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사춘기? 아니, 동물화!
- <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고
이혜원
일요일 오후 2시, 아줌마들의 티타임이 있다. 서로 돌아가면서 하는 거라, 꼭 우리집에서 모이지는 않는 거라지만 아빠가 일요일 오후엔 테니스 클럽에 가기 때문에 확률상 우리집에 자주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커피에 딸린 쿠키 마냥 내 이야기가 중심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티를 낸다고 내는데, 아줌마들 앞에 모습을 짠, 드러내기도 싫고 ‘지 얘기 한다고 화낸다’고 다같이 호호하하 웃는 틈바구니에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내 이야기를 빨리 끝내는 길임을 터득했다. 제일 많이 등장하는 화제가 요즘 아이들 이해할 수 없어~이다. 누구네는 사춘기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하고, 누구네는 아직 사춘기는 안 왔는데 슬금슬금 징조가 보인다고 불안해 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준수한 편이라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어쩐지 내 이름이 한번씩 튀어나올 때마다 짜증스러워진다. 마음수양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사춘기에 동물화가 되는 친구들의 이야기라니! 내가 아니라 우리 거실의 아줌마들에게 슬쩍 들이밀고 싶다.
태웅은 곰이 되었다. 시험은 56점이었고, 그래도 다음날 급식에 나올 치즈돈가스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지 꿈까지 꾸며 자고 일어났다. 눈을 뜨니, 그야말로 털복숭이 곰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동생 영웅이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는 바람에 가족들이 동물화를 공식으로 알린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가족 회의를 더 할 겨를도 없이 특공대가 나타나 태웅이를 데려갔다. 온갖 검사를 다 하고, 해볼 수 있는 실험을 다 해본 모양이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던 터라 늘어나는 청소년의 동물화를 다 수용하지 못해 결국 태웅은 곰 농장에 보내진다. 그나마 초기 동물화 사태의 주인공이자 엄마 아빠를 비롯해 열혈 누나, 동생도 있어 태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학교까지 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동물화된 다른 친구들의 사연은 모두 제각각으로 동물인지, 사람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 야생에서 떠돌고 인간의 손에 죽을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기도 했다. 태웅이처럼 곰이 되기도 했지만, 원숭이, 비둘기, 사자, 기린, 개,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동물화가 되는 대상은 학생들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사실 우리반 친구들이 동물화가 된다면, 절대 한가지 종류의 동물은 아닐 거다. 수다쟁이 내 짝은 앵무새, 귓속말을 좋아하는 앞자리 친구는 쥐, 급식 시간을 제일 좋아하는 돼지, 쉬는 시간까지 조용히 책을 읽는 맨 뒷자리 친구는 하얀 학이 어울리겠다. 나는? 음, 4층 교실까지 안 걸어 올라가고 서우나 지원이처럼 고개만 내밀고 출석인정이 된다면 기린이 되면 편할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성격이나, 취향과 개성처럼 모두 다양한 동물로 변할 수 있다. 동물원 저리가라 할 정도의 다양한 종이 교실을 가득 채우겠지. 선생님은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을 거야. 뭐 지금도 하이에나 같은 남학생 하나 때문에 매일 한 시간씩은 설교를 들어야 해서 수업을 건너뛰기도 하니 말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일상적인 대화도 안 통하고, 제 방은 돼지우리에, 이해할 수 없는 짐승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던데 그래서인지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의 불규칙적인 동물화는 거부감보다는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누군가는 사춘기를 그냥 조용히 보내기도, 아예 모르기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난을 떤다고들 하니까.
동물이 되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까지 동물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가 생긴다. 가족의 보호 없이 비둘기떼에서 집단 찍힘을 당하기도 하고, 들개 무리에게 물어뜯기기도 한다. 동물의 세계는 가차없어서 단순한 폭력을 넘어서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아이들은 때로는 포기하지 않고 쇠창살을 물어뜯고 밤새 구조요청의 울음소리를 벌꿀오소리인 라텔의 도움으로 영양탕집을 탈출하기도 하고,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라텔 대 들개 대 하이에나의 대격전이라는 체급이 다른 싸움에 용감하게 나서기도 했다.
사춘기를 지나 아이들이 성숙하듯이, 동물화를 지나 아이들은 비로소 진짜 되고 싶은 ‘사람’으로 돌아온다. 가족의 울타리가 주는 소중함을 알게 되거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지니면서. 나는 어떤 사춘기를 지나게 될까.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나는 길거리를 배회하게 될까. 아님 엄마들의 커피잔을 모조리 숨겨버리는 건 어떨까?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안엔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있음을 엄마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곰, 원숭이, 사자, 기린 친구들, 기다려 줘. 내게 잘 어울릴 동물이 되어 이 사춘기를 잘 지나가 볼게. 고마워, 동물 친구들. 내게 용기를 줘서.
Chapter
- 제3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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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초등부) - 송하름 /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은주 / <퀸의 대각선> 읽고
- 금상(일반부) - 허만규 / <쇼펜하우어 철학 다시 인생을 말하다>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정은우 / <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제설하 / <이방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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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초등부) - 박한결 / <프린들 주세요>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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