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22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조용히, 오늘을 살아내기-

 


남상이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아직 마흔까지는 몇걸음 더 남았지만, 그 문턱에 서 있는 내게 이 제목은 마치 미리 도착한 편지처럼 다가왔다. '곧 다가올 마흔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라는 마음속 질문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서른 가지 조언을 담고 있다. 인간은 왜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 욕망은 왜 끝없이 우리를 몰아치는지, 어떻게 평온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때로는 깊이 공감했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받아들였다. 완전한 답은 아니었지만, 그 생각들을 통해 내 삶을 비추어볼 수 있었다.


책장을 넘기며 가장 오랫동안 눈에 머물렀던 것이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었는데,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나를 소모시키는 모임을 끊으라는 조언이었다. 회사에서 타인을 향해 웃는 가면을 쓰고, SNS에서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려던 나에게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살려고 하는가? 타인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의 가장 큰 원천이다."


그 말은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가. 예전엔 약속이 빼곡해야 행복하다고 믿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늘 공허했다. 모임 속 공감하기 힘든 농담들과 건성건성 건네는 대화는 나를 지치게 했다. 그땐 그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 버텼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갉아먹는 관계는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야 한다는 것을. 불필요한 관계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가 커졌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간혹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도 누군가와는 관계를 맺으며 산다. 결국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인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가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함께하기에 행복한 순간이 분명 있다. 문제는 지나친 기대와 집착이다. 인간관계에서 불행이 생기지 않으려면 상대가 찔리지 않도록 가시를 접는 고슴도치처럼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적당한 거리와 배려, 이 두 가지만 지킬 수 있다면 인간관계는 고통의 원천이 아니라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고독은 더 이상 두려운 공허가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고 사유하게 하는 고요한 공간이 되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인간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정을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이 들어가며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으며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2025년이라니.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세월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분명 내가 살아온 과거인데 왜 실감 나지 않는 것일까. 나도 결국 이렇게 나이를 먹다가 어느 순간 이 세상과 작별하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산다는 게 참 허무한 것이 아닌가. 나의 의식세계는 내가 죽으면 영영 없어지는 건가. 다른 사람의 의식세계는 어떤가. 삶과 죽음. 존재를 생각하면 끝이 없고 답이 없다. 삶을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참 덧없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똑똑한가? 그렇지 않은가? 뚜렷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도, 불행하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나일지도 모른다. 명확하지 않은 애매함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모습 아닐까.


책을 덮으며 나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 영원한 진리는 없다. 다만 내가 지금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가. 그것이 곧 나의 철학이 될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든. 그를 해석한 이의 글이든, 그 모든 것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위한 참고 일 뿐이다.


서른 일곱의 내게, 이 책은 차갑지만 묵직한 거울이 되어주었다. 완벽한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했고, 오늘을 조금 더 성찰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지나간 과거도, 오지 않은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이의 생각을 빌려 내 삶을 비추는 일이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든, 그를 해석한 글이든, 중요한 것은 그 말들이 내 안에서 새로운 의미로 다시 살아난다는 점이다. 마흔이 되기 전. 이 책을 만나 다행이다. 앞으로의 시간은 여전히 불확실하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담담하게 살아낼 마음을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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