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546

   

"스탠리의 구덩이 : 우정과 인권을 생각하다" 

- <구덩이>를 읽고

 


안형준


   구덩이는 루이스 사커의 대표적인 소설로 유명하다. 구덩이의 주인공인 스탠리는 한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감옥에 갈 것인지 아니면 초록호수 캠프에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스탠리는 결국 초록호수 캠프를 선택하게 된다. 초록호수 캠프는 높이 1.5m, 폭 1.5m 정도의 구덩이를 하루도 빠짐없이 파야 하는 곳이다. 스탠리는 초록호수 캠프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초록호수 캠프의 소장인 워커와 조금은 엄한 듯한 미스터 선생님이 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된 스탠리는 다른 아이들 중에서도 제로라는 친구와 가장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 계기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제로에게 글을 쓰는 법과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대신 스탠리의 구덩이를 1시간 동안 파주는 조건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일이 터지게 된다. 제로가 탈주를 하게 된 것이다. 스탠리는 그 순간 생각한다. 제로를 꼭 찾아야 한다고. 제로를 찾기 위해 침수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던 침수차가 오고, 스탠리는 빠르게 침수차를 운전하여 제로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순조로울 줄만 알았던 제로를 찾는 여정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침수차가 구덩이에 빠져 걸으면서 제로를 찾는 상황에 놓인 스탠리이다. 이때부터 책에서는 옛날로 돌아가며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사실 스탠리의 할아버지인 엘리아 할아버지는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마이라. 마이라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이고르라는 사람이 돼지를 주고 결혼할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집시 부인인 마담 제로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매일 새끼 돼지를 산으로 올려가면서 물을 마시게 하면 마이라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조건은 간단하다.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발목이 잘려 올라갈 수 없으니 살아있는 물을 마시게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면 된다고 한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에 걸릴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 엘리아는 귀찮다는 이유로 돼지를 앉고 올라가지 못해 결혼에 실패한다.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던 중 제로니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저주에 걸리고 만다.

  다시 돌아와서 스탠리는 사막을 걷던 중 제로를 발견한다. 제로는 발이 아파서 걸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스탠리에 등에 업혀 언덕을 올라가게 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케이트 바로우라는 사람이 살았었다. 그녀는 선생님이었다. 복숭아 청을 잘 만드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다. 샘이라는 양파 장수와 사랑에 빠져 키스를 하게 되고 그 키스로 인해 샘(흑인)은 사망하고 만다. 그 일로 열이 받은 케이트는 강도가 되어 20년 동안 살다가 워커 부부에게 자신의 재산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다가 도마뱀에게 물려 죽게 된다. 다시 돌아와서 스탠리는 제로를 업고 언덕에 올라 복숭아 청과 양파를 먹고 노래를 불러주게 된다. 그렇게 떠돌다가 결국 초록호수 캠프를 탈출하게 된다. 탈출한 이후에는 아버지의 발 냄새 없애는 방향제 사업도 잘되고 좋은 일만 가득하게 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실 이 책을 나는 두 번 읽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이다. 뭐가 뭔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다시 한번 읽어보니, 옛날의 스탠리와 현재의 스탠리, 옛날의 제로니와 현재의 제로는 서로서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파와 복숭아 청을 왜 먹었는지, 노래는 왜 불렀는지, 언덕은 왜 업고 올라갔는지, 왜 구덩이를 파는 것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면서 이야기의 구성이 이어져 가니 두 번 읽을 이유가 있었던 책이었다는 것을 깨달아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많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분은 아마 인종차별인 것 같다. 인종차별은 날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인종차별은 더욱 더 심한 강도로 나아가고 있는데, 2023년에는 미국에서 단순히 속도 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한 흑인이 과잉 진압을 당하여 중상 이상의 부상을 입었다. 2020년에는 오해로 인해 한 흑인이 과잉 진압을 당해 숨지기까지 했다. 인종차별이란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 그리고 역사와 깊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은 제도적 차별이 있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나 미국 내에서의 인종차별 사건들을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고 복잡한지 알 수 있다. 흑인 차별 외에도 동양인, 즉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또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눈을 쭉 찢는 행위는 대표적인 차별 행위인데, 이걸 유럽 국가에 가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진다. 이 밖에도 인종차별은 정말 숨 쉬듯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장 없어지면 좋겠지만, 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마틴 루서 킹, 간디 등의 인물들이 그 시발점이 되었고, 흑인의 차별을 멈춰 달라는 운동과 다양한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축구 선수인 손흥민도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 손흥민이 이제 막 영국 리그에 입성했을 때, 앞서 이야기한 눈을 쭉 찢는 행위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빈도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다. 박지성 선수의 응원가에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들어가 있다. "너희 나라에선 개고기를 먹지만"이라는 가사가 그것이다. 응원가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지 않는 무례한 표현이다. 또 다른 예시로는 비니시우스라는 선수는 피부가 까맣다는 이유만으로 경기장에서 바나나를 던지고 원숭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우리가 즐겨보는 스포츠에서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또한, 임금 차이도 심각한 문제다. 유럽의 선수들에 비해 아시아 선수들의 임금은 현저히 낮다. 현재 야구계의 신이라고 불리는 오타니 쇼헤이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적게 받고, 손흥민 선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력에 비하면 너무 적게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손흥민 선수나 아시아 선수들이 나오는 영상들을 보면 "만약 어떤 선수가 유럽 사람이었다면 돈을 훨씬 더 잘 벌었을 텐데"라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인종차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또 다른 사회 문제는 아동의 인권과 관련되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씻지도, 마시지도, 그렇다고 음식이 좋은 것도 아닌 환경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초록호수 캠프의 아이들 이야기는 설정이 아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아프리카의 나라들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제대로 잘 곳도 없는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하루종일 일하며 살아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쉬지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하루종일 일하는 것은 아동 인권의 침해는 물론이고 노동권 침해로 볼 수 있다. 너무나 어린 아이들이 당장을 살아가기 위해 뙤약볕에서 일하며 고작 300원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학교를 가야 할 시간에 일터로 나가고 점심 시간에는 굶거나 흙탕물이나 잡초를 뜯어먹으며 학교가 끝나는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점일 수 있는 차별과 인권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와 차별의 "차이" 점을 확실히 구별하고, 나와의 다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잘못된 상식들을 올바르게 고쳐 알린다면 인종차별은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 또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전 세계에 이러한 아동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후원을 하는 것도 아동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권 침해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 인권 침해를 예방할 방법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당연함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잘못된 생각마저 바른 생각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당연함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 당연함이 어떻게 당연해졌는지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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