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우리들
- <아무거나 문방구>를 읽고
박진슬
유독 빗소리가 울려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나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아빠를 따라 서점에 갔다. 아빠가 내 문제집을 고르고 있을 사이, 나는 몰래 빠져나와 옆쪽에 있던 어린이 추천 도서 코너로 갔다. 읽을 책이 있나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밝은 노란색의 표지인 <아무거나 문방구> 라는 책을 발견했다. 표지를 자세히 보니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제목 밑으로 청록색 피부색의 아저씨가 알록달록한 색깔로 빛나는 붓으로 노란 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아저씨 옆엔 하얀 고양이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저씨가 쓰고 있는 책을 쳐다보고 있어서 나도 덩달아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고양이 뒤엔 작게 그려진 ‘젊어지는 달달 샘물’ 이라는 음료수가 있었는데 이름이 엄청 특이했다. 보통 나는 표지나 제목을 보고 읽을 책을 고르지만, 이 책은 표지를 훑어보니 책 내용이 궁금해져서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다. 아빠에게 조심스레 이 책을 사달라고 해보니, 아빠는 흔쾌히 책을 사주셨다. 얼른 집으로 돌아와 기대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 도깨비가 있었다. 도깨비는 사람들에게 주문을 걸어 아무 이야기나 말하게 하곤, 이야기 장부에 사람들에게 들은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써내려갔다. 사람들은 이 도깨비를 '아무거나 도깨비' 라고 불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변해갔다. 점차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어지자 도깨비는 지루했다. 그 때 도깨비에게 엄청난 생각이 떠오르고, 고양이 귀신 ‘어서옵쇼’와 함께 '아무거나 문방구' 라는 특별한 문방구를 열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무거나와 어서옵쇼가 처음 만난 첫 번째 에피소드를 빼면, 총 4개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나는 그 중, 첫 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제이는 엄마가 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였다. 엄마에게 아무거나 문방구에서 샀던 '젊어지는 달달 샘물'을 건넸다. 엄마가 달달 샘물을 마시고 제이만큼이나 어려지자 제이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낯설었다. 그러고는 아무거나 도깨비에게 "아무리 젊어도 날 기억 못 하는 엄마는 더 싫어요. 날 사랑해 주는 원래 엄마가 보고 싶다고요.." 라고 속마음을 털어놓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엄마와 제이가 서로 사과하는 내용이다. 나도 사실 우리 엄마가 조금 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치만,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젊다고 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라면, 그동안 엄마와 내가 겪었던 작고 소중한 모든 추억들을 오로지 나만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종종 내 고민을 들어주신다. 좋은 해결책들을 말해주시곤 하는데, 그럴 때 나를 기억 못하는 엄마가 된다면 좀 답답할 것 같다. 아무튼, 엄마가 나를 기억 못한다면 정말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최악이다. 이 에피소드 덕분에 지금의 엄마가 조금 더 좋아진 것 같다.
보통 도깨비를 생각 하면 나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머리엔 커다랗고 시커먼 뿔 2개가 달려있고, 피부는 붉으며, 손엔 뾰족한 가시가 여러 개 박힌 방망이를 들고 있으며 내기를 좋아한다. 나는 드라마 '도깨비'와 일본의 도깨비 '오니'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치만, 이 책에 나오는 도깨비 '아무거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엄청 좋아하고, 어떤 이야기든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성격을 가졌다. 도깨비의 이런 성격이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아무거나 도깨비' 같은 사람이 있다면 고민을 잘 들어주고, 공감을 무척 잘해줄 것만 같다. 내 주변에도 아무거나 도깨비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친구가 있어서 내용이 조금 더 실감 났던 것 같다.
만약, 지금 내 앞에 아무거나 도깨비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아마 도깨비가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내가 겪었던 다양한 일들을 모두 말해줄 것 같다. 신나고 재밌었던 일,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었던 일, 짜증나고 화가 났던 일, 기대됐던 일, 후회하는 일. 또,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아직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모든 이야기들 등등. 이 밖에도 도깨비에게 할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과연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도깨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흥미롭게 들어 주면서도 한 편으론, 이야기 장부에 적을 이야기가 넘쳐나서 속으론 펄쩍펄쩍 뛰고 있지 않을까?
아직 다음 편이 만들어질진 모르겠지만, 만약 만들어진다 하면 2편도 꼭 읽어보고 싶다. 2편에서는 아무거나와 어서옵쇼의 어떤 재밌는 모습들을 잔뜩 보여줄지, 또 어떤 고민들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개성 있는 에피소드들이 나올지. 상상만 해도 무척 기대가 된다.
우리는 날마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하루는 매일 새롭게 시작되고, 매일 다르게 끝나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 중 힘들거나 화나는 이야기가 하나 쯤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지 말고, 아무거나 도깨비를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이야기든 소중하게 여기고 조그마한 귀를 쫑긋 세워서 들어주는 도깨비 덕분에 마음이 한결 나아져 있을 것이다.
Chapter
- 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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