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잊지 않기 위해 읽는 책
『소년이 온다』를 읽고
이서율
한 해가 마무리되던 작년 12월, 한밤중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가짜 뉴스도 아니었고, 실제 상황이었다. 외신은 대한민국을 위기 국가로 지정했고, 한국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계속해서 새로고침되는 뉴스와 SNS는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때 우연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고, 나는 마침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었다. 책 속의 시대와 지금의 상황이 비슷해보였다. 518 광주처럼 지금도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외면하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광주에만 비상계엄령이 내려졌고, 계엄군은 시위 중인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총에 맞아 죽은 아이들,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한 명의 시점이 아니라 여러 인물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죽은 이의 시점까지 등장한다. 2장에서 정대의 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죽은 자의 입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1장에서는 손녀를 잃은 노인이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말은 단지 국가를 향한 분노만이 아니었다. 손녀가 거리에서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도 담겨 있었다. 그 무력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6장에서는 동호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동호는 1980년,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소년이다. 어머니는 시간이 흘러도 아들의 죽음을 품고 살아간다. 어린 시절 동호가 했던 "꽃 핀 쪽으로 가"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통해 다시 나올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죽은 아들이 남긴 말이 어머니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꽃 핀 쪽으로'는 단지 한 문장이 아니라,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었다. 피로 물든 광주에서 피어난 꽃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자리에 꽃을 피워야 할 때다.
이 책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폭력을 가했는지, 그리고 그 폭력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권력자는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눴으며 헬기까지 동원되었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하는 존재인데, 국가는 국민을 향해 총을 들었다.
지금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을 위한 선택보다.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데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밤중에 발표된 비상계엄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겼다. 뉴스에서는 군인이 민간인을 위협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럴 때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해도 되는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책에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나온다. 시위 중 잡혀간 사람들은 고문을 당했다. 손을 못 쓰게 하거나, 옷을 벗긴 채 벌레에 물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들은 성적인 고통을 겪었다. 어떤 생존자는 인터뷰조차 힘들어했고, 시간이 지나도 남성과의 접촉이 두렵다고 했다.
성고문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고통이다. 그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일상에 깊은 상처로 남는다. 특히 여성들이 더 많이, 더 깊게 다친다. 지금도 뉴스에는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학교, 직장, SNS에서도 성희롱이 쉽게 오간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책 속에서 계엄군이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의 뺨을 일곱 대나 때렸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여성 인권 문제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야 한다.
산자는 죽은 자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은 그 기억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를 잊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계속 기억해야 할까?
한강은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침묵 속에 묻히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국가의 폭력 앞에서 피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침묵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억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만약 5·18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 대학생 김진수의 말처럼,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살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1980년 광주에서 국가는 그렇지 않았다. 권력은 국민을 죽였고, 그들의 목소리를 지우려 했다. 한강은 그 지워진 목소리를 다시 꺼내고 싶었을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잊혀진 이들의 증언이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다. 우리는 과거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그 기억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Chapter
- 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대상(일반부) - 윤태정 / <법정 행복한 삶>을 읽고
- 대상(중고등부) - 김준범 /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를 읽고
- 대상(초등부) - 홍지은 / <야광 코딱지>를 읽고
- 금상(일반부) - 김영은 / <일단 떠나는 수 밖에>를 읽고
- 금상(일반부) - 이진목 / <즐기는 사람만이 성공한다>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정석환 / <플랜더스의 개>를 읽고
- 금상(중고등부) - 제설하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를 읽고
- 금상(초등부) - 김찬주 / <가짜 독서왕>을 읽고
- 금상(초등부) - 이선한 / <곤충 탐정 강충>을 읽고
- 은상(일반부) - 남상이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 은상(일반부) - 박정도 / <뭘 해도 잘 되는 사람의 말센스>를 읽고
- 은상(일반부) - 이은주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 은상(중고등부) - 금소현 / <바깥은 여름>을 읽고
- 은상(일반부) - 안서현 / <존재 감>을 읽고
- 은상(중고등부) - 양수영 /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 은상(초등부) - 김현선 / <책 좀 빌려줄래>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최재영 / <불편한 자전거 여행>를 읽고
- 은상(초등부) - 최희정 / <딩신은 전쟁을 몰라요>를 읽고
- 동상(일반부) - 김용우 /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소연 / <일단 떠나는 수 밖에>를 읽고
- 동상(일반부) - 박영희 /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정근우 /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정찬식 / <법정 행복한 삶>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강정현 /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이다원 / <왕과 사자>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이서율 / <소년이 온다>를 읽고
- 동상(중고등부) - 최은영 / <천개의 파랑>을 읽고
- 동상(중고등부) - 홍하람 / <모모의 여름방학>을 읽고
- 동상(초등부) - 김아율 / <어린 임금의 눈물>을 읽고
- 동상(초등부) - 서하윤 / <단단한 아이>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윤지영 / <오리부리 이야기>를 읽고
- 동상(초등부) - 이슬비 / <창밖의 기린>을 읽고
- 동상(초등부) - 정예교 / <잘가 나의 비밀친구>를 읽고











