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337

    

오늘 나는 불편했는가

 


정근우

 

 인류는 불편함은 적으로 삼아 문명을 전진시켜 왔다. 추위에 대한 불편함은 옷을, 배고픔은 농업을, 무거움은 바퀴를 낳았다. 현대의 발명과 창업 역시 남들보다 먼저 ‘눈에 안 보이는 불편’을 포착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뜻밖에도 “불편을 다시 불러오자”라고 말한다. 왜일까?

우선 불편함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자. 저자가 말하는 불편함은 자연과 환경이 주는 물리적 불편함이다. 사회적 갈등이나 심리적 곤란은 논외로 한다. 저자에 의하면 불편은 ‘결핍’이 아니라 ‘자원’이다. 인간은 본디 불편과 함께 진화했기에, 적정량의 불편은 오히려 우리의 몸과 마음,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역설이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이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33일간 알래스카로 향한다. 표면적 목적은 ‘순록 사냥’이지만, 실상은 ‘극한의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몸으로 경험하기 위한 여정이다. 거친 눈보라와 추위, 흉포한 곰, 수십 킬로미터 내에 사람 하나 없는 완전한 고립, 그 위에 저자의 “정말 어렵게, 하지만 죽지 않게”에 도전하는 철학이 얹힌다. 흥미로운 점은 이 체험기가 단순한 무용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수백 명의 과학자, 의사, 종교인 들과의 인터뷰, 수십 편의 저명한 저널의 연구들을 교차 인용하며 ‘편안함, 배고픔, 죽음’ 같은 주제를 촘촘히 엮어 낸다. 방대한 자료를 이야기의 리듬 속에 녹여내는 솜씨 덕에, 책은 한 편의 야생 기행문이면서 동시에 현대 과학과 데이터가 점철된 리뷰 논문처럼 읽힌다. 

책을 덮고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저자 못지않게 신체적으로 강인하다고 믿어왔다. 십 수년간 운동을 지속했고, 보디빌딩 대회 수상과 하프 마라톤 상위 5% 기록을 달성한 뒤로도 훈련을 이어왔다. 하지만 진정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은 어려운 도전’을 해본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면, 망설여진다. 저자에 의하면 냉정히 말해 그것은 위험이 제거된 ‘온실 속의 운동’이었다. 추위와 더위, 두려움과 자연을 비켜간 채 쌓은 근육은 ‘보기 좋은 근육’ 일뿐, 인류의 본질적인 행동과 거리가 멀다. 이로 인해 우리는 정신을 함께 단련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편리함 속에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알래스카로 떠날 필요는 없다. 저자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제1원칙 ‘살아남을 것’에 위배되는 선택을 하기는 원치 않을 것이다. 누워 지내던 이가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면 다치듯, 편리함에 익숙한 현대인은 불편함을 조금씩 받아들여야 한다. 낮은 산을 오르고, 배낭을 등에 메고 걷고, 겨울에 실내 온도를 1~2도 낮춰보기 같은 것들 말이다. 과학 기술이 주는 편리함을 감사히 누리되, 의도적인 불편함을 겪을 용기가 생긴다면 충분하다. 이 책은 편안함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다만 편안함을 관리할 줄 모르면 삶이 둔해진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인상적인 키워드는 따분함이다. 예로부터 철학자들은 따분함이라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여겼다고 하는데,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빈틈을 싫어한다. 공부하던 시절에도, 의사가 되고서도 스스로 채찍질하며 수많은 시험과 혹독한 수련을 거쳤다. 우리 뇌에는 ‘집중 모드’와 ‘비집중 모드’가 있다는데, 나는 후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걷거나, 샤워하거나, 잠에 드는 순간까지도 잠깐의 틈이 생기면 핸드폰으로 ‘집중 모드’를 이어갔다. ‘비집중 모드’로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사소한 일을 잊어버리고, 실수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현대인은 삶 속 짧은 순간의 정적도 버티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공포는 우리 삶을 강박적인 활동으로 가득 채우고, 과학 기술 덕분에 우리의 마음은 방황할 틈이 없다. 지루함을 견디는 근육이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따분함은 완전히 사망했다.”

하지만 따분함은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과 창의성을 길러준다. 마음이 유랑하는 시간에 우리는 낯선 연결을 만들고 색다르게 사고하도록 만들어 고유한 생각을 떠올리게 해 준다. 생산성을 향상하는 핵심은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은 거슬려 보이기 쉽다. 따분함과 게으름의 경계선을 구분 짓기는 모호하지만, 따분함을 어느 정도 우리 삶에 수용하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지름길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책이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예리하게 해부하면서도,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시선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인공지능은 산업혁명 못지않게 새로운 편안함의 세상을 만들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AI 스타트업계에서는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며 따분함을 잃고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새로운 지형에서 불편함과 따분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저자의 후속 질문이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척추와 둔부는 폭신한 리클라이너 의자에 깊이 파묻혀있다. 조상 인류의 불편한 휴식 자세를 흉내 내고자 의자 위에 쪼그려 앉아 몇 줄을 더 써보지만, 금세 다리가 저려온다. 의식할수록 편안함은 정체를 드러내고 슬그머니 나를 잠식하려 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오늘 나는 불편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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