만 그 내면에는 아버지 혼자 벌어서 형제 다섯 명과 아버지, 어머니까지 일곱 식구가 먹고 살기에 빠듯해서 어머니에게는 변변한 나들이 옷 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설득력 있다. 물론 형제 중에는 이런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잘 사는 축도 있지만 이 책에 깊이 공감하는 나로서는 현재의 삶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때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며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 나까지 포함된 아홉 명의 이야기, 그렇게 보니까 가난의 상속이라는 이미지로 생각나는 책이 있다. 내가 잘못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임대료나 이자같이 스스로 증식해서 얻는 소득이 임금처럼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을 능가하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이론이 나오는 토마 피케티의‘21세기 자본’이다. 노동보다 자본이 돈 버는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이며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300년에 이르는 주요 국가의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했다. 소득의 분배와 그 불평등을 다루는 자료와 부의 분배, 부와 소득의 관계를 다루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고 미진한 부분은 부의 상속 과정이 나오는 소설인 제인 오스틴의‘오만과 편견’과 발자크의‘고리오 영감’까지 인용했다. 현재 상황이 19세기 무렵의,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심각한 비율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상속자본주의가 그때처럼 판친다는 것이며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된다. 누진적 소득세와 유토피아적 발상이긴 하지만 글로벌 자본세 등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그럼 가난한 아이들이 행복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인가?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이들의 공통점을 해결책으로 본다면 그것은‘성찰하는 힘’이다.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를 말한다. 어쩌면 가난이 그들에게 일종의 항원이 되어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의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책에 나오지 않은 수많은 청소년은 이런 예방주사 없이 자포자기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여전히 가정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게 안타깝다. 책 제목을 거꾸로 되짚어‘어른이 어떻게 가난한 아이들을 만드는가’하고 질문한 다음‘성찰하는 힘’이라는 백신을 아이들에게 놔줘야 한다는 사실을 어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견딜 수 있으며 희망이 있다는 항체가 스스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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