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255

    

행복으로 가는 버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를 읽고

 


이은주

 

 나는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외할아버지댁에 자주 갔다. 포도밭과 감나무, 복숭아나무에서 열리는 과일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외삼촌과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모댁으로 놀러 갔다. 이모는 63빌딩, 놀이공원, 멋진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가 주셨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 자체가 아주 설레고 기쁜 일이었다. 버스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는 요술램프 같았다. 버스를 오래 탈수록 좋아서 출근할 때 다른 방법으로 가면 빨리 도착하는데도 되도록 오래 걸리는 버스를 선택한다. 버스를 타는 시간 자체가 즐겁다. 왜 버스 타는 걸 좋아하게 되었는지 나의 하루들을 되돌아보았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우리 집에 세탁기가 있다면, 보일러가 잘 작동되었으면, 따뜻한 물에 씻었으면, 내 방이 있었으면,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갈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중학생 시절에도 역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많이 하였다. 용돈을 받아보고 싶고,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고 싶고,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먹고, 문구점에서 예쁜 학용품을 마음껏 사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에게는 공부 고민까지 더해졌다. 항상 같은 환경 속에서 매일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잠이 부족해서 언제쯤 나는 따뜻한 방에서 푹 잠을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나의 노력에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서 3년을 더 수능공부를 하였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학원비를 준비하기 힘들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나를 위해 끝까지 도움을 주셨다. 좋은 과에만 가면 부모님께 보답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공부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활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이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드디어 버스를 타는 순간이 왔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빚을 갚고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불편함이 없는 하루가 이어졌다. 주말도 없이 매일 6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일과가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쉬지 않았다. 지금은 두 아이를 잘 키워내야겠다는 다짐 속에서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며 저녁 시간과 주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2인 3각 경기에서 발을 맞추어 함께 나아가고 싶은데 나 혼자서 멀리 뛰어가며 아이들을 끌고 있다. 반복되는 나의 하루, 내일도 똑같이 힘들 하루 언제 이 하루가 끝이 날까?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면서 지금의 하루가 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버스를 타고 다른 곳에 간다면 이 모든 고민이 해결될 것만 같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를 편한 의자에 내려놓고, 내 삶의 태도를 바꾸어 보자고 다짐하는 요즘 쇼펜하우어를 만났다.


< 행복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 고통을 줄이고 인내하기 >

  쇼펜하우어의 가장 유명한 말은 바로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걱정과 고통과 고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복은 고통을 줄이고 피하고 견디는 것, 권태에 빠지지 않는 것에 있으므로 삶의 고통을 견뎌내는 인내력이 행복한 인생을 결정짓는 진정한 가치라고 하였다. 

  내가 무엇보다 잘하는 것이 참고 견디는 것이다. 나의 프로필에 ‘참을 인(仁)’이 세 번 적혀있던 적도 있다. 다른 삶을 꿈꾸기는 하였지만 이 정도의 힘듦은 누구나 견디면서 산다고, 나의 아픔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참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만 참아내면서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열심히 하는 것이 행복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형태의 고통이 생겨났다. 세상에 태어났으면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은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쇼펜하우어의 말을 들으니 모든 사람이 고통을 가지고 있고, 각자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나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열심, 책임, 견디기를 선택하였다면 다른 사람들은 적당함, 편안함, 내려놓기를 선택하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너무 애쓰지 않고 그럭저럭 견뎌내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나 보다. 


< 행복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 행복과 불행에 대한 관점 바꾸기 >

  “선량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지닌 사람은 몹시 궁핍한 상황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인색하고 시기심 많고 못된 성격을 지닌 사람은 아무리 거대한 부를 쌓아 올려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궁핍하다고 해서 불행하고, 풍족한 상태라고 해서 행복한 마음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들이 가진 성격이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성격은 고통을 수용하는 능력도 포함하기 때문에 “그릇이 큰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지만 그릇이 작은 사람은 작은 고통에도 불평불만을 한다.”고 하였다. 쇼펜하우어는 태어나면서 가진 인간의 성격이 기본적으로는 바뀌는 것이 아니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교육을 통해서 달라질 수가 있다고 하였다. 교육을 받으면 자신의 욕망과 능력을 정확히 알 수 있고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쇼펜하우어는 타고난 성격보다 욕망과 능력을 안다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에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평소 작은 일에도 짜증 섞인 말투로 불평을 하는 아이에게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마음이 밝고 온화하고 너그러워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그럼 나는 행복할 수 없는 거야?”라고 하였다. 그래서 얼른 노력에 의해서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를 알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어.”라고 알려주었다. 쇼펜하우어를 통해서 아이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렇게 초등학생 아이에게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 반면, 40대를 보내고 있는 나는 정작 이 방법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직업을 가졌고 아이가 키우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원하는 욕망,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원동력이 욕망과 능력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그것을 놓치고 산다면 남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지 않을까? 고통과 권태를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나의 관점을 만들어 나가려면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함을 배운다. 


< 행복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

  “건강한 거지가 병든 왕보다 더 행복하다.”

  내가 요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건강이다. 사는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하루를 살기 위해서 좋은 음식을 먹고 몸에 나쁜 것을 피하고 운동을 한다. 건강한 사람은 ‘낙천적인 성격’, ‘고상한 성격’, ‘뛰어난 두뇌’, ‘명량한 마음’을 가진다고 한다. 건강으로 이 모든 것을 가지며 살 수 있으니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요인은 명량한 마음이다. 명량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마음이 명량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으로 쇼펜하우어는 첫째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둘째 질투를 경계하고, 셋째 큰 희망을 걸기보다는 살아서 존재하는 일에 감사하고, 넷째 세상에는 거짓이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무게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두어야 한다. 앞에서 다른 사람의 생활 방식에 불편함, 억울함을 느꼈던 이유를 이 부분에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질투라는 감정이었는데 40대가 되어서야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질투를 하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고통 줄이기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살아서 존재하고 있는 자체에 감사하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새긴다. 

  무게중심을 나에게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와 글쓰기라고 하였다. 쇼펜하우어는 “먹은 것이 육체가 되고 읽은 것이 정신이 되어 현재의 자신이 된다. 첫째 고전을 읽고, 둘째 두 번을 읽고, 셋째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악서를 피하라.”고 하였다.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책이 있고 전자도서관에 들어가도 좋은 책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어야 할지,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도록 해주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추천하는 좋은 책들을 모두 읽고 싶은 마음에 관심 목록에 많은 책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하지만 책을 읽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항상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생각을 영글게 하는 것은 다독이 아니라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갈팡질팡하며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고전을 한권 선택하여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독서 못지않게 글쓰기의 중요성도 강조한 쇼펜하우어는 글의 단순함, 소박함, 명료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라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듣는 순간 글쓰기에 용기가 생겼다. 여러 번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한 글자씩, 한 문장씩 쓰고 나니 머릿속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쇼펜하우어의 뜻 깊은 가르침들도 머릿속을 그냥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쉬운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해서 가슴 속에 담아 보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임을 받아들이고 인내하기, 행복과 불행에 대한 관점 바꾸기 위해서 나의 성격, 태도를 교육을 통해서 바꾸어 나가기,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한다면 우리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고, 그렇게 실천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면서도 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기준을 미래에 두었기 때문이다. 10년, 20년 뒤에 편안한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배우고 교육하고 운동하고 글을 읽었다. 그 모든 행동들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 위함임을 놓치고 있었다. ‘이 정도 고통은 가지면서 살 수 있는 거야, 아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교육으로 바뀔 수 있는 거야, 오늘도 이렇게 운동을 했구나, 좋은 책을 읽었으니 오늘도 뿌듯한 하루야.’라고 마음속으로 느끼지 않았다.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조바심을 내고 불안해하였다. 그런 시간을, 현재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순간을 보내야 했다. 행복을 위해 쇼펜하우어가 들려주는 마지막 퍼즐 하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현재를 사는 것>이다.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가 생각난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모른다.’ 어제의 부족함을 계속 떠올리던 나,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는 나,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해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나에게 지금을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45년간 하루하루는 매일 똑같은 것이 아니라 늘 새로웠다고, 그리고 그 하루에 충실했다고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 지금을 힘들어하고 지겨워하면서 벗어나고자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버스를 기대하며 오늘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버스는 처음부터 없었다. 내 손이 닿는 곳에, 지금 이 순간에 바로 내가 채울 수 있는 행복 주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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