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사회가 외면하는 이들, 이를 숨기는 누군가
― 『존재, 감』을 읽고
안서현
살다 보면 세상의 중심에서 멀리 밀려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숨 쉬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그곳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감추며 살아간다. 그러나 삶이란 본래 드러남의 과정이기에 그들은 때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기도 한다. 『존재, 감』은 바로 그런 사람들 혹은 존재들을 향한 시선의 책이다.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그리고 사람에게 상처받고도 다시 마음을 여는 고양이들까지, 저자는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한 존재들’을 부드럽고 단단한 목소리고 불러낸다.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깊게 남은 부분은 「고양이의 상처 상상하기」였다. 작가는 상처 입은 고양이들의 개성 있는 삶을 통해 인간 사회의 단면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레 외할머니 댁에서 함께 지냈던 고양이 ‘레오’를 떠올렸다.
레오는 두 눈의 색이 달랐다. 처음엔 사람을 무서워했고, 밥그릇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레오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사람의 손을 타본 듯한 몸짓에는 오래된 상처의 흔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레오를 가족처럼 대했다. 외할머니는 매일 밥을 챙겨주었고 외삼촌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레오는 우리 곁에서 ‘다시 사랑을 배우는 법’을 익혀갔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을의 고양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레오도 함께였다. 외삼촌은 퇴근 후 밤마다 마을을 돌았고 외할머니도 낮마다 레오를 찾았다. 그러나 여섯 번째 밤에 들려온 소식은 잔혹했다. 레오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상태였다.
그때의 절망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상처를 회복하던 존재가 인간의 악의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은 너무나 쓰라렸다. 나는 레오의 죽음을 통해 ‘악’이 거창한 범죄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상의 무심함, 작은 혐오, 눈을 돌리는 침묵 속에서도 악은 조용히 자란다.
최근 뉴스에서도 반려동물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비비탄을 수백 발 맞은 반려견, 발목이 잘린 백구, 입양된 지 얼마 안 돼 죽임을 당한 고양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생명들이 인간의 손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그런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레오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인간의 이기심이 누군가의 존재를 얼마나 쉽게 지워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와 ‘보지 않는 인간’의 간격을 절실히 느꼈다. 사회의 중심은 늘 ‘평균’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거기서부터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장애를 가진 사람, 타국에서 노동하는 외국인, 가난한 사람, 그리고 상처 입은 동물들.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불편해하며 눈을 돌린다. 그러나 외면은 결코 해결이 아니다. 외면은 두 번째 폭력이기 때문이다.
책의 1부 마지막 글 「나 홀로 털신을 신은 이유」를 읽을 때, 나는 그 폭력이 인간 내부에도 존재함을 깨달았다. 작가는 ‘조용하고 산만한 아이’, ‘학교 부적응 아동’으로서의 자신을 회상한다. 그 글을 읽으며 나 역시 내 안의 어두운 기억을 마주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심리검사에서 나는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상담실로 불려갔다. 그러나 상담을 하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 한마디가 내 속마음을 가두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슬픔도, 불안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괜찮은 척”하는 법만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살아남기 위한 또 하나의 ‘가장자리에서의 생존’이었다. 나조차 나를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존재, 감』은 그때의 나처럼 자신을 감춘 채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회가 말하는 ‘정상’의 틀에 맞추지 못한 이들이 겪는 고립, 그리고 그 속에서조차 피어나는 희미한 연대의 가능성. 그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이다. 작가는 말한다. “그들은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애써 숨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책 속의 인물들과 동물들은 모두 ‘감춰진 존재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의 시선이 닿고 따뜻한 손길이 닿을 때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외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잠시 행복을 누렸던 레오처럼,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처럼.
『존재, 감』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사회의 가장자리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그것은 거리의 그늘 속이 아니라 어쩌면 내 안의 두려움 속에 있다. 우리가 외면하는 동안 또 다른 레오와 또 다른 ‘나’가 그늘 속에서 사라져간다. 이제는 그 어둠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상처 입은 존재를 보듬는 일은 거창한 정의의 실천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최소한의 윤리다. 이 책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단 하나다. “보지 않음은 모름이 아니라, 외면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외면을 멈추려 한다.
Chapter
- 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윤태정 / <법정 행복한 삶>을 읽고
- 대상(중고등부) - 김준범 /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를 읽고
- 대상(초등부) - 홍지은 / <야광 코딱지>를 읽고
- 금상(일반부) - 김영은 / <일단 떠나는 수 밖에>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진목 / <즐기는 사람만이 성공한다>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정석환 / <플랜더스의 개>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제설하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를 읽고
- 금상(초등부) - 김찬주 / <가짜 독서왕>을 읽고
- 금상(초등부) - 이선한 / <곤충 탐정 강충>을 읽고
- 은상(일반부) - 남상이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 은상(일반부) - 박정도 / <뭘 해도 잘 되는 사람의 말센스>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은주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 은상(중고등부) - 금소현 / <바깥은 여름>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안서현 / <존재 감>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양수영 /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 은상(초등부) - 김현선 / <책 좀 빌려줄래>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최재영 / <불편한 자전거 여행>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최희정 / <딩신은 전쟁을 몰라요>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용우 /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소연 / <일단 떠나는 수 밖에>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영희 /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정근우 /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정찬식 / <법정 행복한 삶>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강정현 /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이다원 / <왕과 사자>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이서율 / <소년이 온다>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최은영 / <천개의 파랑>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홍하람 / <모모의 여름방학>을 읽고
- 동상(초등부) - 김아율 / <어린 임금의 눈물>을 읽고
- 동상(초등부) - 서하윤 / <단단한 아이>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윤지영 / <오리부리 이야기>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이슬비 / <창밖의 기린>을 읽고
- 동상(초등부) - 정예교 / <잘가 나의 비밀친구>를 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