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348

    

 여행은 지친 심신 치유와 지루한 일상 탈출 자양분

 -‘일단 떠나는 수밖에(김남희 지음. 수오서재)’를 읽고-

 


박소연

 

  국내여행이든 국외여행이든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낯선 곳으로 찾아가서 새로운 문물을 구경하고 맛난 음식을 먹으며 역사유적을 관람하는 등 다채로운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여행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다만 생업에 얽매여 살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 여행을 마음 놓고 하지 못할 뿐이다. 

 20대 후반의 미혼 청춘인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 국내여행은 심심찮게 다니고 국외여행도 일본과 베트남에 두 번 다녀왔다. 여행을 차 마시고 밥 먹듯이 하고 싶어도 시간과 돈이 허락하지 않아서 자주 하지는 못하고 가끔 시간을 내거나 돈을 모아서 여행하며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자유를 누리곤 한다.

 내게는 마음이 통해서 같이 여행하는 친구가 세 명 있다. 나이는 한두 살 안팎으로 차이가 나는데 모두가 여행을 좋아하고 서로 소통과 공감이 잘되는 청춘들이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은 일년에 봄과 가을에 두 번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낯선 곳으로 여행하며 오래 기억될만한 추억을 쌓는다. 

 여행은 언제 어디서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란 속담이 물론 있지만 나는 평생 일은 하지 않고 여행만 해며 살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조물주보다 더 상위 계층으로 취급 받는 건물주가 아닌 이상 늘 여행만 하며 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갑남을녀의 한 사람으로서 생업의 현장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늘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직장인이다. 잘 알다시피 직장 업무라는 것이 늘 되풀이되는 일이다 보니 수시로 권태가 생기고 가끔은 창살 없는 감옥게 갇힌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다수 직장인은 자영업을 꿈꾸거나 로또복권이라도 당첨돼 직장에서 탈출해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어 한다. 직장인들은 자신을 일컬어 ‘회사에서 길러지는 가축’이란 뜻의 사축(社畜)이니 ‘직장과 시집살이’의 줄임말인 직장살이니 하며 스스로를 비하하곤 한다.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직장인의 비애가 담긴 말이지만 직장인 누구나 공감이 가는 말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고리타분하고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가끔 떠나는 여행은 메마른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신물나게 되풀이되는 일상의 업무나 무미건조한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만으로도 감옥에서 해방돼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때때로 여행에 관한 책이나 영상물을 보며 간접적으로나마 여행을 체험한다. 몸소 여행하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에 간접적인 여행도 내게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게 하는 원천의 하나다. 

 얼마 전에는 여행가 김남희가 쓴 ‘일단 떠나는 수밖에’ 라는 책을 읽게 됐다. 여행에 관한 책은 거의가 대동소이하지만 김남희의 여행에 관한 책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어진 생을 견디고 사랑하기 위하여 기꺼이 길을 나서는 여행가 김남희는“길을 나서면 늘 새 길이 열리곤 했다”고 말하며 여행을 적극 예찬하는 사람이다. 2003년부터 여행을 시작해 올해로 23년차 여행가가 된 지은이는 수많은 길을 걷는 동안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20년이 넘도록 여행으로 밥 버는 삶을 살아왔다. 여행을 다녀와 그곳에 대해 글을 쓰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삶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코비드 시국은 그의 삶을 많이 바꿔놓았다. 강연과 글쓰기로 이어가던 생계 활동은 충분하지 못했고 에어비앤비 호스트, 방과후 산책단 등 ‘N잡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것도 절대적 벌이는 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은 ‘유목민’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쩌면 코비드 이전보다 더 여행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나 할까.

 무엇이 지은이를 여행으로 이끌었을까? 인간은 왜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조금 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된다는 지은이의 고백처럼,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마주하는 여행지에서 오히려 인간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제와 다름없는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에 대한 경이,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떠난 여행지에서의 공허한 시간, 여행자들을 이끄는 방과후 산책단 리더로서의 고민, 새로운 곳에서의 또 다른 삶을 꿈꾸는 도전까지. 지은이는 언제나 길 위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마주했다고 고백한다.

 지은이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크게 실감하는 것은 앓고 있는 지구라고 말한다. 언제까지 여행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할 때마다 그 먹먹한 질문은 전보다 자주 떠오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좁고 못난 인간이 되었을 거라는 믿음을 지니고 산다. 그래서 오늘도 지속가능하며 현지인의 삶을 훼손하지 않는 여행을 하기 위해 질문하고 고민한다고 털어놓는다. 

 지금 눈앞의 순간에 몰두하기, 비효율적이고 무용한 것들에 시간을 기꺼이 낭비하기, 여행지에 최소한의 흔적만을 남기기,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낯선 타인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등은 지은이가 여행하며 모두 길 위에서 알게 된 교훈이다. 

 사냥에 매번 실패하는 사자의 모습에서 지은이는 또 깨닫는다. 어쩌면 세상은 성공, 완성 같은 단어로 이뤄진 게 아니라 실패, 미숙함, 불완전함 같은 단어로 구성되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편협한 세계를 부수는 행위”라고 말하는 지은이가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는 빈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휴일이나 연휴가 되면 국내 고속도로는 자동차 행렬로 장사진이고 국외로 오가는 관문인 공항도 거의 초만원 수준이다. 모두가 먹고 살만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여행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일부 가난한 계층에게는 여행이 그림의 떡일 수도 있겠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여행을 하며 삶의 행복을 누리는 편이다. 특히 한국인은 여행 기질이 다분히 있어 보인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정착이 주된 삶이었지만 현대 산업 및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이동이나 여행이 주된 생활방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람은 누구나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옛말에 “집 나가면 고생이다” 혹은 “낯설고 물선 곳으로 가면 큰 고생이다”란 말이 있다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낯설고 물선 곳으로의 여행을 즐기고 심지어 여러 날을 캠핑까지 해가며 일상탈출의 자유를 누린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이 모두가 지루한 모양이다. 그래서 여행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삶의 활력을 얻으려고 애쓴다.

 어쨌든 한국은 국력이 선진국이고 국민 삶의 질도 높아져 자신의 형편이나 처지만 좋다면 얼마든지 여행하며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다. 나는 아직 미혼이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결혼하게 되면 가정과 직장에 얽매여 더욱 여행할 시간과 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현재 자유로운 청춘으로서 끓는 피를 여행으로 식혀 나가고 싶다. 여행을 하면 거듭되는 일상에 지친 심신이 치유되고 피로나 스트레스는 춘삼월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아직 20대 끝자락 청춘이니 앞으로 여행을 즐길 일이 많이 남았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줄곧 여행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누리고 싶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면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난 지구 종말이 다가와도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홀로든 친구와 함께든 여행은 언제나 유쾌하다. 다음 기회엔 어디로 여행할지 상상하니 벌써부터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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