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344

    

일단 떠나는 수밖에 

‘여행은 사치가 아닌 나를 마주하는 과정’ 

 


김영은

 

  “이번 추석 명절 연휴 긴데 어디 가세요? 집에만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홍콩이나 일본, 아님 동남아 쪽도 괜찮아 보이던데요?” 들뜬 얼굴로 물어보는 동료의 목소리에 “아무런 계획 없어요. 그냥 쉬려고요.” 라고 말하는 나의 속마음은 이랬다. ‘굳이 여행을 가야하나...’  

 내 나이 만33세,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해외여행은 회사 연수나 친구와의 모임을 통해서만 가봤을 뿐 새로운 환경에서의 변화와 경험을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았다. 사실 나의 마음 깊은 곳 자리 잡고 있는 속마음을 꺼내본다면 안정적인 직장 생활과 차곡차곡 쌓이는 통장잔고. 그것이 곧 나의 성실한 삶이자 행복의 절대 공식이라 믿어왔다. 나와 나의 가족, 나의 미래를 위해선 열심히 살아야 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선 여행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든 해외든 부지런히 여행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라는 불안감이 맴돌았다. 심지어 내가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사실 나 또한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었지만 안정적인 미래라는 부푼 기대감을 안은 채 삶의 힘듦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에게 여행이란 의미는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 스트레스 해소, 돈 쓰는 재미를 느끼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행을 돈 쓰는 사치라 치부하며 새로운 경험을 회피한 건 사실 실패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안정이라는 포장지로 덮어 온 기만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알고 싶어졌다. 여행이라는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더 이상 이 좁은 세계에 갇힌 채 불안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떠나는 수밖에] 라는 책 제목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이 책은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여행이라는 의미와는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갓 태어난 어린 아기가 새로운 단어를 마주한 느낌과도 같았다. 이 책이 나에게 준 충격은 여행이 오롯이 나를 위한 스트레스 해소나 보상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책 속에서의 작가는 여행 속에서 만나는 사람, 동물, 식물, 자연에게 관심을 가지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한다. 그 나라의 삶, 환경의 역사, 현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받아준 지구와 나라에 감사해하며 먼 훗날에도 이 나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에 기도한다. 

 쓰는 돈에 연연해하고 남은 잔액에 한숨을 쉬면서도 소소한 음식에 행복해하고, 산을 오르는 체력에 매우 힘들어하면서도 끊임없이 걸으며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려는 작가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고생을 하면서까지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걸까. 이건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닌 고난의 연속이지 않은가. 

 하지만 신기한 건 작가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른 나라를 경험하는 모습을 찬찬히 읽는 과정에서 그 몫은 오롯이 작가 자신에게 돌아오고 그것이 곧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의 경험과 감정을 맨 몸으로 느끼고 성장하게 만드는 이 아이러니한 과정이 여행을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만 남는 진정한 보상이었다. 

 책을 읽다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실패라는 경험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그러니 어떤 일에서도 실패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심지어 여행에서조차!] 라는 문장이 강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솔직히 동감했다. 나는 여행에서조차 실패하고 싶지 않아 아예 도전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오래 그만두지 못한 것 역시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 대신 안주하는 삶을 택한 결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 없는 정적인 나의 삶을 안정적이라 치부하며 살아왔는데 마치 상처받고 좌절하고 싶지 않아 사방에 벽을 친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 마음이 쓰라렸다. 

 나와 나의 가족, 나의 주변만을 생각해왔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는 연결되어 있다는 그 말, 나에겐 내 가정 내에서만 한정된 단어였다. 나조차 지구라는 공간 속에 잠깐 세 들어 사는 사람일 뿐인데. 내가 주인 행세를 하며 나의 테두리 속에서만 잘 살겠다고 말하는 꼴이 우습기까지 했다. 분명 나의 삶 속에서도 역경과 고난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도움 받았었던 그 따스함에 살아왔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이웃과 환경을 외면한 채 나만의 삶 속에서 계획대로 사는 것에 치중한 채 살아온 삶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반성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왠지 모르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계산도 계획도 없이 마음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를 사는 삶. 작가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무엇인가 깨달았던 게 이유였을까. 가벼운 옷차림과 핸드폰을 든 채 무작정 집 밖을 걸었다. 맑은 하늘 아래 붕어빵을 나눠 먹는 아이들, 공사 중인 바닥에서 자라는 잡초, 인형 뽑기를 하며 웃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사소한 일상일 뿐인데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거창하진 않지만 오늘 집 밖을 나간 이 작은 발걸음을 나를 마주하기 위해 시작된 용기 있는 여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 책을 통해 ‘안정적’ 이라는 단어는 절대적이 아닌 새로운 시각과 만남 속에서 주어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행은 사치가 아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더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깨달음이자 나를 마주하는 과정임을. 한 권의 책만으로는 나의 오래된 생각과 가치관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작가의 행동과 생각, 감정들을 오랜 시간 동안 깊이 되새겨보려고 한다.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주저 하지 않고 나의 좁은 세계를 부수는 성장의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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